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1961년 1월 대통령직 퇴임사에서 '군산복합체'의 부당한 영향력을 경계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자신이 키운 군수산업체가 군부 및 정치인들과 결탁해 미국 민주주의를 잡아먹을 수 있는 '괴물'이 되었다는 자기반성도 깔려 있는 호소였다.
그로부터 약 60년이 지난 오늘날, 아이젠하워의 호소가 얼마나 무색해지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1년 전에 있었던 도널드 트럼프의 강경 지지자들에 의한 1.6 의회 폭동 사건은 민주주의 선진국임을 자임했던 미국에게 큰 충격과 상처를 담겼다.
이에 미국의 상당수 기업들은 2020년 대선 결과를 부정해 1.6 의회 폭동의 원인을 제공한 공화당 의원들에게 정치자금 제공을 중단하는 등 '책임 경영'을 약속했다. 여기에는 미국의 주요 군수산업체들도 포함되었었다.
의회 폭동 직후 세계 최대 군수업체인 록히드마틴은 "우리 회사는 미국의 핵심 가치를 반영할 것"이라며 정치자금 기부 관행을 혁신하겠다고 발표했다. 보잉은 이 사건을 강력히 비판하면서 "정치자금 기부를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L3 해리스 역시 "우리의 결정과 행동은 윤리적이고 정직하며 책임 있는 실천에 기초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군수산업체들의 다짐은 작심삼일로 끝나고 말았다. 2020년 대선 결과를 승인하는 표결에서 반대표를 던진 147명의 공화당 의원들 가운데 일부에게 의회 폭동 사건 이후에도 정치자금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이들 업체들 가운데에는 위에서 소개한 세 업체도 포함되어 있다. 미국의 외교전문매체인 <포린폴리시>에 따르면, 보잉은 약 19만 달러, 록히드마틴은 약 18만 달러, L3 해리스는 약 8만 달러를 대선 결과를 부정한 공화당 의원들에게 제공했다. 이들 외에도 제너럴다이나믹스, 노스롭그루먼, 레이시은 등 주요 군수업체도 이들에게 정치자금을 기부했다.
군수산업체들이 의회 폭동을 목도한 성난 민심 앞에서는 '책임 경영'을 약속하고 뒤에서는 폭동에 책임 있는 정치인들에게 정치자금을 기부하는 이중적인 행태를 일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현실은 앤드루 파인스타인은 역작 <어둠의 세계>를 떠올리게 한다. 파인스타인은 이 책에서 군수산업체-전현직 고위 군인-정치인들이 "그들만의 세계(군산정복합체)"를 구축해 어떻게 국가안보를 가장한 사익 추구를 해왔는지 낱낱이 해부한 바 있다. 이로 인해 미국은 '묻지마식 안보국가'가 되었고 "평범한 미국인들의 진정한 안보와 경제적 이익은 합법화된 뇌물의 제단에서 희생"된다고 일갈했다.
미국의 군사비는 매년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지만, 미국인들의 기대수명은 줄어들고 있는 현실은 이러한 진단이 결코 지나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미국의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이 미국 주류가 말하는 중국, 러시아, 북한 등 적대국이 아니라 미국 주류가 결탁하고 키워오면서 일체화되어온 군산정복합체임을 보여준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