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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노조 파업, 끝났지만 끝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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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노조 파업, 끝났지만 끝난 게 아니다

[창비 주간 논평]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하고 국가 재정 비중 늘려야…'공공화'가 대안"

보건의료인력 처우 개선과 공공의료 확충을 주요 요구안으로 한 보건의료노조의 파업이 지난 9월 2일 끝났으나, 단언컨대 문제는 하나도 해결되지 않았다. 코로나 유행이 끝난 후 또는 그전이라도 언제든 비슷한 사태가 다시 생길 수 있다는 뜻이다. 의료나 병원이라는 말이 붙으면 어떤 논의라도 곧장 '도덕'의 문제로 비화할 때가 많지만, 병원의 노동과 파업은 상당 부분 한국 보건의료의 정치경제, 그것도 '구조'에서 비롯된다. 최소한 다음 세 구조를 건드리지 않고는 몇 가지 문제를 해결한다 하더라도 미봉책에 지나지 않는다.

첫째, 경제주체로서의 병원. 통념과 달리 한국의 의료는 일반 상품이나 서비스와 비슷한 면이 많다. 공급자(제공자)는 의료를 '팔고' 소비자(이용자)는 그것을 '산다'. 그러면서도 경제 주체로서의 병원이라는 구조적 한계는 간과하기 쉬운데, 이는 '국민건강보험'이 중간에서 환자 대신 돈을 치르는 까닭에 보통의 시장, 상품, 거래가 아닌 것처럼 생각되기 때문이다. 파는 쪽에서 보면 시장이나 상품 거래라는 점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병원이든 동네 의원이든 일반 상품이나 서비스를 거래하는 것과 경제 원리의 차이가 없다. 환자 진료로 수입을 얻어 인건비를 비롯한 비용을 지출하고 남는 것이 수익이다. 수익이 적으면 운영이 어렵고 심하면 망하기도 하며, 수익이 많으면 병원을 키우거나 자본을 늘릴 수 있다.

시장에서 서비스를 생산하고 공급하는 경제주체가 더 많은 수익을 올리려는 것, 그리고 이를 위해 가능하면 비용을 줄이려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인 행동이다(경제적 합리성). 상품 생산에 지장이 없는 한 인건비를 최대한 줄이려는 것 또한 자연스럽다. 수익을 올리는 원리에 복잡한 의료경제학 이론이 필요할까. 의료의 질은 눈에 띄지만 않으면 부차적 문제가 되는바, 사람을 줄이고 가능하면 값싼 인력으로 버티며 수가를 받을 수 있는 검사나 기계가 사람을 대신한다. 이런 구조에서 병원이 비싼 인건비, 높은 노동비용, 충분한 임금을 보장할 동기가 있는가?

공공병원도 기본 논리가 크게 다르지 않다. 대부분 수입은 환자 진료에서 얻고, 따라서 국민건강보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감독을 맡은 각급 정부가 재정 지원을 피하는 데다 재정 건전성이라는 공공기관 평가 기준까지 동원되면 공공병원의 경제 논리는 민간병원과 차이가 나지 않는다. 노동비용과 임금을 둘러싼 원리도 같다.

둘째, 생산체제로서의 병원과 의료노동의 모순. 경제주체인 병원은 생산체제의 한 구성요소로 이해할 수 있는데, 이는 시설과 인력으로 대표되는 의료자원의 차원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생산체제란 그 의료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결정하는 틀이자 조건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병원의 인력 부족은 고질적 문제지만, 이는 단지 숫자가 모자란다는 문제를 넘어 생산체제의 전체적인 틀 그리고 각 요소와 관련되어 있다. 노동 구성(mix)과 분업, 상호관계, 의사결정의 권력, 통제 등이 모두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한국 의료의 생산체제는 여러 역사적·사회적 층(lamina)으로 구성되지만, 보건의료인력 문제에 관한 한 의료서비스 생산이 곧 자본주의적 상품 생산이라는 점이 가장 중요한 조건이자 특성이다. 또한 이 체제에서 국민건강보험이 시장을 조성하고 조정하는 가장 중요한 행위자라는 점도 지나쳐서는 안 된다. 제도적으로 건강보험은 의료상품의 가격을 정하고 지불하는 권한을 독점함으로써 시장을 지배한다. 건강보험의 '급여' 여부를 결정하고 해당 급여의 '수가'를 정하는 것이 바로 공적 건강보험제도의 권한이자 책임이다.

생산체제는 생산자의 경제적 이해관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급여 여부와 수가는 생산자의 매출과 수입, 수익에 직결되는데, 한국 건강보험의 중요한 특성 가운데 하나는 생산물, 즉 의료의 '상품화'가 시설, 장비, 재료, 물품, 검사 등에 치우쳐 있거나 이들의 가격(수가)이 높게 책정된다는 사실이다. 상품화가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지만 진료비를 '행위별 보상'으로 지불하는 한국 건강보험의 제도적 특성 때문에 이런 경향이 더 두드러진다. 예를 들어 환자를 상담하고 교육하는 진료 행위에는 보상이 적고 초음파 진단이나 로봇 수술은 상대적으로 수가가 후하다. 대부분의 돌봄노동은 아예 수가에 들어가지도 못한다.

한국 의료가 비가시적이고 계량하기 어려운 노동보다 가시적이고 구분 가능하며 보상에서 유리한 수가(진료비) 항목에 집중하는 것은 이런 생산체제의 구조 때문이다. 충분한 시간을 들여 환자를 진찰하는 것보다 수익성이 큰 진단 검사나 장비를 활용하는 시술을 늘리는 것이 경영에 유리하다. '경험이 풍부하고 잘 훈련된 간호사가 환자를 제대로 돌봤다'라는 가치보다 '숙련된 간호사에게 더 많은 인건비가 들어간다'라는 논리가 통한다. 간호의 질은 눈에 잘 띄지 않고 수가에 반영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셋째, 병원 노동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 국가 문제다. 개인에게 의료는 때로 생사를 가르는 문제로 도덕이나 규범의 영역일 수 있지만, 국가권력에 있어 의료는 흔히 '통치'의 대상이다. 병원 노동자 파업이 통치를 위협하는 요소라기보다는 그들의 파업을 막지 못했다는 국가권력의 무능(또는 그런 평판이나 여론)이 위험요인이 된다.

통치 차원에서 단순하게 표현하면 현재 한국 의료는 국가와 정부가 직접 책임져야 할 대상으로 인식되고 있지 않다. 국가와 정부는 정책이나 감독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있다. 병원 노동자의 저임금이나 열악한 노동조건이 민간과 시장에서 벌어지는 일인 한, 국가와 정부는 그 시장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뿐 책임은 개별 '사용자'와 노동자 간의 관계로 흩어지고 개별화된다. 한국 의료의 생산과 공급을 대부분 민간 부문이 맡고, 국가는 배경 또는 조건으로만 남아 있기 때문이다.

건강보험 수가가 낮아 여력이 없다는 병원(자본)의 논리가 있지만, 건강보험의 탓을 하더라도 그 책임은 보험 가입자(사실상 전체 국민)로 개별화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진료비 인상은 곧 보험재정이 늘어나야 한다는 뜻이고, 그러자면 보험료를 인상해야 한다. 누가 보험료 인상에 찬성하겠는가 하는 것이 국가와 정부의 자기 책임에 대한 최대한의 설명이다.

이상 세 가지 이유만으로도 병원 노동의 조건은 의료체제에서 비롯된 구조적 문제다. 파업을 해야 했던 이유는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국가와 정부가 할 수 있는 일 또는 해야 한다고 인식하는 일도 많지 않은 터,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사회적 의제가 될 가능성도 낮아 보인다. 여기서 병원 노동자의 구체적이면서도 현실적인 과제들은 한국사회의 거시적 개혁 과제와 만난다. 인력 충원이나 처우 개선 등 일상의 문제를 개선하는 '정책' 과제와 함께 상품화, 시장 원리, 반(反)공공성으로 요약되는 한국 의료의 구조를 개혁하는 과제가 같이 갈 수밖에 없다.

구체적으로는, 공공병원과 공공보건의료의 비중을 늘리되 의료 '시장'이 무너지는 비수도권 의료 취약지역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국민건강보험이 더 많은 의료비를 부담하고(흔히 '보장성'이라고 부른다), 보험료 인상보다는 국가 재정의 비중을 더 늘리는 것도 중요한 구조 개혁이다. 곧 닥칠 돌봄체계의 위기 또한 국가 책임을 강화하는 '공공화'를 빼고는 다른 대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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