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윤석열 대선후보에 대해 공개적으로 경고성 조언을 했다. '경선 승리에 너무 고무되지 말라'는 취지다. 선대위 구성을 앞두고 전권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되는 김 전 위원장과 윤 후보 측근 인사들 간의 긴장관계가 예고된 대목이다.
김 전 위원장은 8일 월간 <신동아> 창간 90주년 기획 좌담회에서 '총괄선대위원장 제의를 받았느냐'는 질문에 "아직 제의도 받은 적 없고 윤 후보로부터 아무 얘기를 들은 것이 없다"면서 "총괄선대위원장이란 것을 맡으려면 선거를 책임지고 승리로 이끌 확신이 있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선대위가 어떤 모습을 보일 것인지 그림을 (윤 후보가) 제시해야만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윤 후보 측에서 선대위 구성의 기본 방향 등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특히 경선 기간 거의 매주 윤 후보와 직간접적으로 소통해온 것으로 알려진 김 전 위원장은 이날 좌담에서 "여러 차례 대선을 경험해 봤는데, 대선에 입후보하는 분들을 보면 후보 시절에 공식 후보가 되기 전과 후보가 된 다음에 사람이 좀 변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김 전 위원장은 윤 후보에게 "선대위 구성을 냉정하게 생각해서 할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면서 "예를들어 윤 후보가 '당심'(당원투표)에서는 상당한 격차로 이겼지만 일반 여론조사에서는 11%포인트 가까운 차이로 졌다. 그게 뭘 의미하는지 깨닫고 본선을 위해 어떤 형태의 선대위를 구성할 것인지 냉정히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윤 후보가 전당대회 이후 김 전 위원장과의 소통 과정에서 '전당적 규모의 선대위' 구상을 언급하자, 김 전 위원장이 이에 대해 비판적 의견을 제시하며 경고성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읽힌다.
이날 윤 후보는 "경선은 경선이고 본선은 당 중심"이라고 캠프 재구성 의지를 밝히면서도 "소수가 주도하는 식의 선거는 안 할 것"이라며 "(의원) 여러분께서 한 분도 빠짐 없이 다 선대위에 참여해 달라", "한 분 한 분 빠짐없이 함께 대장정을 시작하길 부탁드린다"고 상당히 대규모의 선대위를 꾸리겠다는 의사를 시사했었다.
김 전 위원장은 좌담에서 "2030 세대가 국민의힘으로부터 탈퇴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여론조사에서 11% 진 것과 같이 생각하면 될 것"이라며 "초기에는 중도층과 2030 세대가 (윤 후보에게) 상당한 지지를 보냈는데, 국민의힘에 입당함으로 인해 그 (지지)층이 떨어져 나갔다. 당의 입장에서는 윤 후보를 일찌감치 불러들임으로서 경선을 활기있게 하는 데 성공했는데, 윤 후보 개인으로 봐선 상당히 손해를 봤다"고 지적했다.
김 전 위원장은 "그런 점을 냉정히 판단해서 지금부터 어떤 자세를 취해야 잃어버린 (지지)층을 다시 회복할수 있나 인식하고 지금부터 모든 것에 세심하게 주의를 경주할 필요가 있다"면서 "국민들에게 보이는 모습, 어떤 인물이 선대위를 구성하는지 등에 대해 세심한 고려를 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히 그는 "(대선)캠프에는 무수히 많은 사람이 모여든다"며 "어떤 사람이 대통령 당선 가능성이 있다고 하면 우후죽순 사람이 많이 모인다. 그런 사람들을 가리켜 '자리 사냥꾼'이라고 한다"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그는 "그런 사람을 제대로 선별하지 못하면 당선에도 문제가 있을 뿐 아니라 당선이 돼도 많은 문제를 야기하는 것을 과거 정권에서도 많이 경험해 봤지 않느냐"면서 "윤 후보가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지금의 캠프가 자기를 후보 만드는 데 기여했다는 채무감에서 '이 캠프를 갖고 대선을 할 수 있다'고 판단하면 매우 어려워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현 상황에서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에 비해) 윤 후보가 훨씬 유리하다"면서도 "2002년 대선을 한 번 생각해 보라. 10월 말까지 노무현 후보가 고전했고, 그 때만 해도 이회창 후보가 당선된다고 90% 이상의 사람들이 믿었지만 결과가 다르게 나타났다. 지금도 여론조사만 가지고 쓸데없는 과신을 가지는 것은 금물"이라고 지적했다. "현 상황에서 유리하다고 해서 내년 3월 9일에도 똑같은 결과가 나올 거라고 방심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이다.
김 전 위원장은 또 "넉 달의 기간 동안 후보들은 굉장히 신중 모드로 가야 한다"며 "말 실수를 한다든지 해서 순간적으로 지지도를 잃는 실수를 절대 하지 않아야 된다"고 당부했다. 그는 "윤 후보는 정치를 새롭게 시작한 사람이니까 새로움을 보여줘야 한다"며 "구정치 하던 것을 답습해서는 절대로 유권자가 거기 동감하지 않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캠프 구성에서부터 '구정치 인물'을 배제해야 한다는 말로 읽혔다.
다만 김 전 위원장은 홍준표 의원의 '대선 불관여' 선언에 대해서는 "사전에 예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 자체가 본선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거라 생각지 않는다"고,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등과의 단일화 논의에 대해서도 "너무 신경 쓸 필요 없다. 대세를 결정하는 데 별로 영향력이 없다"고 일축했다.
이날 윤 후보 비서실장으로 임명된 권성동 의원은 선대위 구성과 관련해 SNS에 쓴 글에서 "윤 후보는 저에게 선대위 구성 준비의 가교 역할을 부탁했다. '무엇보다 당의 의견을 많이 청취해 당과 함께 선대위 조직의 그림을 그려 나가 달라'고 하셨다"며 "김 전 비대위원장을 비롯한 원로들을 뵙고 의견을 청하겠다"고 밝혔다.
권 의원은 그러면서 "오늘 오후 국민캠프 해단식이 있다. 선대위는 대선 승리를 목표로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할 것"이라고 했다. 선대위와 기존 경선 캠프의 단절을 강조한 표현으로, 김 전 위원장의 주문을 의식한 게 아니냐는 풀이가 나왔다.
한편 김 전 위원장의 이날 <신동아> 좌담은 유튜브로 중계됐고, 좌담 상대는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였다. 진 전 교수는 윤 후보에 대해 "비전 제시가 아직 명확하지 않다. 중도를 향한 소구력을 보여주지 못한 부분이 있고, 개인 이미지도 '올드'하게 굳어졌다"고 지적하며 특히 "네거티브가 굉장히 많았지만 그것은 변수가 안 됐다. 윤 후보의 위기는 다 자기발(發) 위기였다"고 꼬집었다.
진 전 교수는 "(대선이) 윤 후보에게 쉽지 않을 것"이라며 "국민은 민주당 이재명 후보에 대해 '끝나면 감옥 갈 것 같지만 대통령직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윤 후보에게는 '대통령 할 수 있겠나?' 한다. 거버너(governor. 행정가)로서 보여준 것도 없고 국회 경험도 없다는 것이다. 그런 부분을 안정감으로 불식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진 전 교수는 또 "이번 대선은 민주당이 도덕적 헤게모니를 뺏긴 최초의 선거"라며 "과거에는 보수가 '썩었지만 능력은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요즘은 (민주당) 이 후보에 대한 기대가 그것이다"라고 평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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