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권법에 따라 통일부 북한인권기록센터에서 시행되고 있는 '북한인권실태조사'가 조사 대상의 대표성 부족 및 문항의 일관성 결여 등으로 인해 실제 북한 인권 문제의 실태를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일관된 기준을 마련하고 그 명칭도 조사 내용에 맞게 변경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8일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북한인권실태조사와 관련해 통일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해당 조사 대상자들의 지역 및 탈북 시기 등의 특성으로 인해 이같은 문제가 발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우선 조사 대상인 탈북민들의 출신 지역 문제다. 2017년 이후부터 최근 5년간 해당 조사에 참여한 하나원 입소생 3275명 중 최종 거주지가 양강도와 함경북도, 함경남도인 경우가 전체의 86.2%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북한 인구 분포 상황을 보면 평양시와 평안남・북도에 전체 인구의 43%가 거주하고 있으며 총인구의 61%가 도시지역에 집중돼 있다. 조사 대상인 탈북민 출신지의 다수인 양강도와 함경남・북도에는 북한 전체 인구의 26%가 거주하고 있다.
이를 고려했을 때 탈북민들의 진술이 지역적 특수성이 반영될 가능성이 높고, 전체 북한 인구 대비 과도한 대표성을 가지게 될 것으로 관측된다.
탈북민들의 탈북 시기도 문제다. 해당 조사에는 1999년 이전에 탈북한 184명의 탈북민이 조사 대상자에 포함됐는데, 이는 2020년에 탈북한 14명에 비해 13배나 많은 수치다.
물론 2020년의 경우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이 있었기 때문에 탈북민 자체가 많지 않았다는 특이점이 있으나, 조사 대상자의 80% 이상이 해당 조사가 시작된 2017년 이전에 탈북했다는 점은 조사 결과의 시간적 측면에서의 신뢰성에 의구심이 들게 하는 대목이다.
조사에 쓰이는 설문 문항 및 분야가 일정한 기준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도 지적 사항으로 거론됐다. 해당 조사에서는 설문 분야를 자유권과 사회권 등으로 크게 나누고 있는데, 그 항목이 구체적 근거 없이 변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일례로 2017년 조사에는 '취약계층' 분야를 별도로 분류하지 않다가 2018년 이후에는 여성‧장애인‧노인 등을 별도 분류하기도 했고, 식수 및 위생 분야(WASH·Water, Sanitation and Hygiene)의 경우 2018년부터 별도로 신설했다가 2021년 건강권 문항에 통합하기도 했다.
이는 설문을 만드는 별도의 기구나 기준을 명확히하지 않고, 설문 개정이 필요할 때마다 그때그때 전문가의 자문을 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센터는 최근 3년 간 설문 문항에 대해 통일연구원 내 연구자들로부터 자문을 받았는데 이는 상설 기구가 아니다.
센터 측이 윤건영 의원실에 밝힌 문항 작성 방식에 따르면, 설문 문항은 센터 내 직원들이 이전년도 문항에서 수정 요소를 파악해 초안을 작성하고, 필요시 전문가 의견을 수렴하여 최종적인 설문 문항을 완성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조사로 인해 얻어진 결과를 검증할 수 없다는 것도 신뢰성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는 탈북민 진술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한계라는 측면도 있는데, 센터 측은 이에 대해 "진술을 충실하게 반영하고 (진술의 진위 여부에 대해) 판단하지 않는 것이 우리 역할"이라며 "(우리가 진술의 진위 여부를) 판단할 근거도 없다"고 밝혔다.
센터 측의 입장대로 탈북민의 진술을 조사자가 임의로 삭제‧배제한다면 이 또한 신뢰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며 북한인권법 및 관련 규칙 어디에도 센터가 이같은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근거는 없다.
다만 이같은 이유로 인해 1999년에 탈북한 탈북민과 2021년에 탈북한 탈북민의 진술을 동일한 비중으로 취급하고 있는 것이 조사의 신뢰성을 위해 적절한 조치인지는 의문이다.
조사 대상과 문항 등 세부적 기준 마련해야
북한인권실태조사는 2016년 제정된 북한인권법 제13조에 따라 2017년부터 시작됐다. 법률에 근거한 조사이기 때문에 명확한 근거에 따라 시행돼야 하나, 조사 대상과 항목 및 방법 등 조사의 세부사항에 대해서는 법률적 근거가 마련돼 있지 않다.
이렇다 보니 조사를 시행하는 통일부의 북한인권기록센터의 재량에 따라 진행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에 조사의 세부 사항에 대해 대통령령이나 시행령 등에 일정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해당 조사와 마찬가지로 법적 근거를 갖고 통계청에 의해 이뤄지는 인구총조사의 경우 통계법을 근거로 하며, 시행령인 '인구주택총조사 규칙'에 조사 대상과 문항, 방법, 기준 연도, 일시 등이 명시돼있다.
북한인권실태조사 역시 인구총조사와 마찬가지로 '북한인권법'이라는 법률을 근거로 하여 실시하는 조사인 만큼, 인구주택총조사 규칙에 열거된 정도는 아니더라도, 조사 대상과 문항 수립 방법 등의 최소한의 절차는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예를 들어 조사 대상의 경우 대통령령이나 시행령에 '탈북 연도가 10년 이내인 탈북민을 대상으로 한다'는 정도의 기준을 수립하여 시의성있는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 조사 목적에 부합할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연장선에서 탈북민의 탈북 연도를 구별하여 결과를 분류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조사 문항을 결정하는 과정 역시 시행령에 명확한 규정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현재 센터에서는 '북한인권 조사자문단'을 운영하고 있는데, 윤건영 의원실이 5년 간 자문단 회의 내용을 분석한 결과, 이들은 새롭게 들어갈 조사 내용의 방향을 제안하거나 시계열 분석 필요성을 제기하는 등 조언 수준의 역할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조사 문항을 포함해 조사 실행을 계획할 자문단을 구성할 수 있도록 시행령에 근거를 마련하는 등의 작업이 필요해 보인다.
조사 문항 구성에 근거나 일관성이 없을 경우 정치적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이러한 조치가 필요한 이유로 꼽히고 있다.
실제 2019년 통일부 국정감사 당시 정병국 바른미래당 의원은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의 방사능 유출과 탈북민 피폭 여부에 대해 질의했는데, 2021년 센터는 이 항목을 실태조사에 넣었다.
그런데 이 내용은 당시 국정감사에서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탈북민 피폭 가능성이 사실과 다르다고 즉각 반박한 바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문항이 포함된 것은 설문 문항에 일관된 기준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 인권 아닌 '북한 이탈주민' 인권 조사로 명칭 바꿔야
한편 해당 조사가 '북한인권'을 정확히 파악하기가 어렵다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그 명칭을 '북한이탈주민 인권 전수조사'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사 대상인 탈북민들의 출신 지역과 성별 구성, 탈북 시기 등을 고려했을 때 이 조사만으로 북한 인권 상황을 일반화시키는 것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센터도 이같은 부분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건영 의원실에 제출된 올해 5월 센터 '북한인권 조사자문단 회의록'에 따르면 "일부 탈북민의 경우 사회 정착기간이 오래될수록 본인의 경험을 과장, 왜곡하는 경향에 유의"해야 한다고 명시돼있다.
또 2019년 6월 뉴욕 통일교육위원을 대상으로 열린 북한인권실태보고회 결과보고서에는 "북한에 대한 접근이 어려운 상황에서 탈북민들의 증언은 주요한 자료"라면서도 "다만 개인의 경험을 토대로 북한사회를 일반화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차원에서 체계적인 정보 검증 노력이 지속되어야 한다"고 적시하기도 했다.
이같은 문제 때문에 해당 조사 결과에 대한 보고서도 공개되지 못하고 있는 측면이 있다. 윤건영 의원실에 따르면 '북한인권 조사자문단'은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총 10회 자문회의를 실시했고 이 중 4회에 걸쳐 공개 문제를 논의했으나 이렇다 할 결론을 내지 못했다.
가장 최근 열린 지난 5월 회의 결과에 따르면 참석자들은 남북관계 운영에 관한 측면, 조사 결과에 대한 적절성 등을 감안하여 조사 결과 공개에 대해 좀 더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데 의견을 모으기도 했다.
이에 윤건영 의원은 "남한에 입국한 북한 이탈주민만을 대상으로 한 조사를 통해 북한인권 상황을 일반화시킬 수는 없는 현실적 한계가 확인됐다"며 "최소한 조사의 명칭이라도 북한인권실태가 아니라 '북한 이탈주민 전수조사' 등으로 개정해야 이와 같은 모순으로 인해 발생하는 다른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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