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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핵관'과 '사람에 대한 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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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핵관'과 '사람에 대한 충성'

[김종구의 새벽에 문득]

맹자가 양나라 양왕(襄王)을 만나고 밖으로 나와 사람들에게 말했다. "왕은 멀리서 봐도 백성을 다스릴 임금 같지 않았고, 가까이서 보아도 경외할 만한 점이 전혀 없었다. 왕이 느닷없이 내게 묻더라. '천하가 어지러운데 어떻게 정리되겠습니까?' 내가 대답했다. '하나로 정리될 것입니다.' 그러자 왕이 물었다. '누가 천하를 하나로 만들 것 같습니까?' 내가 대답했다. '사람 죽이기를 좋아하지 않는 자가 천하를 통일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맹자> 제1편 '양혜왕(상) 6장)

양왕은 혜왕(惠王)의 아들이다. 맹자가 혜왕을 찾아갔던 이듬해에 혜왕이 죽고 왕위를 계승했다. 맹자는 양왕을 만나 본 뒤 뒤 임금의 자격이 없는 인물이라고 결론짓고 양나라를 떠나 제나라로 간다. 도올 김용옥은 "양왕은 시대 감각이나 사명, 비전이나 열정 같은 것이 전혀 없는 인물이었던 것 같다. 임금으로서의 풍도와 인격을 갖추지 못했다는 뜻이다"고 해석했다. (<맹자-사람의 길>)

김종인 전 국민의힘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윤석열 후보와 결별한 뒤 공개적으로 쏟아낸 윤 후보에 대한 '혹독한 평가'를 접하며 문득 <맹자>의 그 대목이 떠올랐다. 물론 김 전 위원장과 맹자를 동렬에 놓고 말하는 것은 맹자에 대한 큰 결례가 될 것이다. 김 전 위원장은 한때 "별의 순간"을 운운하며 '멀리서 볼' 때는 윤 후보를 높게 평가했다. 애초 사람을 잘못 판단한 것이니 이제 와서 누구를 탓할 처지도 못된다. 양왕이 맹자를 곁에 붙잡으려 했던 것과 달리 윤 후보는 김 전 위원장을 매몰차게 내쳤다. 다만 "가까이서 보니 전혀 경외할 점이 없다"고 한 대목에서는 일치한다. '사람 죽이기를 좋아하지 않는 자가 천하를 통일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도 시대를 떠나 지도자의 덕목과 관련해 음미해볼 대목이다.

김 전 위원장과 윤 후보 갈등의 밑바탕에는 '자질론 불신' 말고도 이른바 '윤핵관'이 존재한다. 김 전 위원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 등에서 윤핵관 문제에 대해 격한 감정을 토로했다. 권성동, 윤한홍, 장제원 의원 등 '윤석열 후보 쪽 핵심 관계자'로 지목된 사람들이 선대위 공식 직책에서 물러난 것에 대해서도 시큰둥했다. "밖에는 공식적으로는 후퇴한 것처럼 돼 있지만 내부적으로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것 같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비서실 등에 모두 자기 사람들을 박아놔서 그 사람들을 통해 얼마든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윤핵관'이 단지 몇몇 의원 등에 머물지 않고 범위가 넓고 두터우며 윤 후보 주변을 겹겹이 에워싸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쪽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의 관측도 대략 비슷하다. 이들이 전하는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사실상 윤핵관 노릇을 하는 사람들은 몇몇 의원들이라기보다는 그들의 보좌관급 인물들이다. 대개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행정관 등을 지냈고 연령대로는 거의 40대들이다. 이들은 선거판의 '선수'들이다. 선거 기획력이나 보고서 작성 능력 등이 매우 뛰어나다. 윤 후보가 볼 때는 이들이야말로 능력도 있고 온몸을 던져서 자신을 돕는 사람들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다. 이들이 완전히 윤 후보 주변에 스크럼을 짜고 있다. 이들은 애초에는 이준석 대표와 사이가 좋았으나 이 대표 취임 후 자신들을 챙겨주지 않는다는 배신감이 팽배해지며 사이가 완전히 틀어졌다. 이 대표에 대한 공격의 핵심에도 이들이 있다.'

정치권 동네 특성상 이런 종류의 이야기에는 허수가 개입해 있기 마련이지만, 김 전 위원장의 말과 함께 유추해보면 어렴풋이 그림이 그려지기는 한다. 결국 지금 윤 후보 주변에서는 비선 정치와 측근 정치가 활개를 치고, 문고리 권력이 득세해 있다는 이야기다. '윤핵관'의 '관'은 '관계자'의 준말이니 한자로는 '關'인데, 실제로는 '官'이고 '冠'인 셈이다. 이들은 직책이 없어도 머리에 높은 관(冠)을 쓴 채 선거운동의 실제적 주무관, 당에 대한 감독관으로 군림하고 있는 것이다. 김 전 위원장의 말도 정확히 이 지점을 가리키고 있다.

대선 후보와 정당 공식 조직 간의 긴장과 갈등은 으레 있었다. 그런데 윤 후보의 행보를 보면 역대 어느 정당 대선 후보한테도 보지 못한 유별난 모습이다. 국민의힘 정당 조직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고 존중하지도 않는다. 이는 일차적으로는 국민의힘이 '무연고자'를 지지율만 보고 영입한 업보이기도 하고, 윤 후보 개인의 독특한 기질 탓도 있다.

윤 후보는 검사 시절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대중에게 처음으로 강렬한 인상을 준 것도 바로 그 발언이다. 훗날 이 발언은 '검찰 조직에 대한 충성'을 뜻하는 말로 해석되기도 했으나 윤 후보의 행보를 보면 딱히 그런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나는 나 자신의 욕망에만 충성한다"는 말이 정확한 해석이 아닐까. 검찰의 경우도 그가 검찰 조직을 진정으로 위한다기보다는 자신의 욕망 실현의 도구로서 사랑한 것에 불과한 것 같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신의나 예의보다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왔다. 자신을 검찰총장으로 발탁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태도 돌변도 그렇고, 김종인 전 위원장과의 만남과 헤어짐 역시 그렇다.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최고의 기준도 윤 후보 자신에 대한 충성에 두고 있는 듯하다. 충성심이 희박하다고 여기거나 비위에 거슬리는 모습을 잘 용인하지 않는다. 김종인 전 위원장이나 이준석 대표와의 갈등의 근본 원인도 여기에 있고, '윤핵관'의 득세도 이들의 충성심을 높이 산 결과일 것이다.

윤석열 후보와 이준석 대표가 극적으로 갈등을 봉합했다고는 하지만 위태로운 평화로 보인다. 지지율의 급전직하에 직면해 도리 없이 이 대표와 손을 잡았지만 언제라도 깨질 수 있는 살얼음판 같은 관계다. 특히 선거가 끝나고 나면 상황은 더욱 달라질 것이다. 선거를 눈앞에 두고도 후보가 당 대표를 인정하지 않았는데 만약 대선에서 승리라도 하면 어떤 태도를 보일까.

한국 정치의 오랜 숙제는 책임 정당정치의 실현이다. 흔히 정당을 '대의민주주의의 생명선'이라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된 정당정치는 매우 요원하다. 정당의 안정성과 운영의 민주성, 유권자 및 당원과의 소통, 정당의 내부 쇄신을 비롯해 정상적인 당-정-청 관계 정립 등 과제가 산적해 있다. 이 대목에서 현 정부도 큰 한계를 보였고, 앞으로 민주당이 재집권해도 역시 앞날이 순탄치 않아 보인다. 그런데 지금 국민의힘과 윤석열 후보의 모습을 보면 '정당정치'라는 말을 꺼내는 것 자체가 무색해 보인다. 당의 정강정책이라는 것이 과연 무슨 기능을 발휘하는지, 그런 게 있기는 한 것인지, 윤 후보는 당의 정강정책을 제대로 한 번이라도 읽고 입당했는지 등 의문이 끝없이 몰려든다.

비선 정치, 측근 정치, 문고리 정치의 폐해를 다시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국가의 공공성과 공적 시스템이 무너진 것도 결국 비선 핵심 실세의 준동과 문고리 정치의 결과였다. 그런데 요즘 국민의힘을 보면 선거 과정에서부터 정당의 공적 시스템이 무너진 것 같다. 이는 야당만의 비극이 아니라 한국 정치의 비극이다. 직책이 없는 사람이 관(冠)을 쓰고 관(官) 행세를 하는 행태가 횡행하면 결국 어떻게 되는가. 정치의 무덤, 관(棺)을 부른다는 게 역사가 전하는 교훈 아니던가.

▲윤석열 대선 후보와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6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포옹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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