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장 없이 일하는지 전상화 변호사는 직접 전화를 받았다. "판사 여러 명과 극한대결을 하시는데..." 전화 건 이유를 다 설명하기도 전에 전 변호사가 말을 끊었다.
높은 톤, 빠르고 단호한 경상도 말투. 전 변호사는 자신을 만나기 전 넘어야 하는 ‘장벽’을 안내하고 전화를 끊었다. 인터넷카페 링크가 담긴 문자메시지가 그의 말투처럼 빠르게 도착했다. 링크를 타고 카페에 들어갔다.
법원, 판사, 심지어 대법원장과 싸우는 변호사. 엉터리 재판을 한 판사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도 모자라, 헌법소원을 제기하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소까지 한 인물 전상화. 그의 캐릭터를 확실히 알려주는 듯한 제목, 실제 사례로 소개된 ‘법원도 조폭 집단인가’를 클릭했다.
뒤이어 나오는 '실제 사례'를 읽었다. 이게 과연 '조폭'에 '반역'까지 붙여가며 판사와 수년째 싸울 만한 일일까? 전 변호사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의 목소리 톤이 한 옥타브 더 올라갔다.
무더위가 절정이던 지난 7월 말, 그의 사무실로 향했다. 서울지하철 1호선 종로5가역 6번 출구로 나오자 바로 보이는 건 변호사 사무실이 아니라 노상에서 떡을 파는 할머니였다. 그 뒤로 신발 깔창, 고무줄, 편지봉투, 면봉 등을 파는 노인이 보였다.
길 건너편은 광장시장입구, 그 너머는 농약과 쪽파, 달래 씨앗과 모종 등을 파는 가게였다. 어딜 봐도 변호사 사무실은 없었다. 스마트폰 지도로 ‘전상화 변호사’를 검색했다. 내가 서 있는 곳, 6번 출구 앞이 정확히 찍혔다.
뒤돌아 낡은 건물을 살폈다. 지은 지 36년 된 흥일빌딩. 출입구 양옆으로 건물보다 오래 그 자리를 지킨 듯한 좌판이 보였다. 오른쪽 좌판에선 2000원 짜리 호박엿과 편강, 천년초 분말, 생 알로에가 땡볕에서 손님을 기다렸다. 왼쪽 좌판에는 때비누, 누룽지, 갱엿, 뻥튀기 봉지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알로에 파는 중년 여성이 부채질 하며 물었다. “변호사 사무실을 찾는다”고 하자 그는 부채로 뻥튀기 봉지를 가리켰다. 뻥튀기 봉지 뒤쪽, 파란색 바탕에 흰색으로 크게 적힌 ‘변호사 전상화’ 간판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고개를 들어 흥일빌딩 꼭대기 쪽을 바라봤다.
어떤 수식어도 없이 붉은색으로 5층 창문에 적힌 두 글자, 전상화 변호사 사무실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없어 5층까지 걸어 올라갔다. 땀이 줄줄 흘렀다. 전 변호사는 박카스 한 병을 따서 나에게 내밀었다.
사무실 소파에 앉자마자 전 변호사는 훅 들어왔다. 그의 높고 빠른 목소리가 30평 쯤 되는 사무실을 가득 채웠다.
전 변호사의 입 양쪽 끄트머리에 하얗게 침이 고이기 시작했다. 확신에 찬 그의 목소리가 높아질수록 입가의 침방울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침 닦을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그의 높아진 감정도 낮출 겸 내가 질문으로 말을 끊었다.
날 바라보는 전 변호사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그는 오른손으로 입가의 침을 천천히 닦았다. 나는 이마의 땀을 닦았다.
전상화 변호사는 이전과 달리 낮고 느리게 말했다.
첫 만남은 이렇게 끝났다. 다시 1층까지 걸어 내려왔다. 지하철 타고 강북구 미아동으로 향했다. 전상화 변호사가 스스로 ‘바위 깨는 계란’이 되길 다짐하면서 판사들과 극한대결을 시작하게 된 ‘실제 사례’, 그 주인공 A 씨를 만나야 했다.
A(67년생) 씨가 찾아오라고 알려준 곳은 식당 등 자영업 간판이 빽빽한 미아동의 한 건물 지하였다. 본격적인 저녁 장사를 할 시간인데 지하에선 음식 냄새가 안 났다. 해산물 요리를 파는 200평 쯤 되는 식당에 사장 A 씨가 혼자 앉아 있었다.
몰락이 익숙한지 A 씨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치킨, 국밥, 보쌈, 참치, 초밥, 복어 등 34년간 다양한 식당을 운영했다. 때로는 흥하고 종종 망했다. A 씨는 “그 흥망의 역사가 책 한 권 분량 정도 된다”고 말했다.
정말로 책을 써도 되는 문제의 사건은 2016년 11월에 벌어졌다. 그때 A 씨는 건물주로부터 식당을 비워달라는 내용증명을 받았다. 계약 기간이 아직 1년 더 남은 때였다. 그해 12월 건물주는 “임대료 밀렸으니 건물을 비워달라”는 명도소송을 제기했다.
이상한 일이다. A 씨와 건물주는 “임대료 3개월을 연체하면 임대인(건물주)은 계약을 해지 할 수 있다”고 계약했고, 당시 밀린 임대료가 3개월치가 안 되기 때문이다. A 씨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래도 임대인이 소송을 제기했으니 대응을 해야 했다. 지인 소개로 전상화 변호사를 만났다. 전 변호사도 확신에 차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A 씨는 이 말을 믿었다. 하지만 서울북부지방법원 임창현 단독 판사는 “2기 이상의 차임을 연체하여 임대차계약 해지의 요건은 갖추어졌다”면서 A 씨에게 건물을 비우라고 2017년 11월 15일 판결했다.
"2개월 연체했으니 건물을 비워야 한다"는 건 계약서에도 법에도 없는 내용이다. 임창현 판사가 엉터리 판결을 한 셈이다. A 씨는 어떻게 됐을까?
이 패배로 전상화 변호사는 성공보수 400만 원을 못 받았다. A 씨는 자신을 대리했던 전 변호사에 대해 “사람은 참 좋은데, 능력은 없다”고 평가했다. 왜 이렇게 생각할까.
A 씨를 만나고 얼마 뒤인 8월 중순께, 다시 전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다. 전 변호사는 ‘내 말이 맞지?’하는 얼굴로 날 바라봤다. 전 변호사는 A 씨 사건 판결 이후 펼쳐진 판사와의 극한대결, 어쩌면 사법부가 ‘악성 민원인’으로 여길 법한 풀 스토리를 풀어냈다. 그의 목소리는 다시 높고 빨라졌다.
전 변호사는 국가와 임창현 판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2017년 12월 제기했다. 그는 소장에 이렇게 썼다.
피고 임창현 판사는 아래 내용의 짧은 답변서를 2018년 1월 4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8단독에 냈다.
사건을 맡은 심창섭 판사는 원고 전상화에게 소송비용에 대한 담보로 900만 원을 공탁하라고 그해 6월 26일 결정했다. 이 결정은 전 변호사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전 변호사는 이 결정에 불복해 항고했다. 재판부 기피신청도 했다. 두 사건 모두 대법원까지 갔다. 하지만 전상화 변호사는 줄줄이 패했다. 국가배상소송에서도 전 변호사는 졌다.
그래도 담보제공명령 항고심 결정문에는 전 변호사의 핵심 문제의식이 담겼다. 바로 자영업자 A 씨 사건을 맡은 임창현 판사가 위법한 판결을 했다고, 항고심 재판부가 인정한 것이다. 그 내용은 이렇다.
판사 임청현의 잘못은 인정. 뒤이어 나오는 내용은 판사들에게 숱하게 면죄부를 준 바로 그 판례, “법관의 재판에 법령의 규정을 따르지 아니한 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국가배상 책임이 인정되려면 법관이 위법 또는 부당한 목적을 가지고 재판을 했다”는 게 입증돼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ᅠ2003. 7. 11.ᅠ선고ᅠ99다24218)
이 대법원 판례를 어떻게든 바꾸는 것. 전상화 변호사의 궁극적인 목표다. 이 판례가 바뀌지 않는 한 법관의 잘못에 책임을 묻는 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전 변호사의 목소리는 이 문제를 지적할 때 최고 높은 옥타브를 찍었다.
판사와의 대결에서 모두 진 전 변호사는 사건을 헌법소재판소로 끌고 갔다. 그는 판사에게만 국가배상 책임 요건을 다르게 적용하는 대법원 판례는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심판청구를 작년 1월 제기했다. 헌재는 “법관의 판결은 헌법소원심판 대상이 아니”라며 지난 7월 이 청구를 각하됐다.
전 변호사는 멈추지 않고 임창현 판사 등을 지난 7월 공수처에 고소했다. 공수처가 제대로 수사할지는 의문이다.
패배가 쉽게 보이는 싸움. 전상화 변호사는 왜 그토록 돈키호테처럼 돌진할까. 피곤하진 않을까? 그가 자세를 고치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의 목소리가 다시 조금씩 높아지기 시작했다.
전 변호사의 입가에 다시 하얀 침이 다시 고이기 시작했다.
입가에 고인 침은 이번에도 떨어지지 않았다. 전 변호사는 입가를 천천히 손으로 닦았다.
법관 상대로 숱하게 소송을 제기하고, 수없이 패한 전상화 변호사. 누군가의 눈에 그는 괜한 고집을 부리는 사람, 특히 사법부에겐 악성 민원인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승률로만 따진다면, 전 변호사는 A 씨의 말대로 무능한 변호사일 수도 있다.
속칭 '능력 좋은 변호사'는 때비누, 호박엿, 뻥튀기, 달래 씨앗 등을 팔거나 사는 사람이 많은 종로5가에 없다. 무엇보다 그런 변호사는 임대료 100여만 원 밀려 명도소송을 치러야 하는 임차인을 잘 대리하지 않는다.
인터뷰를 마치고 1층으로 내려오자 주변이 시끄러웠다. 광장시장 쪽 과일가게에선 누가 실수를 했는지, 손님과 주인이 거스름돈 문제로 서로 목청을 키우며 싸우고 있었다. 해질녘, 종로5가 사거리에서 흥일빌딩 쪽을 바라보자 군더더기 없는 두 글자 '법률'이 더 붉게 보였다.
이 기사는 <프레시안>과 <셜록>의 제휴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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