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이자 민주화 운동가 고 배은심 여사가 떠난 다음날 서울에서도 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 위한 자리가 마련됐다.
'민주의 길 배은심 어머니 사회장 장례위원회'는 10일 서울 서대문 연세대학교 한열 동산에서 배 여사의 명복을 빌기 위한 추모의 밤 행사를 진행했다. 300여 명의 시민이 이 자리에 참석해 배 여사를 추모했다.
이한열 장학생부터 청소노동자까지...추도식을 찾은 시민들의 이야기
배 여사가 남긴 넓은 족적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추모의 밤에 온 시민은 다양했다. 이한열 열사와 비슷한 시대를 살며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이도, 이한열 장학금을 받고 대학을 졸업한 이도, 이한열 열사가 다녔던 학교를 청소하는 노동자도 있었다. 이들은 각자 배 여사에 대한 기억을 회상하며 그를 떠나보낸 마음을 표현했다.
민주화 운동가이자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함께하려 했던 사람
추도식의 첫 순서는 배 여사의 약력을 소개하고 그의 육성이 담긴 음성 파일을 트는 것이었다. 그 속에도 시민들의 말처럼 민주화 운동가인 동시에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하고 그들과 함께하려 했던 배은심 여사의 면모가 베어있었다.
주요 약력으로는 1987년 아들 이한열 열사를 최루탄 피격으로 잃은 뒤 장례를 치르고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에서 활동을 시작한 일, 1997년부터 2000년까지 전국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유가협) 회장을 지내며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 제정 농성을 진행한 일, 2020년부터 유가협 명예회장을 지내며 최근까지도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제정을 촉구하며 농성한 일 등이 소개됐다.
음성파일에는 유가협 회원들과 있는 자리에서 <사노라면>을 부르던 배 여사의 목소리와 2017년 5월 17일 광주 5·18 구 묘역에서 세월호 유가족과 만나 배 여사가 한 말이 담겨있었다. 세월호 유가족을 만난 배 여사는 아들을 잃고 30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아픔에 대해 이야기한 뒤 이렇게 말했다.
"이제 남은 일은 우리의 몫"
추도사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한열기념사업회, 노수석열사추모사업회,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 여래걸음, 연세대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 등에서 활동한 이들이 맡았다.
김거성 전 이한열기념사업회 상임이사는 "이한열기념사업회에서 어머니 사진을 모으신다는 소식을 듣고 사진첩을 뒤적여봤다"며 "그래도 활짝 웃으시는 어머님 사진 한 두개는 건질 수 있으려나 기대했지만 쓸데없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김 전 이사는 "2020년 6월 항쟁 기념식에서 대통령에게 직접 모란장을 받으실 때 사진까지도 모조리 어머니 마음속 그늘이 찍혀나와 있었다"며 "겉으로 아무리 웃는 모습을 보여주려 하셨어도 어머니의 마음속 슬픔을 감출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송경용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이한열 열사는 죽음으로 민주주의의 문을 열었다"며 "배은심 어머니는 35년 동안의 치열한 삶으로 우리 민주주의의 길을 넓혀오셨다"고 말했다.
송 이사장은 "(배 여사는) 이한열의 어머니로서, 이 땅의 모든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젊은이들의 어머니로서, 고통당한 모든 사람의 어머니로서 거룩한 일생을 사셨다"며 "이제 남은 일은 우리 몫이다. 오늘 이 자리가 우리 어머니 일생을 기억하고 어머니께서 남겨주신 숙제를 (풀기 위해) 따박따박 실천하며 살아가도록 그렇게 다시 한 번 다짐하는 자리가 되면 좋겠다"고 밝혔다.
추도사가 끝난 뒤에는 6월 합창단 등의 공연이 이어졌다. 이어 한겨울 밤 야외에서 한 시간 가량 진행된 추도식을 함께한 시민들이 한열동산에 마련된 배 여사의 영전에 흰 국화꽃을 바친 뒤 묵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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