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대선 주자들이 앞다퉈 '안티 페미니즘 눈치보기' 경쟁을 하고 있다. '이대남, 이대녀' 갈등 프레임에 올라탄 대선후보들이 '젠더 갈등'을 증폭시키는 분열의 정치에 올라탔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선대위 여성위원회는 4일 '젠더폭력 근절' 정책공약을 발표했다. 데이트폭력·스토킹·성폭력(젠더폭력) 가해자 처벌 및 피해자 보호 강화와 디지털성범죄 근절 등 4대 젠더폭력 근절 대책이 포함됐다.
하지만 이재명 후보는 공약발표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불참 사유를 지역 방문 일정 때문이라고 밝혔으나 주요 공약 발표회마다 참석해 직접 공약을 발표했던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이 후보는 유독 여성 관련 이슈에 몸을 사려왔다. 이 후보는 지난 연말 여성, 청소년, 노동, 기후위기 등의 이슈를 다뤄 온 유튜브 채널 '씨리얼'과 '닷페이스'에 출연하기로 했다가 번복하기도 했다.
'씨리얼' 측은 이 후보의 출연이 번복된 이유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페미 방송'에 출연 말라'는 항의가 거세 출연할 수 없다"는 이 후보측의 입장을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 후보의 출연 소식이 알려지자 디시인사이드 '이재명 갤러리'에서는 "여성 표를 얻기 위해 출연을 강행한다면 2030 남자 표는 다 잃게 될 것", "씨리얼 출연을 막아야 한다" 등의 글이 게재됐다. 이에 선대위 온라인소통단장 김남국 의원은 게시판에 직접 "일정 담당하시는 선배님께 꼭 전달하겠다"고 했고, 이 후보도 댓글을 통해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잘 새기고 실행하겠습니다"라고 호응했다.
이후 '닷페이스' 출연 일정도 무산되는 등 이 후보가 그동안 남초 온라인 커뮤니티와 적극적으로 소통해온 것과는 대비되는 모습을 보였다.
이 후보는 지난해 11월 '홍카단(홍준표 의원 지지자)이 이재명 후보님께 드리는 편지'라는 제목의 디시인사이드 게시글을 페이스북에 공유한 것을 시작으로, 디시인사이드, 딴지일보, 보배드림, 에펨코리아, 클리앙 등에 글을 직접 게시하며 접촉면을 넓혀왔다. "광기의 페미니즘을 멈춰달라"는 홍카단의 편지가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나오자 이 후보는 "제가 그 내용에 동의했다는게 아니라 한번 들어는 주자는 것"이라고 해명했으나 남초 커뮤니티 '출석'은 계속됐다.
민주당 선대위 소속 한 의원은 "선대위에 여성정책이 보이지 않는다. 선대위 일부 구성원들은 그렇게 하면 표가 된다는 계산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분열의 정치로는 청년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선대위 내에서도 20대 여성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이 있는데, 여성을 위한 무언가가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여성 지지율이 오를 수 있냐"고 지적했다.
다른 선대위 관계자도 "'이대녀', '이대남'으로 청년을 분류해서 지지율을 끌어올리려는 구상보다 노동현장에서 일하는 여성, 남성 청년들을 직접 만나보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의 행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윤 후보는 20대 남성 지지율이 눈에 띄게 떨어지자, 신지예 전 수석부위원장을 자진사퇴 '시켰다'. 결국 신 전 수석부위원장은 지난 3일 "강한 저항은 국민의힘 내부에 있었다. 사퇴하라는 종용이 이어졌다"고 밝히고 국민의힘을 떠났다.
윤 후보는 4일 국민의힘 선대위 해산과 새로 선대본 재편 계획을 밝히며 "특히 2030세대에게 실망을 줬던 행보를 깊이 반성하고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일 것을 약속 드린다"고 했다. 또한 "앞으로는 2030과 청년세대를 선거운동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게 하고 인물 영입을 하는 방식에서 저희들의 입장을 보이는 그런 것은 많이 지양하려 한다"고 말했다.
윤 후보의 발언은 신지예 전 위원장 영입에 대한 반성문으로 읽혔다. 불과 2주전인 지난달 20일 "서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같은 정당에 있으면서 토론하고 결론을 도출해야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정당이 된다"며 신 전 위원장을 감쌌던 결기는 사라졌다.
여야의 유력 대선후보들이 앞다퉈 '2030 청년', '이대남' 표심을 공략한다며 '안티 페미'에 굴복하는 태도를 보이자, 이런 행보가 오히려 '젠더 갈등'을 확대재생산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청년팔이 사회>를 쓴 김선기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연구원은 "대선 후보들이 안티페미니즘의 눈치를 본 것이면서, '청년'을 들먹이는 것은 전형적인 청년팔이"라고 비판했다.
김 연구원은 "안티페미니스트가 청년을 모두 대표하는 것도 아니"라며 "청년층 지지율 상승과 하락의 원인을 후보들의 페미니즘에 대한 입장과 행보로 환원하는 해석을 제공하는 캠프 관계자들, 정치인들, 언론사들이 오히려 '젠더 갈등'을 재생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기 때문에 여전히 특정 정파와 후보에 대한 고정 지지자보다 부동층·스윙보터가 더 많고, 20대 내에도 페미니스트·반페미니스트로 규정할 수 없는 수많은 정치적 의견들이 존재한다"며 " 페미니즘과 관련해 이미 형성된 의견을 추수하는 것은 '젠더 갈등'을 부추기고 이용하여 후보의 이익만 채우겠다는 심보다. 아직 대변되지 않은 20대의 이해관계를 어떻게 대의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 정치인에게 국민들이 기대하는 자세"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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