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번영은 경제성장에 달렸고, 경제성장은 무한경쟁과 효율성이 보장해준다는 믿음을 강요당했다. 그 과정에서 지속 가능한 환경(E), 누구나 존중받는 사회(S), 투명하고 포용적인 거버넌스(G)를 간과했다. 더 나아가 파괴했다. 그 결과 기후변화, 빈부격차, 인권침해 등 아주 심각한 사회․환경 문제에 직면한 지 오래다. 이래선 안 된다는 생각이 주류가 되었다. ESG에 신경 쓰자는 것이다. 경제적 번영에 대한 거부감이 아니다. 성장 방식에 대한 성찰이었다. 그러니 경제성장과 견주어 우선순위나 계급 따지는 논쟁은 필요 없다. 경제성장 과정에서 ESG를 고려해야 하고, ESG를 지향하는 과정에서 경제성장과 통합․연계할 수 있다는 면에서 오히려 상호 협력적이고 보완적인 관계다. 지속가능발전 목표(SDGs, Agenda2030)가 지향하는 바이기도 하다. 정작, ESG를 둘러싼 쟁점들은 실행전략과 관련된 것들이다.
쟁점1. ESG는 그린워싱, 소셜워싱에 불과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부, 기업, 소비자, 투자자를 포함한 경제주체들의 ESG 실행전략의 하나는 '남을 해하지 않는 것'이다. 단계적으로 접근하든 중요도 또는 우선순위로 접근하든 첫 번째는 나쁜 것을 배제하는 것이다. 국내법, 국제기준, 윤리적 기준 할 것 없이 사회적으로 허용되지 않은 일은 하지 않는 것이다. 즉, 남을 해하는 행동에 연루되는 것을 피하는 것이다. 연루는 직접 유발하거나 기여하는 경우, 또는 의도치 않았지만 연관이 되는 경우다. 세심한 주의를 요한다. 기업은 안전하지 않은 제품과 서비스로 소비자의 생명과 안전을 해칠 수 있다. 단가를 후려치는 계약은 공급망에 의한 인권침해에 기여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노동자의 안전과 노동환경을 해치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업에 투자한 투자자, 저개발국가 아동의 강제노동에 연루된 의류나 스포츠 용품을 소비하는 소비자는 기업이 남을 해하는 일에 연관될 수 있다. 취약계층에 복지를 제공하는 공공서비스도 의도치 않게 사회적 낙인과 같은 복지서비스 소비자의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
사회 진보를 위한 혁신과 부의 창출에 기여하고, 사회공헌 성과가 제아무리 크더라도, 남을 해하는 데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책임을 상쇄하지 못한다. 가장 필수적이고 우선시해야 할 전략이다. 경영전략에서는 인권경영, 준법경영, 윤리경영이 예다. 투자 및 소비 분야의 최우선 전략도 네거티브 스크리닝이다. '그린워싱', '소셜워싱'이 쟁점이 되는 이유는 이 첫 번째 전략이 안중에 없어서다. 도리어 남을 해한 행동을 은폐한다. 예방책을 마련하거나 피해자를 구제하기보다 부정적 이미지를 가리기 위한 목적으로 '위장 행동'에만 열을 올린다. 진심이 없는 사회공헌이 아니라 가장 중요하고 우선시 되어야 할 전략이 부재한 것이 문제다.
쟁점2. 공시 의무화에 집착한다?
두 번째 전략은 ESG 관점에서'좋은 일을 행하는 것'이다. 남을 해하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약속을 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또한 시스템 실행 성과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이해관계자들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의도치 않게 인권침해에 연루될 경우, 피해자에게 적절하고 효과적인 구제책을 제공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형사상 책임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형량을 정하거나 손해배상액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참작될 수 있는 요소이기도 하다. 흔히'실사 의무(due diligence)'라 일컫는다.
이러한 노력들은 ESG 증진 활동을 전개하는 등 리더십을 발휘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투명하고 포용적인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이해관계자의 참여와 소통을 보장한다. 보다 나은 근로환경을 조성한다. 인권침해 피해자는 구제절차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친환경․재생 에너지 전환을 선도하는 기술 개발에 기여한다. 국내․외 관련 이니셔티브에 참여해 ESG 증진에 기여한다. 공유가치창출(CSV), 사회적 가치 창출을 말하는 이들이 강조하는 전략이다. 투자 전략 관점에서 보면 포지티브 스크리닝으로, ESG실행을 위한 시스템을 잘 구축한 기업, 이해관계자 인권을 존중하고 친환경 경영을 하는 기업을 찾아 투자하는 것이다. 소비자는 소비 결정 과정에서 이러한 기업의 제품을 우선 구매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투자나 소비 절차에 ESG를 고려하는 기관 또는 개인에게 관련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긍정적인 정보는 자발적으로 공개되고 있으며 접근이 용이하다. 홍보나 마케팅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반면, 네거티브 스크리닝 전략을 수행하는 데 필수적인 환경․공정거래 법규 준수 위반이나 인권침해와 같은 부정적인 정보는 가능한 공개하지 않는다. 전 세계적으로 부정적 정보를 포함한 균형 있는 정보공개를 의무화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불어 안전한 내부고발 환경 조성, 시민사회의 비판적 활동 등도 정보공개를 활성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정보공시는 그 자체로 책임이면서, 투자자의 재산을 보호하고 소비자의 선택권을 보장할 수 있는 필수 요소다.
쟁점3. 영향력이 있는 곳에 책임이 있다?
세 번째 전략은 'ESG 개선 활동을 영향력 범위로 확장하는 것'이다. 투자자나 소비자의 ESG 실행 전략은 기본적으로 기업에 대한 영향력을 기반으로 한다. 영향력은 흩어진 개인보다는 집단이 낫고, 자금의 규모가 클수록 커진다. A기업이 B기업에 대한 지배력이 있는 경우, A기업에 대한 투자나 소비활동을 통해 B기업에게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A기업은 B기업에 영향력을 갖는 것은 물론이고, 공급사슬 내 다양한 주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즉 기업이든, 투자자든, 소비자든 영향력 범위 내에서 환경파괴, 인권침해, 지배구조 개선에 참여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자본과 노동이 국경을 넘어 교류가 자유로워지면서, 경제주체들의 영향력 범위는 확장되었고 책임의 범위도 확대되었다.
기업은 공급망에 의한 인권침해를 예방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물론, 침해 발생 시, 피해자가 효과적으로 구제받을 수 있도록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투자자는 투자 포트폴리오에 포함된 기업에서 인권침해 발생 시, 책임자 처벌 및 재발방지 대책 수립, 더 나아가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는 등 주주의 권한을 적극적으로 행사해야 한다. 개선을 기대하기 어려운 경우 기업은 해당 공급망과 계약을 단절할 수 있고, 투자자는 투자 철회, 소비자는 불매운동으로 대응할 수도 있다. 인권경영이 강조하고 있지만 기업들이 어렵게 느끼고 있는 '책임 있는 공급망 관리'는 세 번째 전략에 기반을 두고 있다. 영향력이 있는 곳에 책임이 있다.
쟁점4. 결국 사회공헌 아닌가?
네 번째 ESG 실행전략은 '지역사회 참여와 발전'이다. 일명 사회공헌이다. 국제표준화기구는 책임의 '핵심 이슈'으로 언급하고, 공유가치창출 및 사회적 가치와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인권경영에서는 권장 사항일 뿐, 그 자체로 책임을 이행했다고 인정하지 않는다. 어쨌든 하면 좋은 것이다. 교육․복지 사업이 대표적이고 지역사회의 취약한 인권상황을 개선하는 활동, 지역사회 고용 할당이나 인재육성 지원, 산학협력, 환경보호 활동 등 다양하다. 이왕이면 업 특성과 전문성을 살리고, 장기적으로 경제적 수익 창출과 연계하자는 의미로 '전략적 사회공헌'이란 용어도 한때 유행했다. 투자자는 해당 프로젝트에 직접 참여하거나 관련 금융상품에 가입할 수 있다. 사회공헌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는 기업에 투자할 수도 있다. 소비자는 부정적 정보보다는 긍정적인 정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주머니에서 돈을 꺼낸다.
사회공헌이 '워싱'의 수단으로 이용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사회적 책임․ ESG․공유가치창출․사회적 가치 할 것 없이 공통적으로 가장 빈번하게 실행전략으로 채택하거나 우선순위에 비해 지나치게 강조해 왔다. 그러다 보니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하지만 사회적 요구나 기대에 부응하는 방식임에는 틀림없다. 당연히 적극 권장해야 하고 그 성과만으로도 충분히 존경받을 자격이 있다.
쟁점5. 또 하나의 트렌드일 뿐이다?
공공정책, 기업경영, 투자, 소비 등 분야에서 유행을 이끌었던 이니셔티브들은 다양하지만 강조하는 방점이 다를 뿐 기본 전략 범위 내에 있다. 차별화를 이야기하지만, 전략의 문제일 뿐이다. 즉 핵심 전략으로 어떤 것을 채택하느냐로 구별될 뿐이다. 어떤 전략만이 옳다든가 반대로 특정 전략을 부정적으로 낙인찍을 필요는 없다. 본인이 중요시하는 전략이 아니면 가짜라거나 아류일 뿐이라고 깎아내릴 이유도 없다. 관통하는 핵심이슈가 무엇이든 실행전략을 종합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하나의 트렌드라기보다는 다시 기본으로 돌아간 느낌이랄까. ESG는 비재무적 이슈를 가장 포괄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실행전략에 있어 다각적인 접근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을 해하는 일에 연루되는 것을 회피하려는 노력(Avoiding harm)'은 가장 필수적이고 우선 적용해야 하는 전략이란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