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7일 남북 통신선이 복원되면서 희미하게 살아났던 대화 분위기는 8월 한미 연합 훈련 강행 및 이에 대한 북한의 반발로 차갑게 식어버렸다. 이 와중에 남북한의 군비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5년간 315조 원의 국방비를 투입하겠다는 남한 국방부의 국방중기계획 발표, 북한의 중거리 순항미사일 및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남한의 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SLBM) 시험 발사 및 첨단 미사일 공개 등이 경쟁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9월 15일 하루 동안에 벌어진 일들이 주목을 끈다. 우선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대는 '철도'였다. 북한이 이동식미사일발사차량(TEL)에 이어 '철도기동미사일연대'를 창설해 철도도 발사대로 활용하려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이는 유사시 북한의 미사일 은폐 및 기동 능력이 강화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발사대의 다종화는 상대방의 공격에 대한 생존율을 높여 동시다발적인 타격 능력을 확보하려는 의도에서 추진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북한의 다음 수순은 SLBM 시험발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뒤질세라 문재인 정부도 '신종 미사일 4종 세트'를 공개했다. 잠수함에서 발사해 로켓엔진을 점화시켜 목표물을 타격하는 SLBM 시험발사뿐만 아니라 한국형 전투기 KF-21 '보라매'에 탑재될 장거리공대지미사일, 탄두 중량이 2톤에 달하는 고위력 지대지 탄도미사일 '현무IV', 초음속 순항미사일 등의 개발 성공 사실도 공개했다.
이는 '한국판 미사일 3축 체계'가 완성단계에 접어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중에서 발사되는 SLBM, 하늘에서 발사되는 공대지 미사일, 파괴력을 극대화한 지대지 탄도미사일을 빠른 속도로 구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남북한의 치열한 군비경쟁은 남북관계가 질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2018년 4.27 판문점 정상회담과 9.19 평양정상회담을 관통하는 정신은 '선군(先軍) 협력'이었다.
당시 미국 주도의 경제제재가 촘촘한 현실에서 남북 경제협력을 당장 추진하기 힘든 만큼, 군사적 신뢰구축과 "단계적 군축" 추진을 우선시 했다. 남북 정상들이 뒤에서 바라보는 가운데, 국방장관들이 9.19 군사분야 합의서에 서명한 것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이었다.
그러나 합의서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군비경쟁이 치열해지고 말았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연말에 확정한 국방비를 2008년 이래 최대치인 8.2% 인상했고 각종 첨단무기를 서둘러 도입했다.
그 결과 한국의 군사력은 2017년 세계 12위에서 2020년과 2021년에는 6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북한도 '단거리 발사체 4종 세트' 등 신형무기를 선보이고 "국가 핵무력 강화"를 천명하고 있다.
불과 1년 사이에 남북관계가 '선군 협력'에서 군사력을 앞세운 '선군 경쟁'으로 둔갑하고 만 것이다. 그 결과 남북 정상들이 다짐한 '대화와 신뢰에 의한 평화'는 온데간데없어지고 '힘에 의한 평화'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참으로 허망하고 개탄스러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남북한 정상이 직시해야 할 현실은 또 있다. 그것은 바로 양측의 무기고에 무기가 쌓여갈수록 양측 주민의 생활고도 깊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의 지속적인 강화는 인민생활 향상에 필요한 내부 자원의 왜곡 현상을 심화시키고 대북 경제제재의 유지·강화의 빌미가 되고 있다.
북한뿐만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의 현실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생존의 벼랑 끝에 내몰린 자영업자들이 대표적이다. 코로나19 이후 자살을 선택한 자영업자가 최소 22명에 달한다고 한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자영업자뿐이겠는가?
나는 이러한 현실을 조금이라도 개선하기 위해서는 국방비를 하향 조절해 '죽음의 계곡'을 건너고 있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다리'를 놓아주어야 한다고 호소해왔다. 정부가 재정 부족이나 재정 건전성 탓만 하지 말고 하늘 높을 줄 모르고 치솟는 국방비를 보라고 호소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호소는 '군사강국을 향한 열망' 앞에서 초라해질 뿐이었다.
바다를 뚫고 치솟아 오르는 SLBM을 보면서 기뻐하는 문재인 대통령과 군 수뇌부를 보면서 1968년 미국 대선에 출마한 로버트 케네디(바비)의 연설 장면이 떠올랐다.
그는 형 J.F 케네디 대통령이 야심차게 추진했던 우주개발계획도 "중요하지만", 기아·질병·오염에 시달리는 미국 빈민을 구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국가 재정 분배의 '인간화'를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미국 곳곳에 퍼져 있는 빈민촌을 방문하고는 다짐한 약속이었다.
1968년이 어떤 때였나? 미소간의 군비경쟁과 우주경쟁이 뜨겁게 달아오를 때였다. 미국은 베트남 전쟁 수렁에 빠져들고 있었고 한반도 정세도 심상치 않게 전개되고 있었다.
중국은 원자폭탄에 이어 수소폭탄 실험에도 성공해 양탄일성을 향해 거침없이 질주할 때였다. 그런데도 바비는 국가의 존재 이유는 국민부터 살리는 데에 있다고 역설했다.
연민과 연대에 기초한 그의 발언은 강력한 호소력을 발휘하면서 그를 유력한 대선 후보로 끌어올렸다. 비록 그의 꿈은 흉탄과 함께 쓰러졌지만 말이다.
나는 문재인 대통령이 이제는 생활고에 지쳐 쓰려져가는 민생 현장을 찾아가길 바란다. 국방부 장관과 군 수뇌부는 쌓여가는 첨단 무기고를 보면서 흐뭇해하지만 말고 국방비를 절약해 민생에 투입할 수 있는 새로운 안보관을 갖기를 바란다. 정당과 정치인들은 묻지마식 군비증강의 거수기로 전락한 국회가 과연 누구를 대의(代議)하고 있는지 자문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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