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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은 직접 민주주의다

[녹색평론 김종철 읽기] ⑨ 민주주의자 김종철·Ⅰ

포장지 언어 '민주주의'가 만든 헬조선

민주주의는 인민이 통치자이자 피통치자인 독특한 이중 정체성의 정치다. 어떤 정치체제건 각각 장단점이 있다. 왕정이나 독재정도 장점이 있다. 그러나 모든 주권자가 다른 주권자로부터 존중받으면서 모두 고루게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이상의 정치 체제는 민주주의다.

그런데 민주주의를 뜻하는 서구의 데모크라시(democracy)를 정확히 번역하면 민주정이다. 서구 이외의 국가에서 정치체제 가운데 하나인 '민주정'을 이데올로기 차원으로까지 격상시켜 '민주주의'라는 말로 번역해 사용하는 나라는 한국, 북한, 중국, 대만, 일본 등 한자문화권인 동아시아 국가밖에 없을 것이다.

그만큼 19세기 말 20세기 초 동아시아 인민들과 지식인들은 왕정과 관료독재에 대해 진저리를 치고 있었고, 인민이 주인되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새로운 사회를 강렬하게 희구했다. 이때부터 근 100년이 넘게 동아시아 인민들은 민주주의를 사회와 국가 운영의 움직일 수 없는 이념으로 당연시 해왔다.

그러나 현실에 대한 모든 착시는 언어에서부터 시작한다. 공자가 바른 이름(정명 正名)을 강조한 것도, 붓다가 명색(名色, 이름붙인 물질과 개념 namarupa)과 식(識, 분별심 vinnana)을 깨달음의 핵심 대상으로 삼은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인민들은 1948년 대한민국의 '재건' 이래 자유와 선거가 곧 민주주의이며, 자본주의가 곧 민주주의라고 믿게끔 세뇌되어 왔다. '오징어게임'의 설계자들처럼 일제 총독부와 미군정의 뒤를 이은 재벌과 고위관료 엘리트 지배세력들은 이런 민주주의라는 이름 아래 마음껏 대를 이어 부와 권력을 축적해왔다. 그 결과가 지금과 같은 기후위기와 극단의 불평등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헬조선'이다. 개발과 성장이란 이름 아래 자행된 전국토와 생명에 대한 유린과 파괴다.

독재와 소수 엘리트 대의정을 민주주의로 포장하는 일은 동아시아 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걸쳐 관행을 넘어 이제는 정치현실의 등기부등본에 등재된 확고부동한 실체로 굳어졌다. 극소수를 제외하고 언어를 가지고 먹고 사는 대부분의 대학교수와 언론인 등 이른바 지식인들은 이런 포장 작업에 대거 동원된 '자발적' 희생자들이었다.

그 과정에서 마오쩌둥의 중화인민공화국과 김일성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인민이 주인되는 사회주의 이상사회 건설을 위한 투쟁과 전쟁을 통해 수백만에서 수천만에 이르는 인민들을 학살하고 굶겨 죽였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은 민주공화국의 이름 아래 수많은 인민들을 감옥에 처넣고 총을 쏴 죽이고 간첩으로 조작해 고문하고 처형했다.

직접 민주주의 이념과 실천의 산실, <녹색평론>

김종철은 이같은 민주주의의 탈을 쓴 대의정에 대해 가장 강하고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직접 민주주의, 풀뿌리 민주주의를 끊임없이 환기시킨 사상가였다. 서구의 현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너무도 먼 소수의 자유와 독재, 다수의 노예화를 초래했으며, 인민의 통치라는 본래의 민주주의 의미를 떠올리면 민주주의의 악몽이라고 김종철은 역설했다.

김종철은 경제성장은 민주주의의 적이라고 단언했다.(김종철, '경제성장은 민주주의의 적이다', <녹색평론> 2009년 11/12월호) 성장과 개발은 독재 또는 소수 엘리트 독재인 대의정 체제를 필요로 할 뿐이었다. 김종철은 그야말로 거침없는 신념의 인간이었다.(☞관련 기사 : '신념의 인간' 김종철 1주기…그에 대한 '기록하기'를 시작합니다)

"선거라는 정치행사를 통해서 우리가 깨닫지 않으면 안될 것은 진정한 민주주의는 오직 하나-풀뿌리 민주주의밖에 없다는 것, 그밖의 온갖 형태의 민주주의라는 것은 다만 위장된 엘리트 권력체제라는 것일 것이다.

우리의 살길은 권력의 위임을 통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 하나하나가 스스로 다스릴 수 있는 책임과 능력을 확보하는 데 있다는 것은 잊어서는 안될 진리이다."

- 김종철, '선거와 풀뿌리 주권의 회복', <녹색평론> 8호, 1993년 1/2월

녹색사회와 민주주의 사회는 따로국밥이 아니라 하나의 국밥이다. 녹색사회는 직접 민주주의 사회일 수밖에 없다. 개발과 성장 사회에서 부와 권력을 쥔 기득권자들이 녹색사회로의 전환을 실천할 리는 만무하다. 진정한 녹색 사상과 실천, 생태주의와 생태전환의 정치 사회 문화 운동, 나아가 생태 국가는 그 뿌리에서부터 철저하게 풀뿌리 민주주의의 실천을 전제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이것이 김종철의 생각이었다.

물론 그 역, 즉 직접 민주주의 사회가 곧바로 녹색사회가 되는 것은 아님을 지적하는 일도 예민한 지식인이었던 김종철은 놓치지 않았다.

김종철은 <녹색평론>의 창간 초기부터 대의정의 허구를 폭로하고 직접 민주주의의 실천 사례에 대해 끊이지 않고 글을 썼다. 외국의 글과 직접 민주주의 사례도 소개했다. 사실 <녹색평론>은 김종철에게는 근대화 산업화의 주술과 싸우는 사상투쟁의 무기, 풀뿌리 직접 민주주의를 확산시키는 일종의 인간관계 망이기도 했다. 김종철에게 엘리트 대의정은 그 이름이 사회주의의 노멘클라투라건 자본주의의 정경유착이건 개발과 성장의 쌍둥이였다. <녹색평론>의 대안 가운데 하나로서 1990년대 초창기부터 줄기차게 주장했던 지역통화 운동은 인민의 직접 민주주의와 대안의 공유경제가 결합된 대표 사례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면 기득권 동맹의 시멘트로 단단하게 굳어 있는 대의정 체제를 어떻게 깨뜨릴 수 있을까. 인민들 속에서 직접 민주주의의 불씨를 어떻게 들불로 전환시킬 수 있을까. 김종철은 시민의회 등 숙의민주주의를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2008년 9월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김종철은 치열한 모색 끝에 현대 자본주의 문명의 핵심은 금융권력이며, 자본의 독재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기본소득과 은행의 공공화가 핵심이고, 이를 실현하려면 시민의회 등 시민들의 참여가 보장되는 직접민주주의가 도입돼야 한다는, 나름대로의 해법을 마련했다."


-  [녹색평론 김종철 약전]⑧ 외로운 예언자, 김종철(☞ 관련 기사 : "세계는 이대로 가면 틀림없이 빙산에 부딪힌다") 

"'내면의 개안'이 더 이상 필요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민중의 주체적 삶을 위해서는 사회제도, 즉 집단적 삶의 방식도 바뀌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최소한의 물질적 생활수단을 보장하는(즉 생활수단 마련을 위해 노예적 삶을 감수하지 않게 하는) 기본소득, 기본소득의 재원 확보를 위한 신용의 사회화,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하는 실질적 민주주의의 확보를 김종철은 자기 나름의 해법으로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 [녹색평론 김종철 약전] ⑨ 2008년, 김종철 사상의 전환기(☞ 관련 기사 : 아나키스트, 현실 정치에 뛰어들다)

박인규의 지적대로 김종철은 특히 기본소득과 은행의 공공화, 시민의회를 녹색국가를 향한 도약대로 설정한 것처럼 보였다.

녹색당 창당, 현실 정치의 전쟁에 뛰어든 김종철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폭발했다. 세상의 종말을 알리는 사건에 김종철은 깊은 충격을 받았다. 그의 글은 다급해지고 격해졌다. 김종철은 2012년 총선을 앞두고 녹색당 창당 '전임강사'를 자처하며 하승수 등과 함께 현실의 정당정치 현실에 뛰어든다. 김종철은 전국을 돌며 녹색당 당원 가입을 독려했다. 실제로 초기 녹색당 창당 당원 가운데 상당수는 <녹색평론> 독자들이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대의정의 현실 정치는 권력이라는 힘을 향한 수많은 사람들의 탐욕이 날것 그대로 부딪치는 살벌한 전쟁터이다. 대의정 정치는 이념의 포장지를 벗기면 곧바로 충혈된 권력 투쟁의 격투기가 생생하게 드러난다. 그래서 대의정 체제를 풀뿌리 직접 민주주의 체제로 전환시키는 현실 정치투쟁은 수많은 인민들의 조직(화 삭제)된 힘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인민이 권력과 돈의 힘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이른바 '쪽수'의 힘밖에 없다.

동학의 2대 교주인 보따리 (장수) 선생 최시형은 도망자 신분으로 20여년 동안 조선반도 방방골골을 돌아다니면서 동학교도들을 조직했고, 포접제와 6임제 등 동학의 체제를 정비했다. 당시 동학교도는 3백만여 명에 이른다고 할 정도로 교세가 급성장했다. 전체 조선 인민이 1천 8백만 명으로 추산될 때였다. 1894년 동학농민전쟁은 이런 동학교도들이 '쪽수의 힘'을 근거로 도탄에 빠진 인민을 구제하고 일본을 물리친다는 구호 아래 일으킨 민중혁명이었다.

그런 동학농민군도 결국 일본군과 관군에게 우금티 전투를 마지막으로 패배하고 말았다. 그리고 약 1백만여 명에 달하는 조선 인민들이 죽임을 당했다. 패배의 원인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있다. 그러나 인류의 전쟁 역사를 돌이켜 보면 전쟁의 패배는 대부분 연대와 연합의 붕괴에서 비롯된다.

동학 농민전쟁 또한 마찬가지다. 당시 전봉준의 동학농민군은 일본군의 기관단총에 맞서 죽창을 들고 곧바로 서울로 진격하고자 했던 바보들이 아니었다. 농민군은 공주 관아를 점령한 뒤 그곳을 근거지로 유림까지 포괄하여 광범위한 항일 연합전선을 형성하는 점거농성의 정치전략을 구사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같은 동학농민군의 전략은 동학군에 동조했던 관군과 유림의 배신, 이탈로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다.(지수걸, 1894년 '공주 대회전'의 성격과 의미)

인도 독립이 이루어지고 나서 8개월이 되었을 때 신생 인도 국회는 비폭력 저항을 금지하고 범죄로 규정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카슈미르에 대한 인도의 침략과 폭력 진압에 대해 간디는 침묵했다. 네루는 간디의 침묵을 곧바로 지지로 해석했고 침략전쟁을 정당화했다. 이것이 냉엄한 현실 정치다.

김종철은 <녹색평론> 창간 초기부터 생태적 전환의 출발점으로 자유로운 개인들의 생태 영성과 내면의 개안을 강조했다. 동시에 그는 단순한 내면의 각성에 머물러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게 아니라 현실의 인민들과 함께 자급자족하는 공생공락의 생태순환 지역공동체를 실현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실천 대안을 모색해 왔다. 대중의 탐욕이 아니라 대중의 서원, 자비행의 실천이자 오병이어(五餠二魚) 기적이 상징하는 바 예수의 나눔과 공유 실천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렇다면 김종철은 과연 녹색당을 통해 현실 정치를 어떻게 변화시키고자 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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