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가 이제 서서히 수습되어 가는 모양새를 보인다. 우리나라도 이제 다음 달부터 영업시간 제한이나 사회적 거리두기 등의 각종 코로나19 관련 규제들을 풀 준비를 하고 있다. 코로나19가 우리에게 준 여러 가지 교훈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공공의료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모든 국민이 절실하게 느끼게 한 것이다.
코로나19와 공공의료의 역할
코로나19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공공의료의 역할은 놀라울 정도였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최종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를 분석한 결과, 코로나19에 감염돼 병원에 입원한 환자 10명 중 7명은 공공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가 시작된 지난해 1월부터 올해 7월까지 코로나19로 입원 치료를 받은 환자 15만 8,098명 중에서 10만 7,597명이 공공의료기관에서 치료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병원 입원 환자 비율은 코로나19 2차 유행의 시작을 알린 2020년 8월에는 전체 입원 환자의 70%를 넘겼고, 11월에는 공공병원 입원 환자 비율이 80%를 넘겼다.
지역별로 보면, 의료 환경이 상대적으로 더 열악한 지역에서 공공의료 의존도가 높았다. 수도권과 광역시 등 상대적으로 공공병원이 많은 곳은 코로나19로 인한 공공의료기관 입원 환자의 비율이 64.8%였던 반면에 그 외의 지역은 81.5%였고, 세종(100%), 제주(96.8%), 경남(93.4%), 강원(92.7%)은 공공의료기관 입원 환자 비율이 90%를 넘었다(서울신문. 9/28).
이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전체 의료기관의 비율로 10% 미만이고 병상 수 기준으로는 20% 수준인 공공의료기관에서 전체 코로나19 환자의 68.1%를 진료했다는 것이다. 이제 공공의료의 중요성과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고, 국민도 공공의료 확충에 대한 공감대를 이룬 것으로 볼 수 있다.
영국 등 보건의료 선진국으로 손꼽히는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일찍 백신 접종을 완료하였음에도 높은 사망률을 기록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신자유주의 정부가 집권하는 동안 공공의료 예산을 축소하고 관련 인력을 감축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나라가 적극적으로 PCR 검사를 하고, 확진자와 접촉한 모든 사람을 감염 의심 환자를 간주하여 역학조사를 실시하는 등으로 조기에 환자를 발굴했던 것이 코로나19 방역의 1차적 성공 요인이었다.
하지만 만일 우리가 초기 방역에 실패하여 미국이나 일본, 그리고 다른 선진국들과 같이 확진자가 급증했다면, 과연 지금과 같이 취약한 공공의료 비중과 체계 내에서 사망률을 지금처럼 낮게 유지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면 아찔하다. 한편으로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공공의료 종사자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희생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다.
공공의료 인력의 정상화가 필요하다
그런데 코로나19가 조금 더 길게 계속된다면 우리나라의 공공의료 체계가 환자들을 감당할 수 있을까? 또 코로나19가 아닌 다른 전염병의 만연으로 제대로 방역을 하지 못한다면, 우리나라의 공공의료 체계는 그런 상황에서도 국민들의 생명을 지켜낼 수 있을까?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대답은 모두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백신의 부작용을 두려워하면서 차라리 코로나19에 걸리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저질환이 없는 30~40대도 코로나19에 감염돼 산소호흡기를 달고 기관 삽관까지 하는 일이 발생했다. 기관 삽관 기간이 길어지면서 장기 중증 입원 환자들에게서나 발생하는 욕창 등의 문제가 발생한 경우도 있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한 중증 환자의 급증에 대해 정부는 확진자 1만 명 수준까지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코로나19 중등증 병상은 하루 확진자 3500명, 중증 병상은 5000명까지 대응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런데 이 정도의 수준마저도 인력을 쥐어짜야 가능할 정도로 교대 근무나 근무 여건 등이 열악한 상태다.
이미 코로나19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감염병 전담 병원으로 지정된 공공병원 근무자들이 과로와 과부하를 견디지 못해 사직이 크게 늘었다. 적어도 인력을 두 배로 늘려야 한다는 것이 현장 근무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보건의료산업노조나 의료연대본부 등이 "영웅·천사라고 수식하기보다 사람으로 대우해달라"며 대책을 요구하고, 이런 내용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정부도 감염 병동의 간호 인력 기준을 마련하는 등 대책 수립을 시작했다.
코로나19 종식을 앞둔 최근(10/8)에야 홍남기 기재부 장관이 보건의료 노동자들과 만나 "공공의료 기반시설 확충, 보건의료 인력 처우 개선 등의 관련 사항들이 충실히 이행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협조할 계획"이라고 약속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국립중앙의료원을 찾아 현장 의료진,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과 가진 간담회를 통해 "생명안전수당(감염관리수당), 교육전담 간호사 지원 등 구체적인 재정 수반 사항은 필요 소요가 국회 심의 단계에서 반영될 수 있도록 향후 국회와 긴밀히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도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나 대한간호협회와 함께 코로나19 병상 운영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코로나19 병상 간호사 배치기준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지난 9월부터 시작된 코로나19 중증도별 간호사 배치기준을 마련하기로 노·정이 합의한 이후 3차례 회의를 거쳐 마련한 것으로, 가동 병상 당 간호사 숫자를 중증 병상은 1.8명, 준중증 병상은 0.9명 수준으로 기준을 적용하기 한 것이다(보건복지부, 9/28). 물론 이 정도 수준은 선진국에 비해 아직 부족하다. 하지만 간호 인력의 업무 부담을 일정 정도 경감하고, 환자 치료에 적정 인력이 투입될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을 이제야 마련한 것이다.
공공병원 확대를 위한 차기 정부의 과제
내년 3월 대통령 선거와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공의료 확충이 다시 중요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를 비롯한 많은 시민사회단체들과 노동계가 참여하여 공공의료포럼을 만들었다. 여기서 공공의료 확대를 위한 역할 분담을 하고 언론에 기고를 하거나 국회에서 세미나를 개최하고, 전국을 순회하면서 각 지역별로 공공의료 확대를 공약으로 만드는 작업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먼저 성과를 낸 곳은 기존의 민간병원을 인수하여 공공병원으로 만드는 작업이다. 부산의 침례병원은 2017년 파산하기 전까지는 600병상을 운영하면서 지역 거점병원 역할을 해 왔다. 지금도 동부산권의 의료 공백이 심각한 상태기 때문에 파산한 침례병원을 매입하여 공공병원으로 만들자는 운동이 몇 년 전부터 시작되었고, 부산 시민들의 동의를 얻어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446병상으로 줄여 운영하더라도 2594억 원(건축․장비비 등 2171, 부지매입비 423)으로 추정되는 비용은 부산시에 부담이 되는 금액이다. 특히 민간의료기관이 기피하는 ‘돈이 되지 않는’ 응급실과 심뇌혈관센터 운영, 장애인 의료와 모자건강센터 등 20개 과목을 설치하여 운영하려면 설립 후에도 중앙과 지방정부의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이미 공공병원 건립 타당성 조사에서 비용효과(B/C 분석)가 1.10 이상으로 검토되어 필요성이 객관적으로 검증되었다. 또 부산에서 부산의료원 외에 감염병과 재해·재난 등의 위기 상황 발생 시 신속한 의료 대응 체계의 한 축으로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이 당연히 뒤따라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전국보건의료노조와 보건복지부가 합의(’21.9.2.)한 공공병원의 확충·강화 방안에 2025년까지 중진료권마다 1개 이상의 책임의료기관을 조속히 지정·운영하면서 지역 주민의 공공병원 설립 요청이 강한 지역에 동부산권이 포함되어 있어 예산의 확보가 가능하게 되었다. 특히 침례병원을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운영하는 일산병원과 같은 보험자 직영 병원으로 설립해서 운영비 조달도 원활하게 할 방침이라고 한다.
충청남도에서는 경찰대학이 있는 것을 계기로 중부권에 국립경찰병원 설립이 추진되고 있다. 충청남도 의회는 중부권 국립경찰병원 설립 촉구 건의안을 채택했다(김영권 의원 발의). 지난해 코로나19라는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전국 최초로 우한 교민을 수용해서 세계적 모범이 된 K-방역의 상징적 지역인 아산시 초사동에 국립재난전문 경찰병원을 설립하여 공공의료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공공병원이 설립되면 인근 지역인 천안, 서산, 당진, 예산 등에 거주하는 146만 명과 더불어 인접한 평택과 안성까지 약 200만 명에게 공공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충남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전국 광역 지자체에서는 공공의료 유치를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공공병원 설립을 요구하고 있다. 실제로 중소도시뿐만 아니라 대도시조차도 의료 인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태기 때문에 특정 지역 근무를 조건으로 하는 공공의과대학 설립을 통한 의사 양성은 기존 의사단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역 주민의 적극적인 요구로 인해 추진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단순하게 지역별로 적정 수준의 공공의료를 확보하는 데 더해 이미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는 공공병원들이 제대로 자기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공공의료기관에 대한 평가 기준을 바꾸는 문제도 시급하다. 돈벌이가 목적이 아니라 다른 민간병원에서 제대로 진료를 받을 수 없는 노인·장애인과 저소득 취약계층을 진료하면 상대적으로 수익률이 낮을 수밖에 없는데, 그런 병원을 운영을 잘못했다고 평가하는 현행 기준이 유지된다면, 공공의료기관을 아무리 많이 설립해도 국민이 제대로 혜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 공공의료 기관들이 적정 의료 인력과 시설을 확보할 수 있도록 공공의료의 인력 기준을 합리적으로 설정하는 세부적인 정책들이 추진되어야 한다. 여기에 더해 이들 공공의료 기관을 지원하고 역할을 제대로 평가하며, 민간의료기관과 적절한 역할 분담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마련되어야 한다. 전문가들은 이들 공공의료기관들을 연계하는 공공의료전달 체계 구축과 공공의료청 신설 등의 공공의료 관리 전담기관을 설립하는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지난 2004년 SARS를 겪고 나서 노무현 대통령은 국립보건원을 질병관리본부로 확대·개편했다. 행자부, 기획예산처, 재경부 등 여러 부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만들었던 질병관리본부가 코로나19에서 훌륭하게 제 역할을 했다. 소속 인력도 600명에서 1200명 이상으로 늘어났지만, 반대하는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다. 우리 국민이 그 역할을 이미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이 있다. 교훈을 얻고도 실천하지 않는 것을 경계한 말이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공공의료를 적정 수준으로 확보해야 한다. 코로나19 이후의 일상 회복을 본격적으로 맞게 될 차기 정부의 가장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는 코로나19 같은 대유행이 다시 오더라도 국민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공공의료 체계를 구축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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