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 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러시아에 제재를 가했던 미국이 정상회담 및 외교장관회담도 연이어 취소하면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22일(현지 시각)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의 도네츠크 인민공화국(DPR)과 루한스크 인민공화국(LPR)의 독립을 승인하고 평화유지군 파병을 발표함에 따라 정상회담 가능성이 사라졌다고 밝혔다.
사키 대변인은 회담의 전제조건으로 러시아의 긴장 완화 조치가 있어야 하고 이는 군대를 움직이는 것을 의미한다며,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에 평화유지군 명목으로 투입한 러시아 군 철수가 먼저 이뤄져야 회담을 진행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는 미국이 외교의 문을 완전히 닫아둔 것은 아니라면서도 "러시아가 경로를 바꾸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고 밝혀 러시아군 철수가 우선돼야 한다는 점을 촉구했다.
미러 외교장관 회담 역시 취소 취소됐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이날 국무부에서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과 회담 이후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을 24일 만나려 했으나, 이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지 않았을 때 유효한 것"이라고 말했다.
블링컨 장관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군대를 투입한 것에 대해 "외교에 대한 전면적인 거부를 분명히 한 것"이라고 규정하며 현 시점에서 외교장관 회담 개최는 의미가 없다고 밝혔다.
그는 "(러시아가) 갈등과 전쟁의 길로 가면서 가식적인 외교를 하려는 것을 수용할 수 없다"며 "러시아가 긴장 완화 조치와 함께 외교적인 해결책을 찾으려는 진지한 태도를 보여주고 이를 입증하기 위한 조치를 국제사회에 보여준다면 미국 역시 외교에 전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블링컨 장관은 이같은 결정에 대해 동맹국 및 파트너 국가들과 상의하여 결정을 내렸으며 러시아 측에도 이를 통보했다고 덧붙였다.
미국은 푸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동부지역 독립 승인 및 평화유지군 파견 직후인 21일(현지 시각) 해당 지역에서의 미국인 신규 투자 및 무역, 금융을 금지하는 제재 조치를 단행한 데 이어 이날 러시아 국책은행인 대외경제은행(VEB)과 방위산업 지원특수은행인 프롬스비아즈은행(PSB) 및 42개 자회사를 제재대상으로 지정해 서방과의 거래를 전면 차단했고 이들의 해외 자산을 동결했다.
미국뿐만 아니라 서방 주요 국가들도 제재를 실행하고 있다. 우선 독일은 러시아와 독일 사이의 가스관인 '노르트 스르팀-2' 사업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러시아에서 발트해 해저를 통과해 독일까지 이어지는 약 1230km의 파이프 라인을 의미하는데, 독일은 저렴한 가격으로 천연가스를 확보하기 위해 2012년 이 사업을 시작했다.
영국은 로시야은행과 크림반도에 위치한 흑해은행 등 5곳의 은행기관에 대해 영국 내 자산 동결, 영국의 개인 및 기업과 거래를 금지하는 제재 조치를 가했다. 이들 은행은 푸틴 대통령의 측근이 이용한다고 추정되는 곳이다.
이와 함께 영국은 푸틴 대통령의 측근 기업인인 겐나디 팀첸코와 보리스 로텐베르그, 그의 조카인 이고르 로텐베르그 등 3명을 개인 제재 대상에 포함시켰다. 이들에게는 영국 내 자산동결, 영국 개인 및 기업과 거래 금지, 입국금지 등의 제재가 부과된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추가적인 제재가 준비 돼있다면서, 러시아가 런던 금융 시장에서 국채 발행을 하지 못하도록 막겠다는 의사도 내비쳤다.
유럽연합(EU)에서도 러시아에 대한 신규 제재 조치가 실시됐다. EU 외무장관들은 이날 프랑스 파리에서 긴급 회의를 갖고 우크라이나 동부지역 독립 승인에 관여한 러시아 하원의원 및 은행과 해당 지역에 있는 사업체 등을 제재 대상으로 올리는 데 만장일치로 합의했다.
EU는 또 도네츠크·루한스크 인민공화국과 무역을 금지하고 EU 금융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러시아 정부의 능력을 제한하기로 결정했다.
미국과 유럽 등의 연이은 제재 조치에 대해 러시아는 "근거가 없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의 독립을 승인하지 않았다면 제재도 없었을 것이라는 시각은 착각이라며, 러시아의 '행동'이 없었어도 서방에서는 제재를 가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의 제재 대상에 오른 러시아 대외경제은행(VEB)은 <스푸트니크>통신에 "미국의 제재는 러시아 경제를 발전시키는 우리의 임무 수행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며, 적법한 권리와 이익을 보호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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