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매서운 추위가 닥친 것은 아니지만 한데서 밤을 새우면 얼어죽기 딱 좋을 날씨이고, 한낮이라 해도 길거리에 말뚝처럼 서 있으면 옷 틈으로 날카로운 한기가 스며드는 계절이다.
이 대목에 국회 앞 거리에서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한교조)이 밤낮으로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강사 처우개선 예산을 확보해달라는 절규를 국회에 전하기 위해서이다. 강사 처우개선 예산은, 매년 교육부가 편성을 회피하여 한교조가 농성을 해야 겨우 편성이 되는 예산이고, 겨우 편성된 예산도 다시 매년 기획재정부가 삭감하여 한교조가 농성을 해야 복원되는 예산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한교조는 초여름 세종시 교육부 앞에서 농성을 했고, 다시 이 초겨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 매년 아슬아슬하게 확보되는 강사 처우개선 예산은 국가가 당연히 확보해야 할 예산이다. 행정부가 날려버린 예산을 입법부에서 바로잡아 달라고 호소해야 하는 이 일을 언제까지 반복해야 하는가.
매년 반복되는 이 사태의 가장 큰 책임은 정부에 있다. 일명 ‘개정강사법’을 정부가 주도하여 시행하게 되었다는 점을 다시 생각해보면, 강사 처우개선 예산에 대한 정부의 무책임을 성토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2010년을 전후하여 언론에 강사의 자살이 줄지어 보도되었는데, 당시 이명박 정부는 사회적 우려를 수용한다면서 정부 발의로 ‘시간강사법’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강사의 절반을 해고하고 노동조건을 더 열악하게 만드는 악법이었다. ‘시간강사법’이 강력한 저항으로 유예되자, 박근혜 정부의 교육부는 이 법을 개선한다면서 1년 고용 후 당연 퇴직 같은 독소 조항을 추가하여 더 큰 저항을 불러들였다. 끝내 당시 정부와 여당은 사회적 저항을 무시하고 ‘시간강사법’이 2019년 1월 1일 시행되도록 조치해 놓았다.
박근혜가 탄핵된 촛불정국의 결과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그동안 고등교육 분쟁의 소재였던 ‘시간강사법’을 원점부터 재검토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보자는 전향적 자세를 취하였다. 2018년 정부는 대학단체 대표와 강사단체 대표를 불러들여 ‘대학 강사제도 개선위원회’를 구성하고 정부와 대학과 강사 삼자 간의 합의를 도출해내었던 것이다. 물론 강사 입장에서 아쉽고 부족한 점이 적지 않았지만, 유례없이 유예를 거듭해온 개악 ‘시간강사법’이 시한폭탄처럼 재깍거리는 상황에서 성과 없는 공방으로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었다. 이 합의의 결과로 기존의 ‘시간강사법’을 대체하는 ‘개정강사법’이 입법되어 2019년부터 시행되었는데, 정부로서는 노-사-정 사회적 합의라고 부를 만한 성과를 이룩한 것이었다.
‘개정강사법’은 강사를 법률상의 대학 교원으로 규정하고 1년 이상의 계약 기간과 3년 이상의 재임용 절차를 보장하도록 요구하고 있으므로, 강사를 편의에 따라 고용하고 자의적으로 해고하던 대학의 관행이 개선될 것으로 우리는 기대하였다. 학기 중에만 강의료를 지급하고 아무리 오래 근무해도 퇴직금 한 푼 지급하지 않던 관행 역시 개선될 것으로 우리는 기대하였다. 대학 안팎에서 받는 차별의 관행이 조금이나마 개선될 것을 기대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대학이 관행을 붙들고 버티는 사이, 정부는 다시 대학의 관행에 끌려다녔다.
정부는 매 학기 11주가량의 방학 기간 동안 지급될 것으로 기대했던 방학중임금을 단 2주간만 지급하도록 하는 지침을 만들었다. 개강 전 강의 준비 기간 1주와 종강 후 성적 평가 기간 1주를 합하여 2주의 방학중임금 지급 의무가 있다고 판단한 것인데, 정부가 나서서 방학중임금을 학기 중 강의료를 보완하는 성격으로 변질시켜버렸다. 강사의 방학 중 연구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고, 안정된 연구력을 보장하여 강의의 안정을 추구하자는 방학중임금의 성질을 전혀 엉뚱하게 해석해낸 것이다. 결과적으로 강사는 1년 계약 기간 내에 임금 없는 4개월을 보내게 되었다. 정부에서는 지침을 상회해서 지급해도 무방하다고 말했지만, 정부의 지침을 상회하여 강사의 처우를 개선할 의지가 있는 대학은 어디에도 없다.
퇴직금 또한 주당 5시간 이상 강의했을 경우에만 지급하도록 하는 지침을 만들었고, 4시간 이하 강의를 담당했던 강사를 위해 퇴직금을 준비한 대학은 없다. ‘개정강사법’ 시행 이전에 발생한 퇴직금은 강사들이 번번이 소송을 통해 찾아야 한다. 일정한 요건을 갖춘 강사들이 대학을 상대로 제기하는 퇴직금 소송에서 패소하는 일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학은 굳이 판결을 기다려서 지급하고 있다. 대학은 법원의 판결 수준보다 훨씬 뒤쳐져 있는 관행을 붙들고 번번이 지는 소송에 변호사 비용을 낭비할망정, 먼저 강사의 처우를 개선해주는 일은 견딜 수 없다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주당 5시간 이상 강의했을 때에만 퇴직금을 준비하도록 지침을 마련한 정부 입장도, 사법부의 판결 기준을 최소한도만 수용하겠다는 선언으로 읽힌다.
이 최소한의 방학중임금과 퇴직금에 소요되는 비용의 70% 가량을, 당초 정부가 ‘개정강사법’을 시행할 때부터 부담해왔다. 이것이 지금 말하는 강사 처우개선 예산이다. ‘개정강사법’ 시행을 앞두고 대학들이 앞다퉈 대량으로 강사 구조조정을 시행하였고, 대학들의 행태가 고등교육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고등교육의 붕괴를 방치할 수 없는 정부가 강사 구조조정을 방지하기 위해 예산을 설정했던 것이다. 지금은 정부의 태도가 변하여 강사 처우개선 예산을 확보하는 데에 해마다 애를 먹고 있고, 특히 사립대에 투입될 몫을 편성 확보되는 데에 난항을 겪고 있다. 정부는 정부가 민간의 인건비를 부담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과연 그러한가. 몇 년 전 언론을 도배한 사립 유치원 비리 문제에 정부가 재정지원중단을 무기로 협상에 성공했던 일을 다들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여기에 지원되는 재정에 인건비가 포함되어 있다. 초중등 교육기관에도 공사립을 막론하고 인건비를 지원하고 있다. 교육기관은 민간 사기업과 다르다는 전제를 갖고 있는 것이다. 유독 고등교육기관이라고 해서 민간 사기업처럼 취급하려는 이유가 무엇인가. OECD 평균에 비해 매우 적은 고등교육 예산을 편성해온 정부의 관행과 대학을 사유화하려는 사립대 재단의 관행이 맞물려 발생한 인식이 아닌가. 이 인식이 잘못 맞물리는 대목에서 대학은 민간 기업으로 전락한다.
지금 국회에서 심의 중인 예산안은 2022년 예산이다. 2022년 8월은 ‘개정강사법’ 시행 3년이 되는 시점이다. 강사의 재임용 절차 보장 3년이 종료되는 대목이라는 말이다. 대학 입장에서는 3년 동안 유지해온 고용 관계를 대량으로 청산할 수도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마침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재정 위기를 호소하는 사립대들에서는 강사 해고와 전임교원 초과강의 강압으로 재정 감소분을 메우려 한다. 강사 처우개선 예산이 삭감되는 것을 신호로 사립대들이 대규모 강사 구조조정을 시도하게 될 것이다. 현재 대학 강의의 절반을 맡고 있는 강사들이 대규모로 대학에서 쫓겨난다면 고등교육 붕괴는 멀지 않은 일이 될 것이다. 우선 급하다. 국회에서 관련 예산을 회복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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