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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굶어 죽고, 아들 구속됐는데...뒤늦게 '발굴된' 가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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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굶어 죽고, 아들 구속됐는데...뒤늦게 '발굴된' 가난

[누가 아버지를 죽였나] 대구시 도움을 받지 못한 강도영 씨

근로소득으로 살아가던 가정이 뇌출혈 환자 발생 뒤 풍비박산 났다. 아버지 응급 수술, 입원 치료비 등으로 병원비가 2000만 원이나 나왔다. 아픈 아버지는 굶어 죽었고, 경제력 없는 22세 아들은 모든 책임을 떠안고 존속살해 혐의로 구속됐다.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지고 8개월 만에 벌어진 일이다. <셜록>이 보도한 '청년 간병살인' 사건의 주인공 강도영(가명) 사례를 접한 많은 시민이 탄식했다.

"선전국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세계가 부러워하는 건강보험제도를 운영하는 한국에서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하나씩 알아봤다. 경기도에서 근무하는 한 사회복지공무원은 지난 8월 강 씨 사연을 듣고 고개를 갸웃했다.

"요즘은 도시가스만 끊겨도 그 명단이 주민센터에 통보되거든요. 위기에 처한 가정을 행정기관이 먼저 찾아 대응하라는 취지입니다. 대구시도 분명 그렇게 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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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병 청년 강도영 씨는 존손살해 혐의로 지난 5월 구속됐다. ⓒ오지원

지난 9월과, 강도영 씨의 거주지를 관할하는 행정복지센터(주민센터)를 찾았다. 강도영 씨가 도움을 요청한 적 있는지 물었다. 긴장한 표정으로 전산망을 확인한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은 이내 얼굴이 밝아졌다.

"강도영 씨가 도움을 요청했다는 흔적이 없습니다. 가난하고 어려운 당사자가 직접 찾아와 도움을 청하지 않으면, 저희도 사례를 찾아내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대구광역시도 분명 '단전, 단수, 단가스' 가구 명단을 통보 받아 위기 가정을 발굴한다. 무엇보다 지난 3월 대구시는 ‘위기가구 긴급 생활안정 지원’ 사업을 한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보도자료에 "갑작스런 위기 상황으로 생계유지 등이 곤란한 가구"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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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광역시는 지난 3월 ‘위기가구 긴급 생활안정 지원’을 하겠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대구시

강도영 씨는 아버지가 쓰러진 뒤 월세를 3개월 밀렸고, 요금을 못내 휴대전화가 끊겼다. 이어 도시가스와 인터넷이 끊겼고, 마지막엔 식량마저 끊겼다. 이게 지난 3월의 일이다. 강도영 씨는 대구시의 도움을 하나도 받지 못했다. 왜?

혹시 긴급 도움이 필요한 명단에서 강도영 씨 이름이 실수로 누락된 걸까?

지난 10월, 강 씨 거주지 관할 행정복지센터를 다시 찾았다. 질문을 바꿔 “단전, 단수, 단가스 가구 명단에 강도영 씨가 없느냐”고 다시 물었다. 전산망을 확인한 공무원의 얼굴은 사색이 됐다.

통보된 명단에 강도영 씨의 아버지 강영식(가명)이 포함됐다.

담당 공무원은 수신인이 없어 끝내 발송돼지 못한 안내문 한 장을 내밀었다. 행정복지센터에서 보내려다 만 문서, 제목은 '사회복지서비스 신청 안내문'이다. 내용을 그대로 옮겨 본다.

안녕하십니까?

귀 가정의 무궁한 발전과 가족분들의 행복과 안녕을 바랍니다.

우리 OO 행정복지센터에서는 관내 주민을 위하여 각종 복지제도를 실시하고 있으며 복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하여 발굴-지원 사업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아래와 같은 사유로 생활이 곤란한 경우에는 주소지 관할 행정복지센터를 방문하시어 각종 복지제도에 대한 안내를 받고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 현재 전기, 수도, 도시가스가 요금 체납으로 인해 중단된 경우

• 주 소득자의 실직 또는 건강문제로 근로활동에 종사하지 못하는 경우

• 화재, 천재지변 등 피해를 이은 경우

• 가족이 있음에도 가족의 부양을 받지 못하는 경우

• 이외의 사유로 생활이 곤란한 경우

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연락처로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위 안내문에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고 적힌 대로, 한국 복지체계의 기본은 '당사자 신청주의'다. 가난하고, 힘들고, 아픈 사람이 직접 행정기관을 찾아와 얼마나 가난한지 입증해야만 국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강도영 씨 처지는 안내문에 열거한 다섯 가지 예에서 무려 네 항목에 해당한다. 하지만 강 씨는 행정기관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그의 잘못이라면 잘못이다.

하지만 위 안내문이 제대로 발송됐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가 안내문을 받았다면 행정복지센터 찾을 가능성은 높아지기 때문이다. 

행정복지센터는 강도영의 아버지 ‘강영식’ 이름을 발굴했는데 왜 안내문을 보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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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굴대상사 상세정보’ 문서.

<셜록>은 최근 대구시 행정기관이 작성한 '발굴대상자 상세정보'라는 문서를 확보했다. 강영식이 얼마나 가난하고, 도움이 필요한지 정보가 담긴 문서다. 문서의 ‘발굴현황’에 이렇게 적혀 있다.

'발굴변수 - 단가스 가구, 건보료 체납가구, 통신비 체납가구'

강도영이 수사기관과 <셜록>에 말한 내용이 행정기관 문서에도 적혀 있다. 문제는 '발굴변수' 옆에 적힌 '발굴대상자 처리결과'다.

'비대상 (사망)'

도움이 필요한 가난한 가구를 발굴했는데, 도움 대상자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미 사망했기 때문이다. 행정기관은 한발 늦었다.

강도영의 아버지는 5월 8일 시신으로 발견됐다. 강도영도 당일 경찰에 체포됐다. 행정복지센터는 발굴대상자 조사를 5월 10일에 시작했다. 결국 행정기관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아닌, 도움을 못 받아 죽은 사람을 발굴한 셈이다.

병원비가 없던 강도영의 아버지 강영식은 집에서 굶어 죽었다. 검찰은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부작의에 의한 살인으로 아버지를 죽였다며 강도영을 존속살해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대구지방법원은 지난 8월 13일 강도영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최근, 강도영 씨가 살던 대구시 수성구의 2층 주택을 다시 찾았다. 1층에 살던 집주인은 어디론가 이사갔다. 강도영의 아버지가 시신으로 발견된 2층도 비어 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 대문의 우체통만 꽉꽉 채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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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도영 씨가 살던 빈집엔 우체통엔 대부업체의 독촉장만 수북했다. ⓒ오지원

대부업체, 신용정보회사가 보낸 빚독촉 우편물이었다. 수신인은 모두 사망한 강영식. 강도영 씨의 동의를 얻어 우편물을 열어봤다. 돈을 갚아야 하는 사람은 이미 죽었는데, 우편물은 “돈을 갚지 않으면 재산을 압류하겠다” “신용정점수가 떨어진다”고 협박하고 있었다.

행정기관과 달리 대부업체는 빠르고, 정확하고, 집요했다.

돈을 주겠다는 우편물도 하나 도착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보낸 '분인부담금환급금' 안내문이다. 내용을 읽어봤다.

'분인부담금환급금 - 2040원'

내가 뭘 잘못봤나, 다시 살폈다. 2만 원도 아니고, 20만원 아닌, 2040원을 돌려준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병원비 걱정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도대체 가난한 강도영 가족에게 병원비로만 2000만 원 넘게 청구됐을까? 한국은 의료비 본인부담상한제를 실시하는데, 왜 그리 큰 돈을 받아가고 가족 2040원을 돌려준다는 걸까?

비밀이 있다. 다음 기사는 '사람 잡는 병원비, 사람 죽게 만든 병원비' 이야기다.

이 기사는 <프레시안>과 <셜록>의 제휴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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