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일일 위중증 환자 수가 1000명을 넘나드는 가운데, 의료 마비 사태가 심각해지고 있다. 정부가 국립대병원 병상을 확충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으나 근본 문제 해결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특히 장기간 이어진 인력 충원 요청에 늑장 대응하고 의료 현장에서 줄기차게 제기된 민간병원 병상 동원을 정부가 기피하면서 문제를 키웠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21일 보건복지부 중앙사고수습본부에 따르면 전날(20일) 오후 5시 기준 전국의 중증환자 병상은 1388개며, 이 중 1079개가 가동 중이다. 가동률은 80.7%다.
수도권 상황은 더 심각하다. 수도권 중증 병상 837개 가운데 734개가 이미 들어찼다. 가동률이 87.7%로 90%에 가깝다.
지난달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 전환 당시 정부가 밝힌 ‘긴급 상황’ 기준은 중환자 병상 가동률 75%다. 간호 인력 부족 상황 등을 고려할 때 75%를 초과하는 현 상황은 사실상 ‘추가 가동 여력 없음’이라고 의료계는 평가한다. 병상은 남아도 병상 노동자가 없어 환자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장기화하고, 이에 따라 입원을 대기하다 사망하는 사례가 전국 곳곳에서 나오는 배경이다.
이와 관련해 전날 기준 수도권에서 하루 이상 병원 입원을 대기하는 환자 수는 420명이며, 생활치료센터 입소 대기자는 171명이다. 다만 비수도권에서는 하루 이상 병상을 기다린 사례가 없다. 특히 확진자가 몰리는 수도권 상황이 심각하다는 뜻이다.
국립대병원 병상도 충원…"일상 불편함 감수해주셔야"
현 상황 대응을 위해 정부는 국립대병원 병상 확보에 나섰다. 전날 문재인 대통령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국립대병원 의료역량을 코로나 중증환자 진료에 집중 투입하라"고 지시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이에 따라 국립대병원에서 약 200여 개의 중환자 병상이 추가 확보된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일반 환자 대응 여력은 더 떨어짐이 불가피해졌다.
이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박향 중수본 방역총괄반장은 "그 동안은 국민이 의료를 이용하시는 데 불편함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일반진료에 영향을 받지 않게끔 (코로나19 병상 가동을) 진행했지만, 앞으로는 추가로 병상을 더 확보해 일반 국민께서도 (코로나19 병상 차출로 인해 일반진료에 영향을 받는 상황을) 피부로 느끼셔야 하는 불편함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박 반장은 이어 "상대적으로 시급하지 않은 의료인력이 이쪽(코로나19)으로 투입되어야 한다"며 "국민들도 의료 이용에 있어서 (그만큼) 불편함을 감수해주셔야만 추가적인 중증환자 병상 이용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전날 <중앙일보>는 (서울 국립대병원인) 서울대병원이 한 달 안에 비상체제로 전환해 중환자 병상 100여 개를 늘리고, 이를 위해 비응급 수술을 미루는 조치에 들어가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구체적으로는 관절 수술, 당장 급하지 않은 뇌·심장 수술 등을 미뤄 중환자실 수요를 낮추고, 내과 병동 2개를 폐쇄하며, 간호 간병통합 병동도 해제해 중환자병상을 확보하겠다고 서울대병원 측은 밝혔다. 같은 방법으로 분당서울대병원과 서울대병원이 위탁 운영하는 서울보라매병원도 같은 방법으로 중환자실을 확충하기로 했다.
달리 말해 (당장 급하지는 않을 수 있어도) 실제로 중환자 병상 입원이 필요한 환자의 어려움이 발생하는 게 불가피해졌다는 뜻이다.
정부는 이와 함께 그간 코로나19 대응 사각지대로 평가된 임산부, 투석환자, 정신질환자 등 특수 환자 대응 여력도 보다 확충하기로 했다.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임산부 환자를 위한 병상이 없어 치료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실제로 나오자, 정부는 격리가 가능한 신생아실, 산모와 신생아 별도 격리 관리가 가능한 입원 시설 등을 갖춘 병상을 전국적으로 당번제로 돌리면서 상시 비워두는 체제를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서울 혜민병원, 경기 평택 박애병원, 경기 김포 우리병원, 충북 청주 충북대병원 등 4개 병원에 코로나19 확진자가 이용 가능한 투석실을 이달 중 운영하겠다고 정부는 전했다. 외래 투석을 받을 수 있는 병원은 현재 전국의 거점전담병원 26곳 중 11곳에 불과한데 관련 시설을 더 확충하는 조치다.
민간병원 병상 동원 왜 미루나
그러나 이 같은 조치로도 지금의 의료 위기에 대처하기는 역부족이라는 비판이 곧바로 제기됐다.
이날 보건의료단체연합은 논평을 내 국립대병원 병상 동원만으로는 위기 대응에 태부족하다며 △수도권 민간 병원에 병상 동원령을 내려야 하고 △공공병원 정규직 신입 간호사를 대거 충원해야 한다고 정부에 촉구했다.
우선은 현실적으로 국립대병원 동원만으로 확보할 수 있는 병상 수에 한계가 뚜렷하다는 점이 문제로 꼽힌다.
우석균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는 "전국의 상급종합병원 45개 중 22개가 수도권에 있는데, 이 중 국립대병원은 분당서울대병원을 합쳐 2개(서울대병원, 분당서울대병원) 정도에 불과하다"며 "국립대병원이 전체 병상의 10% 정도를 코로나19 환자를 위해 비우기로 한 만큼, 수도권 병상의 90%를 차지하는 나머지 사립대병원도 병상을 비워야 의료 문제 대응이 가능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 대표는 "서울대병원만큼 일명 '빅5'로 불리는 수도권 사립대병원도 중환자를 많이 돌볼 여력이 된다"며 "정부가 당장 사립대병원에 병상 동원령을 내려야 한다는 지적을 보건연합이 2년째 했음에도 그간 정부가 이를 기피했다"고 지적했다.
'비상시국'에도 의료노동자 충원 기피하는 정부
근본적으로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의료노동자를 대대적으로 선발해야만 지금의 문제에 대응할 능력을 갖출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전날 전국 국립대병원 노조가 결성한 국립대병원노조 공동투쟁연대체는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와 국립대병원장들이 코로나19 비상 상황에도 의료 인력 충원에 소극적으로 대응해 현장의 어려움을 가중한다고 비판했다.
공동투쟁연대체에 따르면, 국립대병원이 정부에 제출한 내년도 인력증원 요청은 기획재정부에 의해 거부됐으며, 한시 증원을 포함해 요청 인력의 36% 수준만 승인됐다. 구체적으로 국립대병원이 요구한 증원 인력 수준은 3753명이며, 정부는 1362명의 증원을 승인했다. 그 중에서도 433명은 병원증설과 코로나19로 인한 한시 증원 인력이다. 즉, 정식 승인 인원은 929명에 불과하다.
이에 관해 정재범 보건의료노조 부위원장은 "지난해에 대통령이 간호사 처우를 개선하겠다고 말한 후 기획재정부가 각 병원에 필요 인력 충원을 승인하겠다는 공문을 돌렸으나, 그때 딱 한 번 뿐이었다"며 지금은 의료 인력이 부족한데 코로나19 중환자실을 늘리는 상황이어서 "적은 인력으로 제대로 된 대응이 어려운 만큼, 이 시기 국민이 심근경색, 뇌졸중 등 다른 중증 질환으로 병원을 찾아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의료계 충원 요청 인력 수준 자체가 과소평가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즉, 애초 국립병원장들이 실제 필요한 인력에 못 미치는 수준의 증원만 요청했으며, 그마저도 기획재정부를 통해 또 잘려나갔다는 지적이다.
우석균 공동대표는 "원래도 한국의 병상당 활동간호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4분의 1 수준이어서 만성적 부족 상황이 이어졌다"며 "애초 초과 노동이 이어지는 간호 노동 현실을 고려해,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인력 충원에 나서야 급한 불을 끌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국립대병원 신입 간호사 충원 규모 확대는 정부 의지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가능하지만, 정작 정부가 파견 간호사 확충에만 몰두하는 건 이해하기 힘들다고 우 대표는 꼬집었다.
우 대표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예산을 반영해 국립대병원 신입간호사 정원을 늘리고, 민간병원에는 신입 간호사 급여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간호 인력을 늘려야 한다"며 "이에 맞춰 경력직은 비상 훈련을 해 현장에서 '온더잡 트레이닝'을 통해 중환자실로 배치해야 중환자 관리 능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 대표는 "의료 현장의 요구 사항을 종합하면, 이 같은 적극적 대응이 이뤄지면 (현장 교육 역량이 확보되는) 약 4주 후에는 중환자병상 대응 능력이 더 커질 수 있"지만 "정부가 비상 시국에도 파견직 간호사 충원 정도에만 집중하니 계속 일할 사람이 항상 모자라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K-방역' 버티기 한계…"근본 대응이 지름길"
이와 관련해, 의료 현장에서는 지난해까지 정부 자화자찬의 핵심이던 'K-방역'이 단계적 일상회복 후 곧바로 무너진 배경에 정부의 안일한 판단이 자리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애초 K-방역은 간호 노동자를 포함한 현장 의료 인력의 한계 노동을 전제로 하고 이뤄졌다. 정부 지침에 따르면 최중증 환자의 경우 간호사 두 명이 환자 한 명을 돌봐야 한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여러차례 이어진 간호 노동자의 현장 발언 내용을 종합하면, 실질적으로 간호사 한 명이 환자 한 명을 돌보기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만큼 노동량이 늘어나고 노동강도가 거세지니 퇴사자도 늘어나는 악순환의 고리가 코로나19 내내 이어졌다.
이 같은 의료 인력의 희생을 전제하는 모델은 애초 장기화하는 팬데믹에서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우 공동대표는 "당초 K-방역의 한계는 일일 확진자 기준 2000~3000명 수준이 최대치였다는 게 현장의 평가"라며 "이 상황이 2년에 이를 정도로 장기화하면서 의료 인력의 피로가 누적됐는데, 제대로 된 확충은 없는 상황에서 일상회복에 들어가며 문제가 터졌다"고 지적했다.
이제라도 근본 문제, 즉 노동자 확충과 공공 의료 대응 역량 확충에 정부가 나서는 게 가장 빠른 대응이라는 현장의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