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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 책임이 깃털처럼 가벼우면, 기업은 안전에 비용을 안 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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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 책임이 깃털처럼 가벼우면, 기업은 안전에 비용을 안 들입니다"

[김용균 재판 의견서 ⑥] 류현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

2018년 12월 11일 새벽,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석탄운송 컨베이어벨트를 점검하던 스물넷 하청 노동자 고 김용균 씨가 기계에 끼어 숨진 채 발견됐다. 김 씨의 소속 회사인 한국발전기술이 만든 컨베이어벨트 점검 작업 2인 1조 지침은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았다. 전부터 제기됐던 하청 노동자들의 컨베이어벨트 안전 설비 개선 요구도 여러 번 묵살됐다.

원청인 한국서부발전과 한국발전기술 법인을 비롯 이 사고의 책임자에 대한 1심 선고가 2월 10일로 예정돼있다. 이를 앞두고 시민 1만여 명이 법원에 제출할 의견서를 썼다. 고 김용균 노동자 산재사망의 책임자를 엄중히 처벌해 한국사회에 다시는 그와 같은 비극을 당하는 이가 없도록 해달라는 마음을 재판부에 전하기 위해서다.

김용균재단이 모은 김용균 재판 의견서 중 일곱 편을 싣는다. 앞의 네 편은 한국마사회 고 문중원 기수 부인 오은주 씨, 건설노동자 고 김태규 누나 김도현 씨, 건설노동자 고 정순규 아들 정석채 씨, 고 이한빛 PD 아버지 이용관 씨 등 산재유족이 쓴 것이었다. 뒤의 세 편은 은유 작가, 류현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대표의 의견서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노동자 건강권 운동 단체인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소장의 직책을 맡고 있는 직업환경의학전문의 류현철이라고 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생명과 안전에 대한 의식 수준은 날로 높아져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는 세월호의 비극이 중요한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세월호가 뒤집힌 채로 수 시간에 걸쳐 가라앉는 것을, 생떼같이 어린 목숨이 눈앞에서 죽어가는 것을 생생히 지켜 보면서 '사람이 그냥 죽는 것이 아니구나, 다 이유가 있는 것이구나'라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절차와 과정이 무시되고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아서 죽임을 당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인식의 변화는 일터에서 노동자들이 죽고 다치는 것도 다시 보게 만들었습니다. 석탄화력발전소 하청 노동자 김용균의 죽음 역시 달리 보기 시작했고 높아진 사회 전반의 생명·안전에 대한 감수성에 기반한 사회적 요구가 법과 제도의 변화를 견인했습니다. 2019년에는 김용균법이라는 이름으로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부개정되었고, 올해 초에는 중대재해처벌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통과되었고 시행을 앞두고 있습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요구된 배경에는 그동안 일터에서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노동자들의 손상과 죽음을 산업안전보건법 등의 기존의 법으로 해결하지 못해 왔다는 문제의식이 담겨있었습니다. 산업안전보건법을 통해 사망재해에 대해 사업주와 법인을 처벌할 규정이 있으며, 재해가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안전·보건조치의무 위반에 대해서 처벌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산업재해를 바라보는 기존의 법리와 사법적 관행으로는 처벌의 수준이 낮아 기존의 법으로는 재발 방지에 필요한 각별한 노력과 자원을 투자할 동기를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 속에 새로운 법이 도입되기에 이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법리나 사법적 판단과 양형이 만고불변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법리적 판단의 대상이 되는 사안을 둘러싼 사회적 인식과 규범의 변화에 따라서 시대에 부응하고 관통하는 법의 적용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노동자들의 위험과 기업의 위험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기업의 위험 관리활동이 노동자들을 손상과 죽음에서 보호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의 손상과 죽음을 초래하는 일터의 위험이 기업에도 경영상의 위험이 되고, 노동자의 안전이 기업의 이윤으로 연결되는 만드는 것이 핵심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일터의 위험을 파악하고 노동자들의 안전을 확보하는데 드는 ‘사전예방’ 비용보다 노동자들의 손상과 죽음을 포함한 위험의 결과에 대한 ‘사후 처리’비용이 현저하게 낮은 상황입니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범들에 대한 처벌 수준을 분석한 연구와 분석들은 사망 산재에 대해서 개인이나 법인이 부과받는 벌금은 500만 원대를 넘지 않는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의 실질적 안전을 도모하는 것이 기업 이윤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고, 위험을 방치한 결과로서 발생한 중대재해에 대해서도 사후척 책임이 깃털처럼 가벼운 상황에서는 기업들이 선제적이고 적극적으로 위험 관리에 비용을 들일 동기가 발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처벌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손상과 죽음이 끊이지 않고 있는 오늘의 한국사회에서는 기업과 사업주의 방기된 책임의 문제가 반드시 제기되어야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윤을 위한 기업활동의 과정 속에서 기본적인 안전조치가 무시되어 노동자들이 죽음에 이르도록 하는 관행을 용인해왔던 기업과 그 대표자에게 엄중한 책임을 묻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산업안전보건법의 전부개정을 이끌었고, 나아가 새로운 법리의 진전을 가져온 중대재해처벌법의 제정의 기폭제가 되었던 노동자 김용균의 산재 사망에 대한 책임을 묻는 이번 재판은 수많은 노동자들과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으며 판결의 의미도 지대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부디 진전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수준에 걸맞는 일터의 안전 수준이 확립될 수 있도록 엄중한 판결을 내려주시길 간곡히 요청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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