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세 간병살인 청년' 강도영(가명) 사연을 보도한 직후인 3일 오후, 부산광역시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C 병원장이 <셜록>에 전화를 걸어왔다.
C 원장의 목소리는 높고, 빨랐다. 금방이라도 울듯이 떨리기도 했다.
C 원장의 흥분과 주장, 터무니 없는 걸까? 강도영 씨 가족을 덮친 비극에서 병원의 책임은 어느 정도인지, 지금부터 살펴보자.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56세)를 간병하다 끝내 굶겨 사망에 이르게 해 존속살인 혐의로 구속된 22세 강도영. 아버지는 2020년 9월 13일 쓰러졌고, 아들은 이듬해 5월 8일 경찰에 체포됐으니, 이 모든 비극은 고작 8개월 밖에 안 걸렸다.
목욕탕에서 쓰러진 아버지가 119구급차에 실려간 곳은 대구광역시 A 병원. 뇌혈관 질환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곳이다. 병원 의사들은 응급 수술을 통해 아버지를 살렸다.
안도했으나, 뒷목 잡게 하는 ‘병원비 고통’이 시작됐다. A 병원은 수술과 입원치료비 등으로 약 1500만 원을 강도영 씨에게 청구했다. 아버지가 약 2개월 머문 B 요양병원도 수백 만 원을 청구했다. 합친 병원비가 약 2000만 원. 공익근무 입대를 앞두고 직업이 없던 22세 강 씨에겐 돈이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병원비 걱정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공언했지만, 강 씨는 병원비 때문에 죽을 지경이었다. 이유가 있다.
강 씨 목을 조른 건 '건강보험공단이 지원하지 않는 비급여 치료비'와 '간병비'다. A 병원이 청구한 병원비 1500만 원 중 750만 원이 비급여 항목 치료비였다. 환자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 간병비는 430만 원 나왔다. 건강보험 혜택이 적용되지 않아, 오직 환자 가족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전체 병원비의 약 80%를 차지한 셈이다.
강 씨 거주지 관할 대구시 수성구의 한 행정복지센터(주민센터) 사회복지 공무원이 지난 11월 1일 기자에게 물었다.
엉뚱한 질문 아니다. 강도영 씨는 그 어느 것도 신청하지 않았다. 만약 강 씨가 이 모든 걸 신청했다면 어땠을까? 유감스럽게도 강 씨에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국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의 병원비를 ‘의료급여’ 이름으로 지원한다. 하지만 강 씨 목을 조른 비급여 항목과 간병비를 지원하지 않는다. 긴급의료지원비는 약 300만 원 수준이다. 장애인 연금은 최대로 받았을 때 월 30만 원 정도다.
병원비는 어쩔 수 없는 비용이라 하고, 이번엔 부산의 C 병원장이 지적한 강 씨 아버지 퇴원 문제를 따져보자.
<셜록>은 강 씨 아버지를 치료한 A 병원의 ‘경과기록지’를 입수했다. 강 씨 아버지 퇴원 전날인 4월 22일에 이렇게 적혀 있다.
환자에겐 치료가 더 필요했으나, 보호자가 경제적 이유로 퇴원을 원한다는 기록. A 병원도 강도영 씨의 경제적 어려움을 인지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병원은 왜 별다른 조치 없이 강도영 아버지를 퇴원시켰을까?
의료법 시행규칙 제38조 6항에는 이렇게 적시돼 있다.
이 규정에 따라 한국의 종합병원에는 1인 이상의 의료사회복지사를 둬야 한다. 의료사회복지사는 ‘환자와 보호자가 치료 과정 중 겪을 수 있는 사회적, 정서석, 경제적 어려움에 대해 상담 및 교육’을 실시한다.
이들은 △ 입원/수술비 마련 상담 △ 환자 보호자 상담 △ 퇴원 후 거주지 문제 상담 △ 장애등록 신청, 기초생활수급자 신청 등을 환자와 보호자에게 서비스 하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강도영 아버지를 치료한 A 병원은 의료사회복지사를 의무로 둬야 하는 종합병원이 아니다. 위에 열거한 모든 서비스는 강도영에게 제공되지 않았다.
종합병원이 아닌 하급 병원에선 위에서 언급한 ‘사회사업’을 원무과에서 맡아 진행한다. 병원 치료에 따라 위기에 몰린 사람을 주민센터나 사회복지 기관에 연계하는 수준에서 말이다. 물론 의무는 아니다.
강도영 씨는 "경제적 이유로" "더 이상의 검사도 거부"한 채 아버지 퇴원을 결정했음에도, A 병원은 주민센터나 복지 기관에 전화 한 통 해주지 않았다. 병원의 한 핵심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강도영 씨는 왜 제외됐을까? 이 관계자는 자료를 찾아본 뒤 말했다.
이런 병원 측의 해명은 경과기록지 내용과 배치된다. 이 관계자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
이게 무슨 말일까?
B 요양원 관계자도 비슷한 말을 했다.
두 병원 중 한 곳이라도 “돈이 없어 치료를 포기하고 퇴원한다”는 강 씨를 붙잡거나 주민센터에 전화 한 통 해줬다면 어땠을까?
A 병원도, B 요양병원도 "우리가 더 세심히 환자와 그 가족 처지를 살폈어야 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병원은 모두 강도영 씨 탓을 했다. 너무 착한 게 죄라고 했다. 꼬박꼬박 병원비를 납부한 게 잘못이라고 했다.
아버지가 쓰러진 뒤 모든 책임은 강도영과 삼촌이 몫이었다. 병원비를 감당하던 삼촌은 가정파탄 위기에 몰렸고, 아들은 살인자가 돼 감옥에 갔다. 이 모든 일은 8개월 안에 벌어졌고, 아무도 이들을 돕지 않았다.
강 씨는 최근 <셜록>에 보낸 편지에 이런 내용을 적었다.
이 기사는 <프레시안>과 <셜록>의 제휴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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