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는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가 연달아 치러진다. 특히 약 6개월 뒤로 다가온 대선을 앞두고 각 정당은 한창 대통령 후보를 정하기 위한 당내 경선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이 모든 과정을 18세 미만의 청소년들은 구경밖에 할 수 없다. 청소년들을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정당들이 있음에도, 정당 안의 청소년들 역시 대체로 당내 경선에 참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19금에서 18금이 된 정치
2019년 12월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서 선거권 제한 연령 기준이 종래 만 19세에서 만 18세가 되었다. 이번 선거권 연령 하향은 투표할 수 있게 된 선거 시점의 '만 18세'들에게만 영향을 미친 게 아니었다. 사회적으로 '청소년', '10대', '미성년자'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들 중 아주 일부라도 최초로 참정권을 보장받게 됨으로써 청소년이 제도권 정치에서 가시화되는 첫 계기가 되기도 했던 것이다. 2020년 이후 원내정당들이 청소년 관련 기구들을 만든 모습이 대표적이다.
그럼에도 제도적 측면에서 아직 선거권 확대의 여파는 제한적이다.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법들이 여전히 꿋꿋하게 남아 있기에 더욱 그렇다. 예컨대 만 18세 미만 청소년의 선거운동을 금지하는 '공직선거법' 제60조가 있다. 2021년 재보선 당시에도 2004년생 청소년이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의 유세 때 지지 발언을 했다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된 상태다. 투표를 할 수 없다고 해서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말조차 할 수 없게 하는 선거법이 얼마나 비상식적인지 드러낸 사건이었다.
선거권이 없다는 이유로, 18세 미만이라는 이유로 참정권을 제한하는 또 다른 법이 '정당법' 제22조 "국회의원 선거권이 있는 자는 (중략) 정당의 발기인 및 당원이 될 수 있다"이다. 이 조항 때문에 선거권이 없는 18세 미만의 청소년은 정당에 가입하여 당원이 될 수 없다. 이 때문에 18세 미만의 청소년들은 본 선거에 참여할 수 없음은 물론, 후보를 선출하는 경선을 비롯해 당내 선거에도 참여가 거의 불가능하다. 당원 아닌 시민들의 참여를 허용하는 형태로 경선을 할 때도 18세 미만 청소년은 선거인단이나 여론조사 대상이 될 수 없다.
이와 같이 정당 가입 및 활동이 가능한 연령을 법률로 제한하고 있는 경우는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 중 유례를 찾기 힘들다. 대부분은 각 정당이 자율적으로 당원의 연령 조건 등을 정하도록 한다. 정당 활동 연령 제한을 선거권 제한 연령과 맞춰놓은 한국의 법률은 청소년은 정치를 해선 안 된다는 심각한 편견 그리고 정당의 활동을 국가가 규제해온 역사가 결합한 결과일까? 18세 선거권 도입이 '19금'이던 정치를 '18금'으로 바꾼 일 정도가 아니라 청소년 참정권 확대의 첫 걸음이 되기 위해서는 이런 악법들을 개정하는 것이 필수 과제다.
'예비'당원이라는 난센스
지금도 청소년을 받아들이는 정당들이 있기는 있다. 원내정당 중에는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이 청소년 가입이 가능하다. 그런데 두 곳 모두 청소년을 '예비당원'이라는 이름으로 받고 있다. 국민의힘 역시 2020년 청소년 등을 대상으로 한 예비당원제 도입을 언급한 적이 있으나, 아직 구체적으로 추진된 것은 없어 보인다. 청소년 예비당원은, 정당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당원으로서의 권리를 온전히 보장받지는 못하는 경우가 많다.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당규에서 청소년 예비당원은 정당 행사에 참여할 수 있지만 아무런 권리나 의무가 부여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 '예비당원'이라는 제도는 그 이름부터 문제가 있다. 그 단어만 뜯어보면, 정식 당원이 되기 위해 미리 준비 중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사실 꼭 청소년이 아니더라도 당원이 되기 위해 준비 중이거나 당원이 될 예정인 사람들은 모두 '예비당원'인 셈이다. 또한 18세 미만 청소년으로서 그 정당에 가입해서 활동할 마음이 충분함에도 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당원이 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당원이 되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칭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이들은 당원이 되기 위해 무언가 준비하고 있거나 절차를 밟고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저 청소년이라 하니 별다른 고민 없이 '예비'라는 단어와 연결시켜, 미래에 나이가 든 후에야 정식 당원이 될 존재이고 당원이 되기를 준비 중인 존재라고 이름 지은 결과가 '예비당원'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청소년을 '예비시민', '미래의 시민'으로 보는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시선이 반영된 것이다. 청소년 참정권을 보장해야 한단 문제의식에 공감하고 있다면, 청소년 당원들을 '함께하고 싶지만 '정당법' 때문에 불가피하게 당원 자격을 가질 수 없는 동료 당원'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정당이었다면 이런 이름을 짓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청소년 당원'이라고 이름해도 됐을 것이고, 차라리 과거 민주노동당의 '당우' 같은 이름이 나았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정당이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청소년 당원 가입을 허용할 수 있다. '정당법' 제22조는 '국회의원 선거권이 있는 자'로 당원의 조건을 명시하고 있긴 하지만, 선거권이 없는 자가 당원으로 가입하여 활동한다고 해서 그 당원을 처벌하거나 정당에 불이익을 주는 조항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혹자는 '정당법' 제53조("제22조(발기인 및 당원의 자격) 제1항 단서의 규정을 위반하여 정당의 발기인이나 당원이 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를 들어 당원으로 가입한 청소년이 처벌받을 수 있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조항의 '제1항 단서의 규정'이란 공무원이나 교원을 가리키는 내용으로, 선거권이 제한된 18세 미만 청소년의 경우는 해당하지 않는다. 즉, 청소년 당원 가입을 받는다고 하여 정당이 불이익을 받거나 특히 정당에 가입한 청소년을 처벌하는 법률은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건 오직 청소년 당원이 참여한 후보 경선 등의 결과를 놓고 누군가가 무효 소송을 제기하거나 선거관리위원회가 제동을 걸 가능성 정도다. 사실 청소년 참정권을 위해 진지하게 나설 생각이 있는 정당이 있다면, 이러한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청소년 당원이 참여한 당내 경선을 치러줬으면 하는 게 나의 희망사항이긴 하다. 만일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이를 통해 청소년 정당 활동을 금지하는 문제가 한국 사회의 중요한 쟁점으로 부상하게 될 것이고 이 법이 정당한지 많은 토론과 법적 판단이 이루어지는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비당원' 같은 이상한 이름으로 청소년 정당 활동에 대한 생색을 내기보다는 이런 위험을 무릅쓰고 전면에 나서는 것이 청소년 참정권을 지지하는 훨씬 진정성 있는 자세일 것이다.
청소년 참정권을 위한 필수 과제
물론 여러 정당들이 공식적으로 청소년 당원을 인정하고 당내 선거와 경선 참여권을 포함한 당권을 보장하게 하려면 '정당법'을 개정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국가인권위원회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청소년 정당 활동 연령 제한 기준을 선거권 제한 연령 기준, 18세보다 더 낮추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진작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도 2017년 대선 당시 청소년 정당 가입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을 공약에 포함시킨 바 있다. 유엔아동권리협약과 헌법에서 밝히고 있는 결사의 자유, 참여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정당 활동에 대한 연령 제한은 사라져야 마땅하다.
이미 국회에는 강민정 의원이 대표 발의한 '정당법' 개정안이 올라가있다. 현재와 같은 선거권 제한과 연동된 정당 가입 연령 제한을 없애고 당헌·당규에 따라 발기인 및 당원으로 가입할 수 있도록 하며, 교육청·학교가 청소년에게 정당 활동을 이유로 불이익을 주거나 차별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하고, 정당과 선거관리위원회가 청소년 정당 활동을 지원하게 한 내용이다. 청소년 참정권 보장에 원칙적으로 동의한다고 밝힌 정당들이 국회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하루빨리 개정안을 통과시켜야 할 것이다.
본 선거에서 투표를 할 수 없더라도, 아니 본 선거에서 투표를 할 수 없기에 더더욱 자신이 뜻을 같이하는 정당 안에서의 후보 선출 과정이나 정책 형성 과정에라도 참여할 권리는 의미가 있다. 당내에서의 선거나 토론 과정에서 후보들에게 청소년들의 삶의 문제를 전하고 정당의 공약과 정책에 의견을 반영할 수 있게 된다면, 선거권 연령을 확대하는 것 이상으로 청소년의 참정권을 보장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부디 다음 선거 때는, 청소년들이 '예비당원', '예비시민'의 자리를 넘어 정당에 참여하여 자신들의 목소리를, 요구를 정치에 반영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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