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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침공에 '교훈' 타령하는 대선후보들…심지어,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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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침공에 '교훈' 타령하는 대선후보들…심지어, 틀렸다

[기자의 눈] 정치권의 황당한 '교훈병(病)'

지난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했다. 형식상이나마 민주적 선거를 도입한 국가가 다른 주권국가를 침략한 모양새가 되면서, 민주주의 국가들 간에는 전쟁이 없다는 이른바 '민주평화론'의 비극적 반증이 제시됐다. 국내외의 많은 관찰자들은 미국 주도의 기존 국제질서에 러시아·중국이 도전하는 구도의 신(新)냉전 위험성을 우려하고 있다. 인류의 미래에 대한 비관론적 견해에 한 줄의 강력한 근거가 추가됐다.

비관론적 전망은 한국 정치의 미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나온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주요 정치 세력이 보인 반응은 대개 △전쟁 발발에 대한 유감 표명 △사태의 평화적·외교적 해결 촉구 △우리 교민의 안전 당부 △정치적 의미 부여 등의 4가지였다. 앞의 3가지는 공통적이고 상식적으로 마땅한 반응이다. 문제는 4번째다. 자연스럽게 방점이 찍히는 대목인데, 가장 큰 문제는 내용마저 '틀렸다'는 데 있다.

무엇보다도, 21세기 대명천지에 일어난 침략전이다. 심지어 전쟁이 일어난 지 몇 시간이 되지도 않았는데 "강대국에 둘러싸인 우리에도 생생한 교훈이 된다"거나, "지구 반대편 남의 나라 일이지만 이 문제 때문에 주가가 내려가고 있다"는 유력 대선주자들의 발언이 초현실적이다.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한 이웃을 보며 빈소가 차려지기도 전에 '우리 동네 교통환경 개선의 교훈'이나 '우리 아파트 단지 집값에 미칠 영향'을 운운하는 꼴이다.

이재명 후보는 우크라이나 침공 당일 저녁 '긴급 연석회의'를 소집해 "지도자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은 평화를 지키는 일"이라며 "다음 대통령은 이런 위기를 돌파할 유능한 안보·경제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했다. 2년 만에 코미디언에서 정치인으로 벼락치기 변신을 한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의 능력을 폄하한 발언은 아닐 테고, 검찰총장 출신 대선 경쟁자보다 정치적으로 오랜 기간 훈련된 자신이 적임자라는 뜻으로 보인다. 그러나 나토(NATO)의 동진정책과 러시아의 팽창욕이 빚어낸 충돌은 우크라이나 대통령 한 사람의 능력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미중 갈등의 파고가 거세지면서 문재인 정부 역시 지정학적 리스크에 시달려온 현실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늘 냉정한 국제질서와 외교 이슈를 국내 정치에 끌어들이는 악습을 버리지 못한 데에 있다.

이 후보가 "사드 (추가)배치, 선제 타격 같이 안보를 정쟁화하는 일들은 스스로 위기를 자초하는 일"이라고 상대 후보를 겨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크라이나가 2002년부터 추진해온 나토 가입이 러시아를 자극해서 스스로 위기를 자초한 일이라는 이야기로 보인다. 한국이 사드 문제 등으로 중국과 갈등을 빚었던 일을 상기시키는 대목이 있긴 하나, 우크라이나 정부가 다수 여론을 등에 업고 추진했던 나토 가입과 국민의힘 후보가 대선 선거운동 과정에서 한 주장을 동일선상에서 놓는 것은 무리한 면이 있다.

이에 앞서 이 후보는 거리유세 연설에서는 "지구 반대편, 남의 나라 일이지만 이 문제 때문에 우리나라 주가가 내려가고 있다"며 "글로벌 공급망, 국제 경제 질서가 훼손돼 대한민국 경제발전이 위험에 처한다"고 해 입길에 오르기도 했다.

윤석열 후보 쪽에서 나온 이야기는 더 황당했다. 윤 후보도 같은날 저녁 '긴급 대책회의'를 열어 "말로만 외치는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이 결코 한반도의 평화를 보장해주지 않는다. 힘이 뒷받침되지 않은 평화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생생하게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실화된 신냉전 현실에서 우크라이나가 갑자기 무얼 하면 러시아에 밀리지 않는 '힘'을 가질 수 있나? 그게 한국에게 대체 어떤 '교훈'이 되나? 

윤 후보는 SNS에 쓴 글에서는 "1994년 우크라이나는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라는 종이 하나를 믿고 스스로 무장을 해제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전쟁이 임박하자 이 각서를 근거로 지원을 요청하고 있으나 국제사회는 잘 움직이지 않았다"고 했다. 우크라이나가 핵을 포기한 게 문제이며 한국도 중국에 밀리지 않으려면 핵무장이라도 해야 한다는 뜻인가? 이는 상식적이지도 않고 윤 후보 스스로 반대한 방안이다. 윤 후보 논리대로면, 한국이 아닌 북한 입장에선 이번 사태에서 얻을 교훈으로 '핵을 포기하면 침략당하니 절대 비핵화는 안 된다'는 것이 된다.

윤 후보는 또 "정부는 종전선언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한미동맹과 국제사회와의 공고한 협력을 바탕으로 북의 도발을 막고 한반도를 안정화시킬 실질적 외교전략을 펼쳐야 한다"며 "확고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한 강력한 억지력"을 주장했다. 한미동맹이 한국의 안보에 중요한 요소인 것은 맞지만, 이번 사태가 시사하는 바는 정반대 방향이지 않은가? 우크라이나가 나토 가입 추진 등 친미·친서방 정책을 펴도, 그것만으로는 자국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았다는 것이 비극적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즉 미국만 믿고 '험한 이웃'과의 정면대립도 불사하겠다는 친미 일방주의 외교보다는, 지역 정세를 늘 민감히 파악하고, 때로는 굴욕감을 참고 자국 유권자들의 반발을 거슬러 가며 지역 강대국·위협세력과의 외교 협상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 러시아 못지 않은 험한 이웃들을 둔 한국이 오히려 유념해야 할 지점일 것이다.

이런 가운데 국민의힘 국방위원들은 성명을 내어 "현재 러시아군은 이스칸데르 미사일 2개 여단을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며 "이스칸데르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는 북한이 이번 전쟁에 개입하면 한반도 안보에도 아주 중대한 위협이 될 것이다. 북한이 이번 사태를 오판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중동의 '반미 전사'들은 수십 년간 AK 계열 소총을 써왔고 후세인 정권은 걸프전에서 스커드 미사일을 쐈지만 북한이 그때마다 그에 호응하거나 무슨 오판을 한 적은 없었으니 그런 이상한 염려일랑 마시고, 신냉전 위험성 등 한국이 마주할 도전에 대한 진지한 대책을 숙의해 주기를 유권자의 한 사람으로서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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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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