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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사에서 묻혔던 ‘예관 신규식’과 ‘동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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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사에서 묻혔던 ‘예관 신규식’과 ‘동제사’

대한민국건국회동제사·충북도교육청, 업적 재조명 학술토론회 열어

▲대한민국건국회 신환우 회장이 7일 충북 청주시 충청북도단재교육연수원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토론회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프레시안(박근주)

근대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서 묻혀있던 ‘예관 신규식’ 선생과 그가 조직했던 ‘동제사’의 독립운동을 재조명하는 학술대회가 열려 관심을 모았다.

‘대한민국건국회동제사’와 충북도교육청은 7일 충청북도단재교육연수원에서 ‘충북교육 동제사, 박달학원의 꿈을 찾다’를 주제로 동제사사와 박달학원 재조명 학술대회를 열었다.

이날 제1발표자로 나선 중국 연변대 경제연구소 안치섭 교수는 ‘예관 신규식의 동제사 활동 평가’ 발표를 통해 동제사와 박달학원의 설립과 활동을 조명했다.

안 교수는 “근대화 열정을 품은 청년으로 성장한 예관 선생은 1898년 구국교육과 계몽학회 활동을 전개하면서 국권회복 운동에 몸담은 이후 상해에서 순국할 때까지 20여 년 동안 오직 조국 광복을 위한 투쟁으로 점철된 일생을 살았다”고 평가했다.

안 교수는 “예관 선생이 상해에서 독립투쟁을 효과적으로 이끌어 갈 조직의 필요성을 느끼고, 1912년 음력 5월 20일 동제사(同濟社)를 결성했다”며 “박은식 신채호 홍명희 조소앙 문일평 신건식 조성환 등이 동제사 결성 이후 국권회복을 위해 활동했다”고 말했다.

안 교수가 제시한 자료에 근거하면 동제사는 본부를 상해에, 지사는 북경·천진·만주 등 중국지역과 러시아령, 구미, 일본 등지에 설치했다. 본부조직에는 이사장과 총재를 지사에는 사장과 간사를 뒀다. 많을 때는 300여 명의 회원이 활동했다.

예관 선생은 1913년 12월 7일 상해 프랑스 조계 내 명덕리에 박달학원을 개설해 청년들을 수용하고 훈련과 교육을 시행했다. 영어 중국어 지리 역사 수학을 교육과목으로 했고, 수학 기간은 1년이었다. 박달학원은 3기에 걸쳐 100명을 배출, 무장투쟁 예비군을 양성했다.

안 교수는 “예관 선생은 이때까지 상해에 임시정부가 수립될 수 있는 독립운동의 기반을 마련했다”며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후 죽음에 이르기까지 임시정부를 위해 활동하고, 임시정부에서 법무총장 국무총리대리 및 외무총장직을 역임했다”고 말했다.

이어 제2발표자로 나선 조병현  (사)영천미래연구원 원장은 ‘박달학원의 설립과 독립운동가 양성’ 주제 발표를 통해 박달학원이 배출한 독립운동가들을 소개했다.

조 원장은 “박달학원 출신 독립운동가로는 해위 윤보선, 몽양 여운형, 석린 민필호, 고루 이극로, 남정 박영준 장군, 위당 정인보, 유정 조동호, 윤장 정원택, 소해 장건상, 선우혁, 신건식, 곽재기, 유자명, 김규식 등이 있다”며 “박달학원은 유럽이나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외국어를 가르치고, 민족교육과 군사 교련을 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동제사는 1919년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민주공화정체제의 정부를 수립하게 되는 인적 구성에 크게 기여했고, 애국청년들을 중국 군관학교에 입학시키면서 후일 독립군 양성의 기초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산동(고령) 신씨 가문은 청주시에 1901년 문동학원을 시작으로 1903년 덕남 사숙, 1904년 산동학당, 19907년 청동학교, 1908년 문동학교 등 5개의 순수 민간 사립학교를 설립했고, 이는 한국 역사상 문중에서 운영하는 최초의 신식 학교가 됐다”며 “청주시가 교육도시의 시효가 되는 기반이 됐다”고 말했다.

제3주제 발표자로 나선 김주현 경북대 교수는 ‘단재 신채호의 민족의식과 교육관’ 연구 발표를 통해 “단재가 ‘가정교육의 중요성’, ‘부녀 및 소아 교육의 필요성’, ‘군국민 교육의 진흥’, ‘상무교육 확장과 의무교유 실시’를 강조했다”며 “몰주체적 사회, 시류 영합, 현실 망각 교육을 비판했다”고 말했다.

신환우 회장은 “이번 토론회의 의미는 예관 신규식 선생과 동제사의 높은 독립운동사적 의미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묻혀있던 활동을 재조명해 후손들에게 제대로 알리는데 있다”며 “예관 선생과 동제의 업적을 기리는 정부와 지자체의 후속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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