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반도체 공급과 관련해 한국이 해야 할 일이 많이 있다며 경제 분야 대중국 견제에 한국 정부의 동참을 촉구했다.
17일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제6차 한미 고위급 경제협의회(SED)의 미국 측 수석대표인 호세 페르난데스 국무부 경제성장·에너지·환경 담당 차관은 모두발언에서 "코로나19로 비롯된 반도체 부족 현상이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필수 파트너인 한국을 조명하게 됐다"며 이같이 밝혔다.
페르난데스 차관은 "우리는 한국이 세계 경제에 제공할 수 있는 것이 훨씬 더 많다고 굳게 믿고 있다"며 "한국은 세계적 수준의 기술 전문지식, 높은 수준의 투명한 투자 등을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협력은 한국이 교류하고 있는 파트너들에게 엄청난 가치를 가져다 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는 미국인들에 대한 실질적인 이익을 포함한다. 우리(미국) 정부는 노동자 계급 미국인들의 요구와 열망에 우리 외교 정책을 연결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며 " 쌍방 무역과 투자 촉진은 양측의 노동자와 지역사회에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페르난데스 차관은 "오늘 공급망, 과학기술, 여성 역량 강화, 인프라, 건강, 기후 변화와 에너지, 지역 발전, 협력, 디지털 경제 등 적어도 7가지 분야에 대해 토론하게 될 것"이라며 글로벌 공급망에서 한국의 역할을 기대했다.
미국은 트럼프 정부에서 바이든 정부로 정권이 교체된 이후에도 정치‧경제적인 측면에서 대(對) 중국 견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번 협의회에서 페르난데스 차관이 한국의 역할을 기대한다고 밝힌 것 역시 이같은 맥락의 연장선으로 풀이된다.
페르난데스 차관이 모두발언을 통해 공급망에 대한 논의를 하겠다고 밝힌 만큼,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10월 동아시아 정상회의에서 처음 제시했던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 워크'에 대한 동참을 촉구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이에 대해 이날 회담의 한국 측 대표인 최종문 외교부 2차관은 모두발언에서 "안보와 지정학적 문제를 과학, 기술 문제로부터 분리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며 일정 부분 동조하는 듯한 뉘앙스를 보였다.
미국 측이 강조한 공급망과 관련, 이날 협의회 이후 기자들과 만난 외교부 당국자는 "반도체 공급의 안정성을 강조했다"며 "한국기업의 역할에 대해 재확인하고 기업들이 미국에 보다 많이 투자하길 원하는 측면도 재확인했다고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특히 "(미측이) 민간기업의 관여가 공급망 협력에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말해 삼성전자나 SK 하이닉스 등의 미국 현지 투자 및 미국과 협조 관계를 강조했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전했다.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에 대해 이 당국자는 "이미 참여 요청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 협의회에서 의제에 구체적으로 포함되지는 않았다"면서도 "내부적으로 검토 중인데 양자 차원에서의 협력 뿐만 아니라 지역 차원에서의 협력 제안은 개방적이고 포용적이어야 한다는 원칙 하에서 적극 참여할 것"이라고 말해 중국과 같은 특정국을 견제하기 위한 방식에는 동참하기 어렵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그는 "사실 미국도 (경제 프레임워크에 대해) 아직 구체적으로 전달한 부분은 없고, 저희도 조금 더 검토가 필요한 사항이다"라며 "미국으로부터 구체적 아이디어를 더 들어야 하는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협의회에서 중국과 관련해 논의된 사항이 있냐는 질문에 이 당국자는 "없다. 양국 간 협력이 강조됐다"라며 "회의의 주요 목적이 양국 및 민관 간에 포괄적이고 다양하고 심도있게 협력할 수 있는 부분을 점검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이야기를 할 여지는 없었다"고 답했다.
페르난데스 차관은 전날인 16일 윤태식 기획재정부 국제경제관리관(차관보), 박진규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 등과 만나 인프라 투자 및 공급망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이날 협의회 이후 오후에는 인프라, 배터리, 전자 등 분야의 인사들과 만남을 가진 뒤 2박 3일 간 방한 일정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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