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투쟁을 벌이다 긴급조치9호 위반으로 구속돼 옥고를 치렀던 민주인사들이 21일 대법원의 전원합의체에 긴급조치9호위반 국가배상 사건의 심리를 속히 종결하고 판결해줄 것을 촉구했다.
반독재 민주화 투쟁에 헌신했던 민주인사들의 모임인 (사)긴급조치사람들은 이날 대법원 청사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시작에 앞서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 전원합의체의 심리지연으로 국가배상 소송을 제기한 긴급조치9호피해자들이 말할 수 없는 심적 고통을 겪고 있다면서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조속한 심리종결과 판결을 요구했다.
긴급조치사람들의 김하범 상임이사는 "전원합의체로 회부된 지 1년이 다 돼 가도록 심리가 종결되지 않아 매우 실망스럽다"면서 "전원합의체에서 심리를 하루빨리 끝내달라는 우리들의 간절한 목소리를 대법원에 전하기 위해 릴레이 1인 시위를 시작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김 상임이사는 릴레이 1인 시위는 긴급조치 9호 피해자들이 이날부터 대법원 청사 앞에서 오전과 오후 하루에 두차례씩 전원합의체가 판결을 내릴 때까지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성명은 "시민사회와 학계의 사법농단 척결과 사법개혁 요구해 소극적 태도로 일관해온 대법원이 긴급조치9호 국가배상 소송사건도 심리지연으로 유야무야되지 않을까 우려한다"면서 "대법원의 전원합의체가 대통령선거를 의식해서 판결을 미루고 있는 게 아니냐는 풍문들이 나돌 정도로 불신이 팽배해 있다"고 비판했다.
성명은 이어 "박정희 대통령이 학생들과 시민들의 거센 민주화 투쟁을 진압하기 위해 발령한 긴급조치9호의 위법성을 판단하는 데 왜 이렇게 긴 시간이 소요되는 지 납득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이날 릴레이 1인 시위에 참여한 유영표 긴급조치사람들 이사장은 "양승태 대법원장의 재판거래가 없었다면 긴급조치9호 피해자들의 국가배상 소송들은 정상적으로 진행돼 피해자들에게 국가배상이 이미 이뤄졌을 것"이라면서 "그러나 대법원은 권순일 대법관의 2015년 판결(2012다48824)로 국가의 배상책임을 부정함으로써 긴급조치9호 피해자들에게 정치적 테러나 다름없는 정신적 고통을 가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 이사장은 이어 "대법원이 스스로의 판결을 뒤집으면서까지 긴급조치9호 피해자들에게 국가배상을 원천차단한 것은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라는 대법원 내부문서에서 드러난 것처럼 충성심 과시에 있었다"고 지적하고 "권순일 판결은 대법원이 판사의 양심을 팔고 사법부의 독립성도 스스로 내팽개친 정치적 매춘행위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이 성명은 "권순일 판결은 원심판결을 배척하는 어떤 논거의 제시도 없이 고도의 정치행위라고 정치적 선언에 의한 것이므로 판단일탈에 해당되는 위법적 행위라고 주장했다.
이 성명은 이어 "긴급조치9호 피해자들에게 국가배상책임 인정은 대법원의 재판거래라는 잘못을 바로잡는 동시에 국가의 불법행위로 기본권을 침해당한 개인에 대한 권리회복이기도 하다"면서 "또 이는 인권보장이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의 실현이라는 측면에서도 지극히 당연한 것이며 유엔의 국제인권법에서도 국가권력의 피해자에 대한 안전하고 완전하고 실효성 있는 배상을 규정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성명서 전문]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긴급조치9호 심리를 조속히 종결하라
-다시 대법원앞 릴레이 1인시위를 시작하며-
대법원의 전원합의체가 2021년10월21일 긴급조치9호 국가배상 사건의 9차 심리를 진행한다.
우리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지난해 12월17일 첫 심리를 시작한 지 1년이 다 돼 가는데도 심리를 종결하지 않는 태도에 실망을 금할 수 없다.
대법원이 민사3부에 계류 중이었던 긴급조치9호 국가배상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했을 때 우리는 재판거래로 긴급조치9호 피해자에 대한 국가배상책임을 부정한 퇴행적 판결을 바로 잡고자 하는 것으로 평가하고 환영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의 안도와 기대는 불안과 우려, 그리고 분노로 변했다.
시민사회와 학계의 사법개혁 요구에 소극적인 대법원의 심리지연으로 인해 긴급조치9호 국가배상 소송이 또다시 유야무야 끝나지 않을까 우려되기 때문이다. 시중에는 대법원의 전원합의체가 대통령 선거를 의식해 판결을 미루고 있는 게 아니냐는 풍문들이 나돌 만큼 대법원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 있다. 우리는 이러저러한 얘기들이 낭설이라고 믿고 싶다.
대법원은 이미 2010년에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긴급조치의 목적이 국가비상사태라는 발동의 객관적 요건을 갖추지 못해서 위법이며 유신헌법에 비추어서도 위헌이라고 한 바 있다. 그리고 헌법재판소에서도 이미 긴급조치가 위헌이라고 판결한 바 있다. 또 적지 않은 하급법원의 판결에서 용기 있는 판사들은 명쾌한 논거에 입각해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기도 했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이미 판시한 바와 같이 긴급조치 9호가 위헌이라면, 당시 박정희대통령이 위헌인 긴급조치를 발령한 행위도 위헌인 것이고, 그렇다면 국가가 선출직 공무원인 대통령의 직무집행상의 위헌 행위(긴급조치 발령행위)로 인해 국민이 받게 된 재산상 및 정신적 피해를 배상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은 민법학 교과서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법리임이 분명하다.
만약 양승태 대법원장 등의 재판거래가 없었다면 국가배상 소송이 정상적으로 진행돼 긴급조치 9호 피해자들에게 국가배상이 이미 이뤄졌을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2015년 권순일 대법관이 주심을 맡은 악명높은 판결을 통해 이를 뒤집었다. 권순일 대법관이 주심을 맡은 그 판결의 요점은 긴급조치9호가 대통령의 고도의 정치행위이기 때문에 국가배상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이고 황당한 궤변인가? 국민들로부터 권한을 위임 받았을 뿐인 대통령이 무소불위의 왕이란 말인가? 독재정권하에서 독재권력의 하수인이었던 법원이 이것도 부족해서 권력과 야합해서 긴급조치발령을 정당화시켜주는 대가로 상고법원의 설치와 각종 법원조직의 이익을 챙기려 했음은 뒤에 드러난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조사에서 백일하에 드러났다.
대법원이 스스로의 판결을 뒤집으면서까지 긴급조치9호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배상을 원천 차단하고 청와대에 충성심을 과시한 것은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라는 사실이 조사결과 드러났다.
판사의 양심을 팔고 사법부의 독립성도 스스로 내팽개친 재판거래는 한국 사법부 역사에서 최악의 스캔들로 기록될 것이다. 원심 판결을 배척하는 어떤 논거의 제시도 없이 고도의 정치행위라고 얼버무린 이 판결은 또 법적인 측면에서도 법치주의를 부정하는 헌법파괴, 사법의 정당성을 스스로 파괴하는 위법적 행위임이 분명하다.
권순일 대법관이 주심을 맡은 그 판결로 인해 긴급조치9호 국가배상 소송들은 극도의 혼란에 빠졌다. 동일한 긴급조치9호 위반 국가배상 소송인데도 어떤 소송은 피해자 원고가 승소해서 대법원의 상고심까지 끝나 배상을 받고 끝난 경우가 있는가 하면 어떤 소송은 피해자의 패소가 확정돼 국가배상의 길이 막혀버렸다. 또 어떤 소송은 1심 또는 2심 아니면 대법원 상고심에 계류중이다. 국가 사법체계의 심장부인 대법원이 사법체계의 난맥상을 일으킨 장본인이었다는 참담한 현실에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고도 대법원이 사법 정의를 얘기할 수 있고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을 입에 담을 자격이 있는가?
긴급조치9호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배상 책임 인정은 대법원의 재판거래라는 과오를 바로잡는 동시에 국가의 불법적인 행위로 인해 기본권을 침해당한 개인에 대해 권리회복이기도 하다. 또한 인권보장이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의 실현을 위해서도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유엔의 국제인권법에서도 국가권력의 피해자에 대한 완전하고 실효성 있는 배상을 규정하고 있다.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위헌인 긴급조치로 피해 받은 국민에 대해 국가가 배상해야 마땅하다는 법리와 논거는 이미 차고 넘치고 있다.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 판사들로 구성된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그 당연하고 상식적인 법리를 판단하는 데 왜 이렇게 긴 시간이 소요되는지 도저히 납득하기 힘들다. 긴급조치9호로 인한 피해의 국가배상문제는 10년 이상 진행된 소송의 장기화로 인해 고문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고령의 피해당사자들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대법원이 이 소송에 종지부를 찍지 않고 심리를 장기화할 경우 피해자들의 심적 고통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대법원이 빠른 시일내에 심리를 조기에 종결하고 최종 판결을 내려줄 것을 간곡히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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