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세기가 바뀌고 있는 것을 실감하면서 세월을 보내고 있다. 이젠 동영상 수업도 제법 익숙해졌고, 줌(Zoom)으로 하는 수업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 간다. 오늘은 동영상으로 강의를 하는데, 갑자기 답답함을 느꼈다. 한국어의 화용론(대화 중심의 문법)을 이야기해야 하는데, 상대를 앞에 놓고 서로 이야기하면서 수업을 하면 쉬운데, 혼자 컴퓨터 화면만 보고 이야기하려니 답답함을 이루 말할 수 없다. 할 수 없이 과거에 실수했던 이야기와 틀리기 쉬운 우리말 대화법을 혼자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예전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잔칫집 분위기로 즐겼던 금산인삼축제가 언제였던가 그립기만 하다. 하루는 서천에서 노인들이 버스 두 대를 타고 인삼 축제를 구경하고 귀가하는 길이었다. 필자와 친분이 있는 어르신께서 잘 다녀가노라고 전화를 하셔서 “잠깐만 기다리시라.”고 하고는 차를 몰고 배웅하러 달려갔다. 금산에서 만든 인삼 음료 네 상자를 싣고 가서, 버스 한 대에 두 상자 씩 올려드리고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 내려 왔다. 그런데 문제는 마지막 인사였다. 한국어를 전공한 사람이니 틀리지는 않았을 것인데, 어르신들의 불편한 표정에 뒤통수가 근질거렸다. 평소에 존경하던 어른이 마을 주민들을 모시고 왔으니 당연히 어른으로 존경받을 만한 분들이 오셨고, 그래서 인사를 한다는 것이 “즐겁게 마무리하시고 편안히 돌아가시길 바랍니다.”라고 하고는 버스에서 내려왔다. 그런데, 뒤에서 어느 분이 “허허 나보고 돌아가시라는군. 죽으라는거 아냐?”라고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었다.
우리말은 복합어가 될 때 의미가 바뀌는 것이 많다. 상황에 따라서 전혀 다른 뜻으로 쓰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춘추’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봄‧가을’을 일컫는 말이지만, “자네 춘부장 춘추가 어떻게 되시는가?”라고 하면 이때는 ‘나이’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본래의 의미와는 거리가 멀다. ‘연세’라는 말보다 더 높은 의미로 ‘춘추’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비슷한 예로 ‘밤낮’이라는 말도 일반적으로는 ‘밤과 낮’을 말하지만, “너는 밤낮 컴퓨터 게임만 하니?”라고 할 때는 ‘늘, 항상’이라는 뜻으로 쓰인 것이다. 이와 같이 상황에 따라 의미가 바뀌는 복합어가 하나둘이 아니다. ‘돌아가다’라는 말이 ‘돌아서 가다(回去)’라고 할 때는 별 탈이 없지만 ‘사망하다’의 의미로 쓰일 때는 조심해서 사용해야 한다. 노인들을 앞에 두고 “편안히 돌아가시라”고 했으니 다른 면에서는 “편안히 죽으라”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오호 통재라! 이미 버스에서는 내려왔고, 노인들의 혀를 차는 듯한 소리는 뒤통수를 간지럽게 했다. 다시 올라가서 돌아가라는 말이 ‘귀가’를 의미한다고 이야기하기에도 때는 늦었다. 차라리 “안전하게 귀가하시길 기원합니다.”라고 했으면 아무 탈이 없었을 텐데 안타까운 일이었다. 이럴 땐 정말 한자를 사용하는 것이 편했는데 후회스럽기만 하다.
이야기를 시작한 김에 틀리기 쉬운 우리말 존대법도 조금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우리말의 존대법은 가장 뒤에 나오는 서술어에 존칭선어말어미 ‘시’를 붙이면 된다. “잘 먹고, 잘 놀다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하면 썩 잘 된 표현인데 어른들이 이런 표현을 들으면 언짢다고 한다.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주어가 두 개일 때는 두 군데 다 ‘시’를 붙여야 한다.
아버지는 신문을 보시고, 어머니는 음악을 들으신다.
와 같이 쓴다. 그러나 주어가 하나일 때는 한 번만 쓴다.
아버지는 신문을 보면서 음악을 들으신다.
라고 하면 된다. 그런데 이런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 “신문을 보시면서 음악을 들으신다”와 같이 표현하는 사람들이 많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맨 뒤에 나오는 서술에만 ‘시’를 붙이면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존대법이 그리 어려운 것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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