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였다. 기사를 쓰기 위해 취재하는 과정에서 "가치가 없다. 무시해야 한다"며 논평을 거절한 취재원도 있었다. 여성단체들도 논평 내기를 망설였다. 기사가 가치가 없다는 뜻이 아니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지난 7일 아무런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일곱 글자를 페이스북에 올린 그 '방식'이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는 것이었다.
여성단체 및 여성 관련 전문가들이 이를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고 본 이유는 이런 방식의 '던지기'가 논의를 할 기본적인 조건도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윤 후보는 성평등·성차별을 주관하는 부처의 폐지를 말하면서 관련한 어떤 합리적인 근거도 제시하지 않았다. 폐지할 이유를 제시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이후의 대안조차 제대로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여가부 폐지, 근거 없으니 반박도, 논쟁도 이뤄질 수 없다
<연합뉴스> 보도를 보면 8일 기자가 여가부 '개편'에서 '폐지'로 입장을 바꾼 이유를 설명해달라고 윤 후보에게 요청했을 때 윤 후보는 "현재 입장은 여가부 폐지 방침이다. 그리고 더는 좀 생각해보겠다"고만 말했다. 페이스북에 이후 "더 이상 남녀를 나누는 것이 아닌 아동, 가족, 인구감소 문제를 다루는 부처를 신설"하겠다고 밝혔으나,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근거며 지향점이 아니라 윤 후보의 머릿속에서 여가부는 '남녀를 나누는 기능'을 하는 부처로 생각되고 있다는 추정, 그리고 성평등·성차별을 다루는 여가부의 본질적 기능은 무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짐작 정도다.
근거가 없으니 반박도, 논쟁도 이뤄질 수 없다. 김민문정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는 이 방식이 "무책임하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대선 후보는 본인의 정책이 어떤 의미가 있고 어떤 지향과 방향을 가지고 있는지 설명하고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내 놓지 않는 것은 결국 준비가 안 됐다는 증거"라며 "아무리 선거 전략이라고 해도 최소한의 역할과 책임을 다 해야 한다. 이번 건은 이슈만 만들겠다는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다.
당사자가 합리적인 설명을 내 놓지 않아도 공당은 공약에 대한 논리적 근거를 요구받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당의 다른 인사가 이를 '수습'하고 '보완'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은 10일 문화방송(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과 한 인터뷰에서 "여가부는 정부부처 개편 때마다 다른 부처에서 흡수하는 게 맞지 않느냐는 논의가 있었다. 윤 후보는 여러가지 의미에서 다른 임무를 포괄하는 방식의 부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며 "어쨌든 (윤 후보가) 정확하게 입장을 내 놓지 않으셨다"고 했다.
주장만 하고 근거 제시를 안 하니 반박하는 측에서 근거를 짐작하고 찾아주고 설명해주고, 그것을 또 반박까지 해 줘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 소장은 9일 페이스북에 "남초(커뮤니티 등)에서 여가부 폐지 주장의 핵심 근거 중 하나로 주구장창 얘기하는건 게임셧다운제"라며 "게임셧다운제는 2011년 이명박 정부 때 시행됐고 지금 윤석열 캠프에 합류한 신의진, 손인춘 의원이 주도해서 만들어진 법이다. 그리고 권인숙, 류호정 등 페미니스트 의원들이 나서 개정안을 대표발의하여 없어졌다"고 설명했다.
젠더 관점을 반영하지 않겠다는 선언
대선 후보의 정책 제안으로서의 요건을 갖추지 않고 있는 이 '일곱 글자'는 "정책"이라기보다 사실상 "집권 뒤 주요 가치나 정책에 젠더 관점을 반영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는 "윤 후보가 여가부를 폐지한 뒤 모든 부처에 양성평등 부서를 만들어 부서 정책을 성주류화 하겠다고 하지 않는 이상 여가부 폐지 공약은 젠더 관련해서 정책을 다루지 않겠다, 국정 철학에 성평등은 없다는 선언에 불과하다고 본다. 또 윤 후보에게 성평등이라는 가치는 치워도 되는 것이고 여성유권자는 포기하겠다는 선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모든 게 20대 남성의 표심을 잡기 위한 행동이라는 것이 지배적인 해석인데, 20대 남성 유권자들은 이 정책으로 삶의 질이 나아질까. 단적으로 여가부가 폐지되면 20대 남성이 당면하고 있는 취업난이나 주거 문제가 해결될까. 전문가들은 "정반대"라고 말한다. 권 대표는 "사실 윤 후보는 성평등 관점 뿐 아니라 노동문제에 있어서도 차별과 불평등 구조를 해체하려는 의지가 전혀 없어 보인다. 여가부 정책 때문에 청년들의 삶이 나빠진 게 아니고 구조 실패의 책임은 기득권에 있는데 기득권이 자신들의 실패에 대한 분노를 여성에게 돌리는 것"이라며 "차별이나 불평등 개선 정책을 거부하게 되면 다수의 20대 남성은 더 큰 차별과 불평등 속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지역·계층 등 남성들 내 차별과 불평등이 있는데 이 문제에 집중하지 않는다면 20대 남성들 중에서도 많은 자원을 가진 남성들에게만 기회가 돌아갈 것"이라고 짚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해서 '2030'의 표를 얻을 수나 있을까. 유창선 시사평론가는 7일 페이스북에 윤 후보의 '일곱 글자'에 대해 "국민들이 무슨 남초 사이트의 회원인 줄 아는 것 같다. 국힘이 요즘 입만 열면 말하는 2030은 허구이다. 거기서 여성 빼고, 30대 빼고, 여혐 아닌 20대 빼고, 그래서 ‘일부 이대남’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라고 꼬집었다.
이 말이 사실인지, 이 전략으로 '정말' 2030 다수의 표를 얻을 수 있을지, 그리고 2030 이외 세대의 표를 얻을 수 있을지 궁금한가. 그렇다면 이 방법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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