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현대사는 이념갈등으로 인한 국가폭력으로 격심하게 얼룩지고 왜곡되어왔습니다. 이러한 이념시대의 폐해를 청산하지 못하면 친일청산을 하지 못한 부작용 이상의 고통을 후대에 물려주게 될 것입니다. 굴곡진 역사를 직시하여 바로잡고 새로운 역사의 비전을 펼쳐 보이는 일, 그 중심에 민간인학살로 희생된 영령들의 이름을 호명하여 위령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름을 알아내어 부른다는 것은 그 이름을 존재하게 하는 일입니다. 시간 속에 묻혀 잊힐 위기에 처한 민간인학살 사건들을 하나하나 호명하여 기억하고 그 이름에 올바른 위상을 부여해야 합니다. <프레시안>에서는 시인들과 함께 이러한 의미가 담긴 '시로 쓰는 민간인학살' 연재를 진행합니다. (이 연재는 문화법인 목선재에서 후원합니다) 편집자
하내리, 오월 그믐 대학살
여보, 당신은 살아나 있는지요?
이 땅 이 하늘 아래 그 어디를 헤매는지요?
당신이 없는 동안에 친정 동네 경주김씨 씨족촌
경북 문경군 마성면 하내리엔 피바람이 불었지요
난리가 나던 바로 그해 음력 오월 그믐
양력으로 1950년 7월14일, 순사들과 군인들이 와설랑
보도연맹원 도장 찍은 사람들 모두 모이라고 했지요
경찰서에 잠시 교육받으러 가자며
금방 돌아올 거라며 트럭에 타라고 했지요
면지서 불 지른 사람들은 월악산에 들어간 지 이미 오래
참말 죄 없는 사람들만 죄가 없으니 설마 죽기야 하겠냐며
소처럼 두 눈을 껌뻑이며 군용 트럭에 탔지요
남산 아지매는 십리 길 무덤실까지 뛰어가
밭일 하던 아재를 기어코 불러왔지요
우리 마실 하내리의 오라버니며 아재들 스물일곱,
위아래 마실 합해서 쉰다섯 명이
황토재 넘어 소야교 건너 호서남면 유곡리로 끌려갔지요
한여름 무더운 길에 낯이 익은 순사가 트럭을 세우며
냇가에서 잠시 목욕이나 하고 가자며
차마 말은 못 하고 눈치껏 도망칠 기회를 주었지만
산토끼처럼 착한 사람들은 그 속뜻을 알아차리지 못했지요
교육은커녕 경찰서가 아닌 유곡 골짜기로 끌려가
아무 재판도 없이 수백 명이 몰살을 당했지요
죄라면 보도연맹 국민보도연맹 도장 하나 찍은 죄
뒤늦게 소식을 듣고는 동네방네 아수라 지옥이 되었지요
남산 아지매는 지 남편 지가 죽였다며 울고불고
겁나는 시상이라 시체 찾으러 갈 엄두도 못내다가
사흘 만에야 겨우 유곡리 골짜기로 스며들었지요
냄새 냄새 피냄새, 한여름 파리 떼, 짓뭉개진 얼굴들
누가 누구인지 도통 알아볼 수가 없으니
대충 겉옷만 보고는 가마니에 둘둘 말아 지게에 지고
허겁지겁 사십 리 길을 돌아왔지요
장례식은커녕 집마다 남몰래 묻어놓고 모두 입을 틀어막았지요
여보, 당신은 살아나 있는지요?
이 땅 이 하늘 아래 그 어디를 헤매는지요?
해마다 오월 그믐밤이면
지 가심엔 아직도 와르르 돌자갈이 구르고요
집집마다 삽작문을 걸어 잠그고
살아남은 가족끼리 비밀 제사를 지내는 밤이면
하내리의 듬산이며 부엉이벼랑이 수백 번도 더 무너지는구만요
아, 그런데 이 모두가 이승만 대통령의 특명이었다지요
국방군 헌병대와 경찰과 미국 육군 방첩부대의 소행이었다지요
혀를 깨무는 슬픔이 아니면 달도 별도 안 보이고
손발톱을 으깨는 고통이 아니면 새벽도 오지 않는구먼요
아무 죄 없이 죽어도 빨갱이
살아남아도 사돈 팔촌까지 빨갱이 가족으로
재갈이 물리고 이마빡에 신원조회 주홍글씨 박힌 채
무서워서, 그리고 또 비겁해서
여직껏 위령비 하나 제대로 세우지 못했지요
여보, 당신은 살아나 있는지요?
당신, 해방 당신은 시방 어디쯤 오고 있는지요?
기다리다 지쳐 지가 먼저 가는구먼요
*문경 유곡리 보도연맹학살 사건. 1950년 7월14∼16일 무렵 문경 사람 최소 300명 이상이 학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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