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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승없이 KTX로 수서까지 가고 싶습니다"…청와대는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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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승없이 KTX로 수서까지 가고 싶습니다"…청와대는 답해야 한다

철도 개혁이 가야할 길, 철도의 공적 통제

뉴스가 뉴스를 덮어버려 정신을 제대로 차려도 세상을 뒤쫓아 가기 힘든 시절이다. 사건들은 번호표를 뽑아 들고 애타게 기다리다 창구 호출에 번개처럼 달려들 듯 명멸하고 있다. 세상이 다이나믹해서 좋은 사람들 중 하나는 사회의 설계 과정에 개입해 이익이나 이권을 챙기는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된다. 예를 들면 수서고속철도 민영화를 추진했다가 막히자 우회로를 뚫어 경쟁체제란 이름으로 SR을 출범시킨 국토교통부 관료들이나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그 밖의 사람들 말이다.

구조적으로 정착된 것의 문제점을 사회경제적, 철학적으로 분석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일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 정치 권력의 지향점에 따라 접근 방식이 달라지기도 하고 설령 개혁을 시도 한다고 하더라도 재구조화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렇게 한 사안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언론의 입장에서도 매력적인 뉴스거리는 아닐 것이다. 철도 공공성문제를 다룬다면 명절날 되풀이되는 고속도로 정체 소식이나 명절 음식 재활용법 같은 언제가 본 뉴스 느낌이 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 잘 다니던 무궁화호 열차 14개 노선이 단돈(?) 39억원의 철도공사 재정적자를 절감하기 위해 폐지되거나 감축되었는데 이는 한 대졸 신입사원이 6년간 근무하다 대리 직급으로 그만두면서 받은 퇴직금에도 못 미친다. - 사건이 일어난 배경이나 원인 같은 것들이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다.

그럼에도 뉴스 홍수 뒤에 숨은 채 '사회에, 이익이나 이권은 소수에게' 점유되게 만든 사람들과 시스템을 고발하는 것은 구조의 문제점과 마주치게 된 사람의 숙명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수서고속철도주식회사, 즉 SR의 탄생 배경은 한국철도 또는 한국철도공사의 적자 문제 때문이다. 이 적자는 국영, 또는 공기업의 무사안일주의에서 비롯된 경영부실에서 발생했고 그 이유는 100년이 넘는 독점체제에 안주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었다. 결국 경쟁체제 만이 한국철도나 철도공사를 회생시키는 것이고 SR의 탄생은 철도를 살리는 애국적 결단이 되어 버린다.

철도 독점 문제가 제기될 때 궁금했던 것은 한국 지식인 사회의 집단지성은 왜 침묵을 지킨 채 작동하지 않았던 가였다. 그 수많은 경제학, 경영학 박사님들과 관련 연구자들은 국토부가 주장하는 "한국철도 독점체제" 논리에 수긍을 했기 때문이었을까?

철도는 기본적으로 자연독점의 성격을 갖는다는, 경제학 원론 수준의 상식조차 뛰어넘는 어떤 대단한 논리가 나도 모르는 사이 형성되어 버린 것인가? 정부에 의해 노선과 운임, 정책 등 모든 것이 결정되고 그 사안을 집행하는 기관인 철도공사가 경제학 이론서에 나오는 독점기업의 횡포를 부리고 있는 것인가? 식민지, 분단, 전쟁, 가난의 시대를 질주해온 백년 세월 동안 한국철도는 독점의 단 열매를 빨아먹으며 시민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악덕 기업이었던가? 이런 질문들에 하나라도 의문이 생긴다면 국토부가 한국철도의 문제로 진단한 독점 폐해는 오진이다. 또 그 결과 나온 경쟁체제란 처방도 당연히 잘못된 것이다.

요즘 뜨거운 이슈는 구글이나 아마존, 네이버, 카카오 같은 플랫폼 기업의 독점 문제이다. 철도는 진짜 플랫폼을 가진 원조 플랫폼 기업이면서 독점기업이었다. 그런데 철도의 독점은 광대한 부지, 선로, 역, 열차 등을 포괄해야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었다. 당연히 국가의 개입이 전제되지 않으면 제대로 기능할 수 없는 조건이 되었다. 철도 산업 초기 세계 여러 나라에서 수많은 사기업 철도들이 경쟁했으나 손댈 수 없는 비효율로 국가가 나서 통합을 시켰다. 철도 경쟁체제 신봉론자들은 독점보다는 경쟁이 소비자나 이용자에게 낫다는 단순 논리로 접근하지만 독점도 독점 나름이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미국 연방거래위원장 리나 칸은 1989년 생으로 최연소 연방거래위원장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세상에나 32살, 게다가 여성이다. 한국이라면 서울대 출신 60대 남성의 전유물 같은 자리다. 리나 칸은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처럼 플랫폼 기업이 몸집을 불리는 환경에서 반독점 법안을 만들어 거대 플랫폼 기업의 시장 장악을 막는 과제를 안고 있다. 리나 칸이 연방거래위원장이 되었을 때 그가 로스쿨 학생 시절인 2017년 발표한 논문 "아마존 반독점의 역설"이 주목받았다. 전통적인 산업에서의 독점과 신자유주의 독점개념, 디지털을 기반으로 한 현재의 독점은 독점이란 말을 쓰면서도 작동 방식이나 국가가 이에 대응하는 방식도 다르다는 것이다.

특히 시장의 완전한 효율성을 강조하는 시카고학파가 주도한 신자유주의적 독점 개념은 기업들의 수직 합병을 큰 문제로 보지 않는다. 시장이 알아서 기업의 이익을 확보하면서도 경쟁구조를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마존이나 카카오 같은 기업들은 전래동화의 무쇠를 먹어치우는 괴물처럼 기업들을 품에 안고 있다. 또 이 과정에서 미끼처럼 낮은 가격 또는 무료 서비스를 동원해 소비자들은 포획하고 경쟁기업을 고사시키거나 빨아들이고 있다. 더 나아가 골목상권까지 초토화시키고 있다.

문제는 구시대의 미연방 반독점법 개념은 낮은 가격으로 시장을 장악하는 기업에 대해 독점이라는 이름으로 제재를 할 수가 없다. 낮은 가격은 소비자들에게 혜택을 주는 것인데 이것은 폐해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IT기반 플랫폼 기업들은 선한 사마리아인이 아니다. 더 이상 경쟁할 상대가 없어지게 되면 소비자들은 새로운 청구서를 받게 된다.

플랫폼 기업들은 미연방거래위원회의 디지털시대 반독점 법안에 반대를 하고 있다. 그런데 나의 관심은 아마존이나 구글의 반독점 저항이 아니다. 기업들은 당연히 자신들의 이익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달려들 것이기 때문이다. 리나 칸은 현대 플랫폼 기업들의 독점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으로 전통적인 독점금지법의 복원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더욱 흥미로운 해결책은 플랫폼 기업의 독점을 현실로 인정하되 공적 통제를 하자는 것이다. 플랫폼을 공기업 형태로 유지하면서 기업들이 자유롭게 경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리나 칸의 대안이 말해주는 분명한 한 가지가 있다. 독점의 문제를 해결하는 유용한 방식 중의 하나가 공적 통제라는 것이다. 이 말은 철도가 공기업체제로 존재하는 한 독점의 폐해를 발생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가 관리하는 철도에 문제가 있다면 독점의 문제가 아니라 교통이나 철도 정책, 투자, 그 밖의 사회경제적 조건에서 나온다. 그렇다면 철도 개혁은 민영화(민자사업)과 경쟁체제, 라는 잘못된 길을 벗어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함을 알 수 있다. 최근 한 달간 20만이 넘는 시민들이 수서까지 KTX를 타고 싶다는, 철도 통합으로 더 편리하고 저렴한 철도를 이용하고 싶다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참여했다. 그동안 한 발짝도 못 나갔던 철도 개혁에 대해 진정성 있는 청와대의 답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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