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애는 한정판 에디션이에요."
라고 말하는 엄마 비비안(활동명)은 "저는 26살 게이 예준이의 엄마 비비안입니다"라고 소개한다. 나비(활동명)의 소개는 좀 더 길다. "저희 한결이는 트랜스젠더 남성이에요. 바이젠더(Bigender. 성별의식이 구분됨), 팬로맨틱(Panromantic. 여성과 남성으로 뚜렷이 구분되지 않는 성소수자와 감정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음), 에이섹슈얼(Asexual. 성적 끌림을 느끼지 않는 무성애 상태)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습니다."
27년차 항공승무원이자 게이 엄마 비비안, 34년차 소방공무원이자 트랜스젠더 엄마 나비.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너에게 가는 길>(변규리 감독, 엣나인필름, 연분홍치마)이 지난 17일 개봉했다.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전해 온 성적소수자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의 네 번째 '커밍아웃 이야기'다. 이번엔 커밍아웃하는 성소수자가 아닌, '커밍아웃 당한' 부모의 이야기를 담았다.
변규리 감독은 '성소수자부모모임'에 관한 영화를 만들던 중 두 엄마를 만났다. 나비와 비비안이 모임에 나온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변 감독은 두 엄마를 보며 "내 배우가 여기 있구나"라는 "'필'이 딱 왔다"고 말하며 웃었다. 당초 '모임에 관한 다큐멘터리'에서 '두 가족의 이야기'로 방향이 달라졌다. 변 감독은 "너무 다른 두 엄마가 아이의 커밍아웃을 받아들이고 성소수자인 아이와 새롭게 관계를 맺는 과정을 담고 싶다"고 밝혔다.
3년 정도 걸릴 것이라 예상했던 촬영 기간은 1년 더 늘어나 4년이 걸렸다. 찍는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예준에게 남자친구가 생겼고, 남자친구 성준도 엄마에게 커밍아웃했다. '지정성별 여성'인 한결은 남성으로 인정받기 위해 가슴절제 수술, 자궁 제거 수술을 받았다. 그랬는데도 한결의 성별 정정 신청은 한 차례 좌절됐다.
트랜스젠더 여성이 여대 입학을 포기하고, 트랜스젠더 군인이 전역당한 후 세상을 떠나는 등 좌절과 상처가 된 사건들도 일어났다. 그걸 지켜보는 엄마들의 마음도 무너지는 것 같았다. 변 감독은 "그런 과정이 담겨야 영화가 비로소 완성될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하는 두 엄마지만, 아이의 커밍아웃은 큰 충격이었다. 성소수자가 어떤 건지, 그리고 내 아이가 성소수자라는 걸 받아들이기까지 수년이 걸렸다. '게이'라는 단어를 끝까지 말하지도 못하고 통곡했던 비비안은 이제 무지개 팔찌를 차고 다닌다. "어쩌다 보니 인권운동가가 됐다"는 두 엄마. <프레시안>이 지난 11일 서울 동작구 아트나인에서 두 엄마와 감독을 만났다.
이젠 웃으면서 하는 그때의 이야기. 아들이 식탁 위에 "엄마 아빠, 저는 동성애자에요"라고 시작하는 편지를 올려둔 날. 엄마는 나흘을 멍하게 울다가 "괜찮다"고 선언했었더랬다. 괜찮을 리 없었다. 하지만 괜찮지 않다 한들 어쩌겠는가.
그리고 몇 년이 흘렀을까. 이젠 아빠(지민. 활동명)와 아들, 그리고 아들의 남자친구 성준은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는다.
'딸인 줄 알았던' 아들의 법적 성별을 정정하고자 법원에 가던 날. 재판을 앞둔 아들은 혹시나 성별 정정 허가가 나지 않을까 잔뜩 긴장해 연신 담배를 피웠다. 수천만 원을 들여 수차례 대수술을 받고, 준비한 서류만 18부. 드디어 '2'로 시작하는 주민번호 뒷자리를 '1'로 바꾸는 단계였다. 국가에 '자신이 왜 남성인지' 설득해야 했던 아들에게, 엄마는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했다.
나비와 비비안, 두 엄마는 참 다르다. 나비와 한결은 고정관념 속 '한국의 엄마와 아들'이다. 대화가 좀처럼 없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나비는 어째 한결보다 반려견과 더 친한 것 같다. 어쩌다 둘이 대화하더라도 서로 다른 곳을 보며 툭툭 말을 던질 뿐이다.
비비안은 예준과 세상 친했다. 예준이 캐나다 유학을 떠났을 땐 하루에 한 번꼴로 영상통화를 했다. 현재 입대 중인 예준과, 같은 시기에 맞춰 입대한 애인 성준은 휴가도 맞춰 나와 비비안과 지민의 집에서 묵는다. 예준이 성준과 찍은 사진을 보여주면 비비안은 지민과 연애 시절 찍은 사진을 보여준다.
어느 날 '커밍아웃 당한' 사람들
성소수자부모모임에 참석하는 엄마, 아빠들은 "커밍아웃 당했다"라고 표현한다. 아이가 성소수자라는 생각을 해본 적 없기 때문이다. 주변에 '성소수자'라는 사람도 없었던 경우가 대부분이다. '성소수자'는 연예인 홍석천, 하리수가 전부였다. 모두 자신을 '그렇게 꽉 막힌 사람은 아니'라고 알고 살았고, 막연하게 '성소수자도 존중해야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다. 나비와 비비안도 마찬가지였다.
나비는 한결을 키우면서 '레즈비언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여중 시절 레즈비언인 친구가 있었다. 한결을 보면 그 친구가 생각나곤 했다. 유치원 때부터 한결은 여자애들에게 편지를 보내고, 중·고등학교 때는 '남자처럼' 옷을 입으면서 여자 단짝 친구와 붙어 다녔다.
나비가 언젠가 한 번 한결에게 "넌 레즈비언 성향이 있는 것 같아"라고 하자, 한결은 아무렇지 않게 "그런 것 같아"라고 대답했었다.
"엄마가 잘 몰랐어, 미안해"
충격받은 부모를 의연하게 달랜 건 아이들이었다. 한결과 예준은 모든 걸 준비하고 커밍아웃했다. 커밍아웃과 동시에 '성소수자부모모임'을 소개했다. 한결과 예준처럼, 성소수자 아이들은 오랜 고민과 방황 끝에 부모에게 커밍아웃을 결심하면서도 부모에게 미안해한다. 자신의 앞날보다 부모가 받을 상처와 충격을 더 걱정한다.
나비는 "한결이에게 '수술 그거 꼭 해야 하느냐', '정신과는 이상한 사람들만 가는 곳 아니냐' 이런 무식한 소리를 했다"고 했다. 답답했을 텐데 하나하나 설명해주고 알려준 한결이 고마울 뿐이다. 한결은 커밍아웃할 때 이미 성별 정정 절차와 과정, 필요한 수술이 뭐고 얼마가 필요한지 등을 빠삭하게 꿰고 나비에게 알려줬다. 나비는 그런 한결에 대해 "어렸을 때부터 참 섬세하고 똑똑했다. 어휘력도 남달랐다"고 했다.
'내 얘기'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된 현실
비비안은 "커밍아웃하기까지 많은 성소수자 아이들은 오랜시간 홀로 고민하고 방황한다"며 "누구에게도 쉽게 얘기할 수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말 많고 웃음 많던 예준은 점점 표정이 사라지고 때로는 위태로워보였다. 비비안과 지민은 '참 지독한 사춘기구나' 싶었다. 속으로 얼마나 힘들었을까. '내가 왜 이러지', '내가 뭔가 다른 것 같은데 이게 뭐지', '난 좀 이상해'라는 생각을, 매일같이 매 순간 속으로 끙끙거렸을 테다.
나비와 비비안은 교육의 공백이 큰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학교에선 '성소수자'라는 존재를 가르치지 않는다. 비비안은 "사회나 환경 모든 게 성소수자를 투명인간 취급한다. 아이들에게 소리없이 '널 환영하지 않는다'고 가르치는 셈"이라고 했다. 나비는 여대 입학을 포기한 트랜스젠더 여성과 강제전역 후 세상을 떠난 故 변희수 하사 등등을 보며 "'세상이 한결이를 이렇게 대하는구나' 싶었다"고 했다.
한결은 고등학교를 자퇴했었다. 많은 성소수자 청소년이 학교를 그만둔다. 학교 밖의 아이들에게 사회는 모질다.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주로 위험하고 보호장치가 없다. 나쁜 어른도 쉽게 손을 내민다. 다행인지 한결은 자퇴 후에 좋아하는 일을 찾았고 검정고시를 봐서 대학에 진학했다.
비비안도 "다양성을 지우는 건 폭력"이라며 "폭력이 폭력인 줄도 모른다"고 했다. 비비안은 "누구도 '나는 너를 혐오해, 차별해'라고 말하진 않는다"며 "그런데 혐오는 알게 모르게 내재됐다. 왠지 꺼림칙한 것, 특이하고 우스운 존재라는 막연한 이미지를 가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엄만 끝까지 네 편이야"
처음엔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끼리 위로받고 마음을 나누려 모임에 나갔다. 그러다 나비와 비비안은, 그리고 모임의 부모들은 점점 인권운동가가 됐다. 퀴어퍼레이드를 하면 앞에 서서, "사랑하니까 반대한다", "정신병자들"이라고 소리치는 '혐오세력'과 맞선다. 그들이 아이들을 잡아당기거나 소리치고 위협하면 이를 가로막는다. 놀라서 우는 아이는 마치 내 아이인 듯 안아준다.
나비는 "인권의식이 생겼다거나, 투쟁해야겠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그런 건 아니다"라며 "내 아이니까. 나라도 내 아이를 지켜야겠다 생각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면서 웃었다. 한결의 제안으로 처음 퀴어문화축제에 갔을 때의 충격이 컸다. 특히 혐오세력의 폭력으로 결국 중단된 인천 퀴어축제를 생각하면 화가 난다.
비비안은 예준과 함께 캐나다에서 퀴어퍼레이드에 참가하고서, 퀴어퍼레이드가 꼭 필요하다고 느꼈다. 8차선 도로를 가득 메운 사람들, 인도는 마치 관중석처럼 퀴어퍼레이드를 응원하는 사람들로 가득 메워졌다. 사람들은 자리가 없어서 건물 2층, 3층에서 손을 흔들며 환호했다.
비비안은 준비해 간 무지개 양말을 신고 'I Love My Gay Son'이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었다. 예준의 옆에서, 무지개 깃발을 든 관중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예준은 어렸을 때처럼 환하게 웃으며 방방뛰었다. 그때의 감동은 마치 "아, 이런 기분이구나", "정말 뭐라 말할 수 없이 벅차올랐다."
그래서일까. 두 엄마는 비단 성소수자 뿐 아니라 여성, 장애인 등 우리사회 곳곳에 가려진 사회적 소수자에게 관심을 가지게 됐다. '차별이 어딨어, 요즘 세상에 누가 차별을 해'라고 생각했던 세상은 혐오와 차별이 공기처럼 스며있었다. 비비안은 그런 문제의식을 가지면서 "소수자의 연대가 정말 중요하다"라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성소수자 아이의 존재, 커밍아웃을 받아들이고 인권운동가가 되는 과정 속에서 나비와 비비안도 성장했다. 우리사회가 사회적 약자를 어떻게 배제하는지, 혐오가 얼마나 일상적이고 차별이 교묘한지 알게 됐고 여기에 목소리를 냈다. 아이와 함께하기 위해 성소수자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한 것이, 페미니즘에 대해 공부하고 교육과 노동 등 다양한 사회문제로 확장됐다. 두 엄마는 "아이를 통해 좀 더 좋은 어른이 되고 있다"고 했다.
"아이가 성소수자인 걸 말 못한다고? 그건 못 받아들인 것"
혐오와 맞서 싸우다보니 일상에 불편한 것이 많아졌다. 비비안은 '게이 같다'라는 표현이 불편하다. 일부러 "우리 아들이 게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면 적어도 비비안 앞에서는 조심할 테니까. 나비도 마찬가지다. 한결의 성별 정정을 위해 법원에 가던 날, 나비는 연차를 내며 '성별 정정 재판'이라고 썼다.
나비는 '계집 여(女)'라고 표현하는 교사에게 "'여자 여'라고 하라"고 했다. '미친 X'이라는 비속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비하가 깔려있어서다. 나비는 "욕을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다. 정치인 누구 같다고 하면 되려나"라며 웃었다.
두 엄마는 어딜가나 "우리 아이는 성소수자"라고 말한다. 우리사회에 '성소수자'라는 존재가 좀 더 익숙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성소수자는 어디에나 있다', '이런 건 혐오다'라는 인식이 자리 잡으면 예준과 한결의 삶이 조금 더 평안해지지 않을까. 두 엄마가 바라는 건 그것이었다. 내가 없을 때도 내 아이가 행복할 수 있는 것.
나비와 비비안도 아이가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수년이 걸렸다. 비비안은 '게이'라는 단어도 차마 말하지 못하고 눈물을 쏟았었다. 그렇기에 자녀의 커밍아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머리 싸매는' 부모의 심정을 너무나 잘 안다. 얼마 전 성소수자부모모님에서 '부모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만든 이유이기도 하다.
비비안은 "아무렇지 않게 '내 아이는 성소수자'라고 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받아들인 것"이라며 "받아들이기 위해 부모가 많이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언제까지 숨기고 살 수는 없고, 사방에 깔린 혐오의 시선을 모른척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다.
비비안도 많이 노력했다. 예준이 이렇게 매 순간 혐오의 시선과 언어폭력을 견디며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그렇게 됐다. 비비안은 "적어도 비겁한 부모는 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처음엔 이걸 어떻게 말하나 싶다가도, 한번 빵 터지고 나면 아무렇지도 않다. 속시원하다"며 웃었다.
"아이를 고친다? 아이를 죽이는 짓"
많은 성소수자가 커밍아웃 후 가족과 인연을 끊는다. 정신병원이나 기도원에 갇혀서 '전환치료'라는 걸 받기도 한다. 아이가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에서 일 게다. 그러나 '전환치료라는 건 없다', '전혀 효과없다',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은 치료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결론이 난 지 오래다.
비비안은 그런 부모들의 마음이 "아이가 독립적인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이젠 아이를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이가 성장한 만큼 부모도 함께 성장해야 한다"고도 했다.
'육아 전문가' 오은영 박사가 언젠가 한 방송에서 "육아의 최종 목표는 독립"이라고 했다. 두 엄마는 이 말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비는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며 "내 자식에게 필요한 게 뭔지, 애를 위해 뭘 할 수 있는지 고민한다면 답은 간단하다"고 강조했다.
나비는 그런 아이들에게 단호하게 "부모님 걱정하지 말고, 네가 더 중요하니 너만 생각하라"라고 한다. "마음이 많이 아프겠지만 꼭 피를 나눈 혈육만이 가족이 아니"라며 "서로 사랑하고 아껴주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가족"이라고 했다. "한결이 그런 가족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게 나비의 소망이다.
두 엄마는 차별금지법이 흐지부지된 데에도 화가 난다. 미루고 미루다 결국 아무 논의 없이 뭉개버린 국회도,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문제"라는 대선 후보들에게도. '누구도, 어떤 이유로도 차별하지 말자'는 게 뭐가 그리 어려운 지도 모르겠다.
비비안은 "정말 비겁하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라고 말했다. "당장을 모면하려는 비겁한 사람이 누구를 위해 정치를 할 수 있나. 국민이 어떤 기대를 할 수 있나"면서 "배는 물 위를 가지만 물은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라고 덧붙였다.
마지막 질문은 다시 커밍아웃으로 돌아갔다. "아이가 커밍아웃했던 때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할 거냐"라고 묻자 두 엄마는 "정석대로 해야지"라며 웃었다. <부모를 위한 가이드라인>에도 나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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