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전광석 같은 행보로 우크라이나가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로 몰리고 있다. 푸틴은 21일 오전(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 친러시아 분리주의자들의 공화국인 도네츠크 인민공화국(DPR)과 루한스크 인민공화국(LPR)의 독립을 인정하는 법령에 서명한 데 이어 이들 공화국과 사실상의 동맹 조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같은 날 오후 "평화 유지"를 명분으로 이 지역에 러시아군을 투입할 것을 명령했다. 독립 승인 → 동맹 조약 체결 → 러시아군 투입 명령으로 이어진 일련의 행보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개입의 길을 트려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러시아의 강공에는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의 동진을 둘러싼 오랜 갈등이 근본적인 배경으로 똬리를 틀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주요 국가들은 냉전 종식 및 독일 통일 과정에서 소련에게 나토를 동쪽으로 확장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2000년 집권 직후부터 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온 푸틴은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가능성마저 제기되자 '전쟁불사론'을 선택하고 말았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불가를 보장하라고 요구하면서 우크라이나 주변에 군사력을 대폭 증강한 것이다.
전운이 감돌던 와중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중재 외교에 나섰다. 마크롱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및 푸틴과 전화통화를 하면서 외교적 해법을 모색한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문제에 대해 미국은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이 문제는 "우크라이나와 나토가 결정할 문제"라고 밝힌 것이다.
그러자 푸틴은 미국이 바뀐 것이 없다며 본격적인 실력 행사에 나서고 있다. 나토가 우크라이나를 러시아를 위협하기 위한 군사 기지로 만들려고 시도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이를 저지하기 위해 '예방 전쟁'도 불사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전쟁의 북소리는 커지고 있는데, 바이든 행정부의 '전쟁 예방' 노력은 이렇다 할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미국이 주요하게 선택한 방식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경우 가혹한 경제 제재가 뒤따르게 될 것이라는 경고이고, 또 하나는 우크라이나 인근에서의 군비증강이다.
물론 미국은 외교적 해법도 강조해왔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문제, 즉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문제에 대해에 대해 비타협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의 전쟁 예방 노력이 러시아의 예방 전쟁 불사론에 한참 뒤처지고 있는 것이다.
이 사이에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말았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의 친러 공화국들을 승인하고 동맹관계까지 맺었기 때문에 이를 되돌리기가 쉽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러시아로서는 크림반도 합병에 이어 중요한 완충지역을 확보함으로써 우크라이나, 더 나아가 동유럽을 둘러싼 지정학적 경쟁에서 세력 균형 내지 우위에 설 수 있게 되었다고 여길 수 있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물론이고 나토가 이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자명하다.
그러나 전쟁을 막기 위한 노력이 여기에서 멈춰서는 안 된다. 열쇠를 쥐고 있는 바이든과 푸틴은 조속히 어떤 형태로든 대화에 나서야 한다. 당장 시급한 긴장 완화 방안부터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문제, 우크라이나의 영토적 통합성 유지 문제, 우크라이나 중립화 방안에 이르기까지 협상 테이블에 모든 의제를 올려놓고 협상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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