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 문제가 불거진지 3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전쟁 직전까지 갔던 대립 정책도, 역사상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을 탄생시켰던 유화 정책도 결국 북한의 핵 고도화를 막지 못하면서 북핵 문제 해결의 방향 자체가 불투명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재임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냈던 H.R. 맥마스터는 지난 1월 펴낸 저서 <배틀 그라운드 : 끝나지 않은 전쟁, 자유세계를 위한 싸움>에서 북한에 대한 '최대 압박 정책'이 답이 될 것이라고 수차례 강조하며 2018년 남북, 북미 정상회담으로 인해 이같은 정책이 계속 실행되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미국과 북한이 전쟁 직전까지 갈 것 같은 말싸움을 벌였던 2017년, 맥마스터는 국가안보보좌관으로서 대북전략을 비롯한 대외전략을 담당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모든 선택지가 테이블위에 있다"며 군사 행동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보였고, 여기에 발끈한 북한은 "전면전에는 전면전으로, 핵전쟁에는 핵타격전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맞섰다.
맥마스터는 그해 한국에서 대통령 선거가 끝난 이후 정의용 당시 국가안보실 실장과 만나 대북정책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는 과정에서 "이전의 대북 정책에서 문제가 됐던 두 가지 잘못된 가정을 거부할 것을 제안했다. 첫째는 북한의 개방이 정권의 본질을 바꿀 것이라는 햇볕정책의 개념이며 둘째는 전략적 인내 정책의 기본 전제인 북한 정권은 지속 불가능하고 붕괴 직전에 있거나 적어도 핵으로 무장한 북한이 출현하게 되기 전에 붕괴할 것이라는 가정"이었다고 소개했다.
맥마스터는 또한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이후인 2017년 6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처음으로 정상회담을 가졌을 때 "그(문 대통령)와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한 최대 압박 전략에 동의했다"며 "미국과 다른 국가들이 김정은이 점점 더 번영하는 북한에서 계속 통치를 해나가는 미래를 구상하도록 이끌 수 있다는 가정을 시험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맥마스터가 주장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공식 정책으로 채택했다는 '최대 압박 전략'은 북한에 강력한 제재를 시행하는 한편 군사 행동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함으로써, '힘'으로 북한의 비핵화를 유도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그는 북한이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가하고 대외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였던 2018년, 정의용 실장과 야치 쇼타로 당시 일본 국가안전보장국 국장 간 3자 회담을 했을 때도 최대 압박 전략을 고수했다. 맥마스터는 당시 3국이 이와 관련한 세 가지 원칙에 합의했다고 회고했다.
"우리는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할 원칙들 세 가지를 만들었다. 첫째, 다른 국가들이 최대 압박 전략을 지지하도록 설득하며 그저 협상을 이끌어내기 위해 처음부터 구속력이 약한 합의를 받아들이려는 유혹에 저항할 것이다.
과거에는 북한이 핵무기 및 미사일 실험 중단에 대한 대가로 한국과 미국이 합동군사훈련을 중단하는 '동결 대 동결' 같은 구속력 약한 합의들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북한은 정권에 대한 압박과 제재를 줄이는 것 같은 원하는 보상을 받아갔다. 앞으로는 이런식의 합의가 출발 지점이 되어서는 안되었다.
둘째 우리는 외교적 노력과 군사적 행동을 위한 계획을 따로 분리해 생각할 수는 없다. 외교적 성공은 필요한 경우 북한에 대해 무력을 사용할 수 있는 의지와 능력에 달려 있다.
셋째 우리는 무엇보다 제재 조치들을 조기에 해제하거나 혹은 대화가 이뤄지는 것만으로도 북한 정부에 보상하려는 노력에 저항할 것이다. 비핵화를 향한 돌이킬 수 없는 움직임이 시작될 때까지는 북한 정권에 대한 제재가 유지될 것이다"
맥마스터는 이러한 압박 전략으로 인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부터 외부와 대화에 나오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는 18개월 만에 오바마 행정부 8년 임기 시절보다 더 많은 북한 소속 단체들에 대한 제재 조치를 가했다. 김정은은 자세를 낮추고 대화를 청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분명하다"며 "그의 첫 번째 조치는 문 대통령의 북한 개방 요청에 응하는 것이었다"고 평가했다.
맥마스터는 "나는 미국과 북한의 정상회담에 회의적이었다. 김정은 정권에 대한 외교적, 그리고 경제적 압박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는 제재 조치 시행에 소홀해질 것이고, 우리가 시작한 최대 압박 전략은 아직 시작 단계에 불과했다"면서 북한과 회담을 통한 문제 해결보다는 북한을 굴복시키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입장을 유지했다.
그는 2018년 당시 한미일 3국 안보실장과 만남에서도 "남북관계의 개선은 긴장을 줄이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하지만, 우리는 비핵화를 향한 분명하면서도 검증 가능한 진전이 있을 때까지는 제재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또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북한에 대한 압박을 줄여줄 수 있는 동결 대 동결이나 그밖의 예비 합의에 대한 논의를 거부해야 했다"고 강조했다.
맥마스터는 이러한 입장을 강조한 배경으로 "김정은 위원장이 '위험을 감수할 의향'이 있는 파격적 성향의 미국 대통령과, 근본적으로 다른 남북관계를 추진하려는 한국 대통령이 잠시나마 의견이 일치하는 모습을 기꺼이 이용하려 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맥마스터의 이러한 구상은 그가 2018년 3월 국가안보보좌관에서 물러나면서 트럼프 정부의 대외 정책으로 자리잡지 못했다, 이후 북미 정상은 두 차례의 공식회담 및 한 차례의 약식 회담을 가지며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가까워진 듯한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북미 정상회담은 결론적으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2019년 2월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됐고, 이후 그해 6월 판문점에서 북미 정상이 다시 만나 10월 실무회담까지 이끌어냈으나 끝내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북미 정상회담이 실패로 끝나고 북한의 연이은 미사일 시험 발사가 이어지고 있는 2022년 현재의 시점에서 보자면, 2018년 당시 북미 정상회담이 아닌 맥마스터의 주장대로 최대 압박 정책을 이어가는 것이 문제 해결에 더 적절한 선택지가 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문제는 북한에 대한 최대 압박 정책이 실제 효과를 거두려면 '중국'의 참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이다. 북한은 경제 및 정치적 측면에서 상당 부분 중국에 의존하고 있어서, 중국의 행동이 없는 한 서구 국가들의 제재가 아무리 강력해도 이를 체제를 흔들만한 타격으로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맥마스터 역시 이 부분을 지적하고 있다. 그는 "일부에서는 제재가 효과적이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대북 제재는 단 한 번도 완전하게 시행된 적이 없었다"며 "예를 들어 중국과 러시아에서 북한 출신 이주노동자들을 강제로라도 돌려보내게 된다면 북한 정권의 외화 획득 방법은 더욱 제한되고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 계획에 대한 지출과 북한 주민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지출 사이에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중국의 협조가 필수적이라고 진단했다.
그런데 현재의 미중 관계에서 미국이 중국에 이러한 협조를 구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게다가 북한과 마찬가지로 중국도 굴복시켜야 할 대상, 싸워 이겨야 할 대상으로만 규정하고 있는 맥마스터의 세계관이 확고하다면, 중국이 굳이 '최대 압박 전략'에 동참할 이유가 없기도 하다.
사드 배치 지연? 동맹 해체하겠다는 건가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중국의 협조를 구하고 싶지만, 중국의 팽창은 막아야하는 미국의 모순된 입장은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의 한반도 배치 사안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맥마스터는 2017년 6월 정의용 실장과 만남에서 "(정의용 실장이) 사드의 남은 미사일과 부품들의 배치를 늦춰 이 문제에 대한 더 많은 분석과 의회 승인 및 환경 연구 완료를 위해 시간을 버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해왔다"며 "나는 그의 제안이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그는 "(한국 정부의) 그런 제안을 지연 전술이나 혹은 중국 측을 달래기 위해 동맹국의 역량을 배신하려는 시도로 아주 나쁘게 볼 수도 있었다"며 "사드 배치 지연이 한반도에서 60년 이상 전쟁을 막아온 동맹을 해체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맥마스터가 해당 저서에서 북한 문제에 대한 본인의 경험 및 주장을 서술하면서 이렇게까지 강한 어조로 한국을 압박한 대목은 찾기 어렵다. 사드가 사실상 중국을 겨냥했다는 점을 상기했을 때 이는 대(對)중국 견제가 미국의 핵심 이익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석된다.
한미일 3국 공조를 강조하는 것 역시 이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맥마스터는 "서울과 도쿄 사이의 긴장은 우리 공동의 적들에게만 이득이 될 뿐"이라며 일본군 '위안부'문제에 대해서도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제국이 저질렀던 범죄에 대한 속죄와 보상을 다시 요구하는 한국의 태도는 일본 지도자들로부터 방어적인 대응을 이끌어내고 있다고 느껴졌다. 그들은 이미 이전세대의 범죄 행위에 대해 속죄할만큼 속죄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말해 사실상 일본 정부의 입장을 옹호했다.
미국 입장에서는 중국에 대응하기 위해 한미일 3국 공조가 필요하지만, 이는 두 가지 측면에서 현실과 괴리감이 있는 전략이다. 우선 맥마스터가 북핵 문제의 해결책으로 언급했던 북한에 대한 '최대 압박 전략'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협조가 필수적인데, 한미일 3국 공조만 강조해서는 이를 달성할 수 없다.
또 한 가지는 미국이 한국과 일본을 붙잡아둘 수 있는 이른바 '인센티브'를 줄 수 있냐는 문제다. 한국과 일본은 그 정도는 다르지만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느 쪽에 설 것인지를 강요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계속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군사적인 측면에서도 미국의 안전보장이 필요한데, 이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가 의문이다.
맥마스터도 이 부분을 우려하고 있다. 그는 2017년 당시 정의용 실장과 만남에서 "나는 해외 문제에 개입에 대한 경계심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미국 고립주의에 대한 우려를 설명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의 모든 중요한 요소들이 국경에 장벽을 세우고 미국의 영토만 방어하며 장기간 이어지는 해외 작전을 끝내는 쪽으로만 집중되고 있었다. 적어도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다른 국가들, 특히 동맹국들이라면 자신들의 일은 스스로 책임지기를 바랐다"고 전했다.
이렇듯 미국은 대외 문제에는 되도록 관여를 줄이고 동맹국들이 스스로 안보를 책임지는 것을 골자로 하는 이른바 '고립주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이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으로 시작됐든, 아니면 트럼프 대통령이 이같은 흐름을 포착해서 자신의 정책으로 만들었든지 간에 현재의 바이든 정부에서도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의 고립주의는 '상수'로 봐야 한다.
이처럼 맥마스터의 구상은 현실화하기 어려운 것들의 조합으로 구성돼있다. 이 비현실적인 구상의 원천에는 적대적인 상대를 굴복시켜야 한다는 세계관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는 역사적으로 패권을 잡았던 국가들의 흥망성쇠를 살펴봤을 때 자연스럽게 도출될 수 있는 결론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 과거와 달리 현 시점에서 상대를 굴복시키기 위해 충돌하게 될 경우, 패권을 두고 다투는 국가들만의 피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칫 인류의 공멸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생존을 위해 '적'으로 분류되는 세력들과도 공존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야 한다. 맥마스터의 대결적 세계관은 명확한 답을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가 어렵다. 여기서의 '생존'이 민주주의와 자유, 평등의 인류 보편적인 가치를 지켜내기 위한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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