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16년에 이르는 안젤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집권이 끝났다. '총리직이 영구직인 줄 아는 십대도 많다. 이 아이들이 태어나서 줄곧 보아온 총리는 메르켈 한 명뿐이다.'라는 한탄(?)이 나올 정도로 메르켈은 장기간에 걸쳐 안정적인 집권을 이어갔다. 특정 정당이 뚜렷한 과반 지지를 받기 힘든 독일 정치 지형에서 이례적 일이다.
그를 '신보수주의의 안정적 집권 기반을 닦은, 좌파적 가면을 쓴 기만적 인물'로 평가하는 이든, '독일을 유럽의 리더이자 세계의 리더로 서도록 안정적 기틀을 닦은 도덕적 지도자'로 보는 이든, 메르켈이 현대 세계 정치 무대에서 보여준 영향력 자체를 폄하하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메르켈 리더십>(케이티 마튼 지음, 윤철희 옮김, 모비딕북스 펴냄)은 여성인, 과학자 출신인, 더구나 독일의 '이등 시민'이 모인 구 동독 출신인 메르켈이 어떻게 독일 역사에 길이 남을 정치인이 됐는가를 분석했다. 왜 그가 2020년 퓨 리서치 센터가 '세계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지도자'로 꼽은 인물인지를, <타임>이 선정한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이인지를 조명하고 해부해 퇴임하는 자리에서도 독일 국민 75퍼센트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는가를 살펴본다.
메르켈은 아웃사이더로서 자기 정체성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가진 강점을 살리고, 약점은 그대로 인정하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집중한 인물로 책은 그린다. 아울러 메르켈이 장기간의 정치 국면에서 독일의 화합, 세계 속에서 독일의 책무를 강조해 오며 역경을 돌파해 온 일관성을 책은 높이 평가한다. 책의 부제가 '합의에 이르는 힘'인 까닭이다.
저자는 ABC 뉴스의 서독 특파원을 지낸 헝가리 출신의 미국 언론인 케이티 마튼이다. 냉전기 스파이 혐의로 체포된 저널리스트 부모 밑에서 자라난 저자는 지난 4년간 독일 총리 집무실에서 메르켈의 정치 일정을 취재했고, 그간 총리의 지인들과 보좌관 여러 명을 인터뷰해 책의 기초를 만들었다. 책이 다른 언론에서는 알기 어려운 메르켈의 사생활, 메르켈과 버락 오바마, 트럼프 등 다른 세계 리더와의 일화를 바탕으로 격동했던 지난 16년을 돌아보는 에피소드를 충실히 담을 수 있었던 배경이다.
책은 타국의 지도자를 조명하고 있지만, 책을 읽는 독자는 자연스럽게 한국의 지도자를 생각하게 된다. 특히나 민주화 이후 가장 크게 흔들리는 대선을 맞이하게 된 지금의 한국인이라면 더 큰 한숨을 지을지도 모를 일이다. 독일과 한국 정치 지형의 차이를 고민하게끔 만드는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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