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거처하는 동안에 이병기, 박목월, 김영랑, 김남조, 박두진 등 당대 걸죽한 시인들과 교류했던 사랑방이었는가하면, 이곳에 발걸음을 한 시인들에게서 드러나는 정겨운 호흡과 체취, 숨결들이 녹아있는 찻집으로도, 또는 주막이기도 했다.
1950년 한국전쟁 이후로 시인은 전주에서 활동하게 되는데 이때가 흔히 일컬어지고 있는 '비사벌초사 시대'다.
전주 남노송동에 위치한 비사벌초사는 시인이 손수 심고 가꾼 다양한 화초와 나무들 때문에 마치 도심 속 식물원을 연상케한다.
현재 이곳에는 시인의 유족이 살고 있지 않지만, 곳곳에 어루만져온 시인의 말벗이었던 정원은 잘 보존돼 있다. '비사벌 초사 일기'를 썼을 정도로 이 집을 사랑했던 그다. 시를 향한 열정으로 이 집을 빈 공간을 꽉 채운 그는 예순여덟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석정의 존재감이 강렬하게 남아있는 '비사벌초사'에 대한 유·무형이 재개발로 무너져 내릴 수 없다는 강한 의지가 범시민단체로 사람들로 한데 뭉쳐지고 있는 구심점이다.
◆신석정(辛錫正, 1907~1974)
본명 석정(錫 正), 호 및 필명 석정(夕汀, 石汀, 釋靜), 석지영(石志永), 호성(胡星), 소적(蘇笛), 서촌(曙村). 1907년 7월 7일 전북 부안 태생. 보통학교 졸업 후 중앙불교전문강원에서 불전을 연구하기도 했다. 한국문학상, 문화포상, 한국예술문학상을 수상. 1974년 7월 6일 사망. 1931년 김영랑·박용철·정지용·이하윤 등과 함께 『시문학』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제3호에 시 「선물」을 발표함으로써 등단.
1939년 처녀 시집인 『촛불』에서는 하늘, 어머니, 먼 나라로 표상되는 동경의 나라를 향한 희구를 어린이의 천진스러운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 시집을 통해 그는 전원시인, 목가시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시집에는 대표작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아직은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등이 수록되어 있다. 1947년 두번째 시집인 『슬픈 목가』에서는 어머니라는 상징어에 기댄 유아적, 퇴영적 자아의 모습은 줄어들고 성숙한 현실의 눈으로 돌아온다. 이상향에 대한 천진난만한 시인의 희구는 상실감으로 바뀌고, 내적 체험의 결여로 인한 공허감이 나타난다. 그후 『빙하』(1956), 『산의 서곡』(1967)에 이르면서 삶의 체험을 구체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한다.
역사 의식이 예각화되면서 주제 의식이 문학적 심미성에 선행하게 된다. 마지막 시집인 『대바람 소리』(1970)에서 다시 초기 서정시의 세계로 복귀하고 있다. 신석정은 노장의 철학과 도연명의 「귀거래사」, 「도화원기」의 영향을 받았고, 미국의 삼림시인인 소로우(H. D. Thoreau)를 좋아했으며, 한용운에게서 문학 수업을 받기도 했다.
따라서 반속적(反俗的)이며 자연성을 고조한 동양적 낭만주의에 입각한 시를 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기림은 그를 “현대문명의 잡답(雜踏)을 멀리 피한 곳에 한 개의 유토피아를 흠모하는 목가적 시인”이라 평가. 신석정의 시는 암울한 시대상황 속에서 체험의 가능성이 폐쇄된 시인들에게서 나타나는 문학적 단면을 보여준다. 비참한 현실에 대한 강한 거부로써 초월적이고 본원적인 실재에 대한 강한 희구가 나타나고 있는 것. 이러한 희구는 전원적, 자연친화적 이상향에 대한 시적 열망으로 그려진다. <출처 : 한국현대문학대사전, 2004.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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