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은 한국의 사회복지제도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게끔 한다. 우리나라 사회복지는 까다롭다. 선별적 복지모델이기 때문이다. 선별적 복지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저소득 계층)의 신청자에 있어서 자산조사를 통해 엄격하게 선별하여 그들에게만 제한적으로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선별적 복지는 모든 사람에게 복지 서비스가 제공되는 것이 아니라 자산조사(가난증명서)를 통해 선별된 가난한 이들에게만 기초생활 보장제도를 제공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복지 비용이 적게 들어 선택과 집중의 효과는 높일 수 있겠지만 공정성은 낮다. 기초생활 보장제는 생활이 어려운 저소득 계층의 사람에게 생계, 주거, 의료, 교육 등의 필요한 지원을 하는 것이다. 선별적 복지라고 하는 것이 대상자의 가족, 직업, 수입, 재산 등을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복지가 정말 필요한지, 대상자가 진정으로 일할 의욕이 있는지까지도 남김없이 조사하고 분석하는 것이 작금의 선별적 복지다.
이것이 바로 ‘나는 가난하다’를 증명해야 하는 일명 ‘가난 증명서’다. 국가로부터 기초생활 지급제와 사회서비스 등을 받으려는 이들은 가난을 증명하는 과정 속에 살고 있다. 해마다 가계의 소득분위를 확인하고 자신과 가족의 가난을 구구절절 설명해야 한다. 반면에, 기본소득은 특정화된 가난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정교한 정책 하나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사회경제적 발판을 만들어주기 때문에 별도의 자산조사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복지 사각지대와 낙인효과가 없는 정책이다. 따라서, 기본소득은 자선이 아니라 권리이고 베풂이 아니라 정의다. 기본소득은 모든 국민이 생애주기별로 사회경제적 위험에 놓여 있거나 놓일 수 있거나, 노출될 수 있다는 전제로 한 모든 국민을 위한 경제적 기본권이자 사회안전판이다.
‘나는 가난하다’를 증명하는 가난 증명서를 받아 기초생활 수급자가 되면 낙인찍기로 작동되기도 한다. A시 A구는 관내 다자녀 150가정에 감사 케이크를 전달하기 위한 전달식 행사를 열었는데 이 행사에 세 가정을 초청하였다. A구에서 행사를 하면서 행사에 참석한 가정의 부모와 아이들에게 '저소득 가구'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상처를 줄 뿐 아니라 저소득 가구라는 낙인찍기가 작동될 수 있다. 가난 증명서가 국가에서 수용되지 않으면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지게 된다. 예컨데, A씨는 건설일용직으로 한 달 평균소득이 115만 원이고, 병원비 때문에 생활비가 턱없이 부족함에도 기초 생활수급자에 해당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소득이 최저생계비보다 많기 때문이다. 또 다른 예를 보면, 통닭집을 운영하는 서울에 살고 있는 B씨는 한 달 평균소득이 70만 원이고, 생활비가 부족해 빚이 계속 늘어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기초생활 수급자에 해당되지 못하였다. 그 이유는 소형아파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기초생활 보장제도에서 2021년도 가구별 생계급여 선정기준액을 보면, 1인 가구 548,329원, 2인 가구 926,424원, 3인 가구 1,195,185원, 4인 가구 1,462,887원이다.
기초생활 보장제도의 사각지대가 발생 되는 이유를 톺아보면, 복지담당자의 50% 이상이 대상자 선정기준이 엄격하다고 응답하는 것으로 나타냈다. 복지담당 공무원들은 현행 사회보장제도에서 사각지대가 가장 심각한 분야는 공공부조(기초생활보장제, 의료급여)로 꼽았고, 그 다음으로 건강보험 및 장기요양보험, 보조금을 통한 사회복지사업으로 꼽았다. 더 나아가 까다로운 선별적 복지는 복지대상자의 발굴보다는 검열에 힘을 쏟게 된다는 사실 또한 간과할 수 없고, 실제로 그렇게 이루지는 경우가 빈번하여 가난한 이들을 예비범죄자로 취급되기도 한다. 빈자와 부자를 구분하려 하는 이분적 사유의 해체가 기본소득의 본질이기도 하다.
까다로운 선별적 복지는 사각지대와 낙인효과로 죽음을 선택하기도 하고, 고독사로 이어져 한국사회의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최근엔 2-30대 사이에서도 생활고로 인한 고독사하거나 가족 동반 자살이 잇따르고 있는 것이 이것의 방증이다. 생활고로 고독사 한 대표적인 사례가 2011년 시나리오 젊은 청년작가 최고은이다. 그녀는 당시 ‘며칠째 아무것도 먹지 못했으니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다면 저희 집 문 좀 두드려 달라’며 이웃집 대문에 남긴 최 작가의 쪽지는 예술인의 비참한 삶을 적나라하게 고발했다. 이 사건으로 예술인의 지위 권리를 보호하고 창작활동을 돕는다는 취지의 예술인복지법(최고은법)이 제정됐다. 그러나 이후 판영진·김운하·우봉식 등 연극배우 등이 생활고로 숨지는 일이 되풀이됐다. 어찌, 젊은 예술인만 생활고로 극단적 선택을 하겠는가! 모든 산업군과 직업군에서 극단적인 선택이 증가일로에 있다. 2019년 한해 만 해도 32건의 가족 동반 자살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의 2020년 7월 1일 기준 자살률(OECD 표준인구 10만 명 당 명)이 평균 11.2명꼴로 ‘OECD 회원국 중 최상위로 평균 자살률 대비 2.1배’나 높다. 더 심각한 것은 청년자살률이고 그 원인은 코로나 19의 팬데믹상황에서 직업 및 경제적 문제, 신체 및 건강상문제, 정신 건강 등 복합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 한국의 현주소다.
끝으로, 더 이상의 생활고로 극단적 선택하는 사람들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까다롭지 않은 새로운 분배체계가 요구된다. 이것이 바로 기본소득이다. 기본소득은 교과서적으로 표현하면, 모든 국민에게 정기적으로 현금을 지급하는 최소생계비로 정의된다면, 우리나라는 기본소득이라는 새로운 분배체계의 씨앗을 뿌려 제도화가 우선되기 때문에, 모든 국민에게 정기적으로 소멸성 지역 화폐를 무조건 지급하는 부분(소액)기본소득과 청년 기본소득으로 시작하여 점진적으로 최소생계비로 향하는 선택적 전략이 작금의 한국 현실과 맞닿았다고 필자는 주장한다.
김상돈 고려대 겸임교수는 기본소득 국민운동 경기본부 상임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