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북한은 개성에 위치한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시키며, 남한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발송을 이유로 들었다. 이에 대북 전단 발송이 실제 북한 주민들에게 전달되는지, 북한 주민들에게 주는 영향보다 다른 목적을 노려 민간단체들이 전단 발송을 지속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됐다.
그해 8월 3일 전수미 변호사(사단법인 화해평화연대 이사장)는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출석해 대북 전단 발송 및 북한 인권 단체에서 일했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대북 전단이 해당 단체들의 돈 벌이 수단으로 활용되는 측면이 있으며, 그 중 일부는 단체의 유흥비로 쓰이고 있다고 밝혔다.
또 그는 자신이 속한 단체에서 활동하는 탈북민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면서, 이 사건이 본인과 유사한 피해를 당한 탈북민 여성들을 지원하는 일을 하게 된 계기가 됐다고 진술했다.
오랜 기간 동안 민간 단체에서 활동가로 일해 왔던 전 변호사의 진술은 적잖은 파장을 불러왔다. 그의 폭로로 단체들에 대한 후원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었다. 그 여파를 의식해, 해당 단체에서 일하던 일부 탈북자들은 전화 통화로, 또는 그의 사무실과 집 앞으로 찾아와 협박과 위협을 가하기도 했다.
십여년 전 탈북민 남성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던 전 변호사에게 이러한 협박은 상당한 압박으로 다가왔다. 국회에서의 진술 이후 한동안 우울증과 두려움이 그를 지배하기도 했다.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망설이던 전 변호사가 지난 9월 더불어민주당의 상근부대변인으로 모습을 드러내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정당 활동을 하면 어쩌면 지금까지의 협박‧위협과는 차원이 다른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음에도, 그는 왜 이 길을 택했을까? 지난 6일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사)화해평화연대 사무실에서 <프레시안>과 만난 전 변호사는 정치 입문 계기를 묻자 탈북민 여성 이야기를 꺼냈다.
"검찰이 북한에서 온 여성을 성폭행한 경찰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그러자 그 여성분이 저한테 '변호사님, 제가 북한에서 와서 이렇게 (무혐의 처분이) 된 것이죠? 지금 정부나 당(더불어민주당)에서는 별로 관심 없으신거죠?'라고 하더라.
그 말을 들은 나는 그렇지 않다며, 지금 정부도 관심이 많고 여당은 인권 문제를 중시한 전통이 있는 당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실질적으로 그분에게 그런 말을 듣는 것이 마음 아프더라.
그래서 제가 이분들의 소통 창구로서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분들이 대한민국에서 버려지지 않았다고 느낄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에, 고민 끝에 (당직을) 받아들이게 됐다"
전 변호사는 자신도 성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고, 또 고향이 전라북도 군산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은 적이 있다면서 "북한에서 온 여성들도, 저도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이유인 고향이나 성별 때문에 차별을 받았는데, 이런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줄어들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들을 돕는 일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탈북 여성들의 인권을 위해 정치권의 관심이 절박해진 현실적 이유도 그가 당직을 맡게 된 계기가 됐다.
"8월 경에 더불어민주당에서 당직 제안이 왔다. 그런데 저는 당에서 활동해 본 경험도 없고 정치는 해야 할 분들이 따로 있는 거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고민했다.
그러던 중 다른 여성단체에서 활동하시던 분이 '변호사님 이쪽 분야에서 거의 20년 동안 일했는데 바뀐 게 있어요?'라는 말씀을 하시더라.
생각해보니 제가 지난해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진술했던 성폭행 피해도 이미 10년이 훌쩍 지난 일이었다. 지금 시점에서도 여전히 그러한 피해자가 생기고 있는 건 변하지 않는 현실이었다.
국회 진술 이후 협박에 시달리면서 많은 고통이 있었지만, 구조나 제도가 바뀌는 것 같지는 않았다. 법과 제도가 변화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됐고 그래서 결심하게 된 측면도 있다."
전 변호사가 속한 더불어민주당은 북한 인권에 많은 관심을 두지 않는 편이다. 또 북한 인권과 관련한 단체들은 더불어민주당보다는 국민의힘 등 야당 쪽에 더 가까웠던 것이 사실이다. 실제 전 변호사도 현장에서 활동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어봤다고 말했다.
"북한 인권에 대한 활동을 하면서 북향민(탈북자)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더불어민주당은 우리한테 관심이 없다, 북한에서 왔기 때문에 사실상 버린 것 아니냐'라는 말들이었다. 우리 당의 아킬레스건이 북한 인권이나 북향민 문제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그런데 저는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인류 보편적 가치를 중시하고 그러한 방향에서 접근하여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고도 봤다. 또 제가 입당해서 활동하면서 더불어민주당이 북향민들 인권에 관심이 없는 정당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고 싶기도 했다."
북한 인권, 남한에 있는 '북향민'들에 대한 존중부터 시작해야
전 변호사는 지난해 국회에서 진술했듯이 현재 남한 사회 내에서의 북한 인권 문제제기가 왜곡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 주민들의 인권 향상보다는 다른 목적으로 이 문제가 활용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제가 북한 인권 관련한 활동을 하면서 안타까웠던 건 북한 인권을 정치화‧이슈화시키고 후원금을 받는 용도로 활용했다는 점이다. 또는 본인이 인권투사가 되어 남한 내에 형성돼있는 북향민 사회에서 또 하나의 권력을 잡는 수단으로 이용했다는 점이다.
또 북한인권 문제를 제기하시는 분들 중에는 1990년대에 오신 분들도 있다. 이런 분들과 최근에 남한으로 오신 분들하고는 진술에 차이가 있다.
우선 북한 내 인권교육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성폭행, 성교육 등을 전혀 받아보지 못하거나 말을 들은 적도 없다고 하는 진술이 많은데 요즘에 오신 분들은 교육을 받아본 적도 있고 그런 말을 들어본 적도 있다고 진술한다.
김정은 집권 이후에 달라진 측면도 있다. 북한에서는 장애인을 '불구자'라고 하는데, 김정은 집권 이후에는 언론 매체에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북한도 바뀌는 것이 있는데 예전 이야기를 하니까 시차가 생기고, 인권 문제를 북한 체제 공격을 위한 도구로만 사용하다 보니 실제 북한 주민들의 인권 개선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남한이 북한에 쌀이나 인도적 지원을 했을 때 북한의 소위 '장마당'에서 쌀값이 하락한다. 직접적으로 남한의 지원을 받는 주민이 아니더라도 이런 것들이 오히려 주민들의 삶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것 아닌가?"
전 변호사는 북한인권 문제를 북한 체제 전복을 위한 도구로 이용하려는 태도에서 벗어나는 것이 실제 인권 개선을 위해 시급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북한도 유엔 회원국으로 의무가 있으니 국제사회가 연대해서 문제제기하고 북한도 노력해서 개선하는 방식을 택해야 한다. 인류 보편적인 가치에서 접근하고, 북한으로부터 개선 보고서를 받는 방식이 필요하다.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이 문제를 접근하는 것이 적절하다."
그는 또 북한 인권이 현재 북한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뿐만 아니라 남한이나 제3국으로 이주한 북한 출신 주민들에게도 적용돼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래야 북한 인권 문제 제기에 대한 탈북민들의 회의적인 시각도 없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북한에서 온 사람들은 남한에서 북한 주민의 인권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면, 남한에서도 우리를 제대로 돌보지 않으면서 무슨 북한 주민 인권 이야기를 하냐고 회의적으로 바라본다."
이와 함께 전 변호사는 북한 주민들의 인권 신장은 남한에 온 탈북자인 '북향민'들에 대한 존중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2010년부터 실향민, 북향민들과 함께 탈북자가 아닌 '북향민'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이 맞지 않냐고 의견을 모았다. 북향민은 북한에 고향을 두고 있는 대한민국 사람들을 의미하는 말이다.
이러한 용어를 만들게 된 데에는 '북한이탈주민' 이라고 부르는 것이 우리가 진짜 이들을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에 대한 성찰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 북향민에 대한 우리 사회의 정책을 보면 일방적으로 남한에 대한 동화를 강요하는 측면이 있다. 점점 나아지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북한에서의 경력은 인정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북한을 무시하고 존중이 없다 보니 거기서 온 사람들에 대한 존중도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권 유린이 자행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정말로 북향민 인권을 이야기하고 싶다면 그들의 과거에 대해서도, 또 그들이 나고 자란 곳에 대해서도 존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우리의 시각으로만 북향민들을 판단하는 것도 문제다. 북한에는 시민의 역할이라는 개념이 없다. 따라서 북향민들에게 남한 사회에서의 생존뿐만 아니라 시민사회에 대한 교육도 있어야 한다. 한 사회의 시민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보다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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