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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호의 우리말 바로 알기] ‘폐하’에서 ‘족하(조카)’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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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호의 우리말 바로 알기] ‘폐하’에서 ‘족하(조카)’까지

예전에는 사극을 굉장히 좋아했지만 지금은 거의 보지 않는다. 기껏해야 ‘나는 자연인이다’나 ‘걸어서 세계 속으로’와 같은 다큐멘터리를 즐겨 본다. 과거에 좋아했던 사극을 보지 않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리얼리티가 너무 결여되어 있고, 지나치게 흥미위주로 편성하다 보니 끝나야 할 때 끝나지 않고 너무 오래 우려먹는 것에 식상해서 그렇다. 예를 들면 ‘선덕여왕’에 나오는 미실과 김유신과의 애매한 관계는 <화랑세기>라는 책에 나오는 두 줄을 가지고 각색한 것이다. 그러므로 작가의 상상력이 엄청나게 가미된 것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흥미를 유발하려고 ‘지귀설화’같은 것에서 우려내고, 여기저기서 차용한 흔적이 너무 많아서 보다가 말았다. 종이가 발명되기 한참 전의 이야기인데, 도서관에서 종이로 만든 책을 함께 보는 것도 지나치게 리얼리티에서 벗어났다. 하나만 더 예를 들어 보면 ‘주몽’이라는 작품 중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다. 주몽이 열여덟 살에 서른두 살 먹은 과부 소서노를 만나서 사랑(?)하는 얘기다. 주몽보다 소서노의 나이가 열네 살이나 많은데, 화면을 보면 주몽이 훨씬 성숙해 있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사극을 보지 않기로 했다.

오늘은 서론이 상당히 길어졌다. 사극에 등장하는 용어 중에서 우리가 무슨 뜻인지 잘 모르는 것을 살펴보려고 한다. 중국 영화에서 제일 많이 듣는 말이 폐하(陛下)일 것이다. 원래 폐하라는 단어는 “계단 아래 있는 사람(시종)”을 뜻했다. 그러던 것이 어느 순간부터 황제를 칭하는 말로 바뀌게 된 것이다. 옛날에는 신분질서가 엄격하여 신하가 황제에게 직접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섬돌 아래에 있는 사람(폐하)’을 통해서만 의사를 전달할 수가 있었다. 용상 밑 계단에 시종이 서 있고, 그 밑에 신하들이 도열해 있다가 신하가 일단 “폐하”하고 시종을 불러서 의견을 말하면 다시 시종이 황제에게 전달했던 것이다.(장진한, <신문 속 언어지식>) 그러던 것이 어느 사이에 시종을 불러서 의사를 전달해야 하는 사람을 “폐하”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바로 진시황이 자신에게만 그런 호칭을 쓰도록 한 것이 지금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러므로 원래는 ‘시종’이라는 말에서 ‘황제’를 의미하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 이렇게 폐하는 제후들이 두루 쓸 수 있었는데, 진시황이 자신만을 이르게 하도록 명령을 내린 이후에 제후들은 할 수 없이 ‘전하(殿下)’라는 호칭을 쓰게 되었다. 전하는 “궁전 아래에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의 사극에서 왕을 전하라고 칭하는 것은 스스로 중국의 속국임을 나타낸 것임을 알 수 있다. 고종황제에 와서야 ‘폐하’라고 했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고려 시대에는 중국에서 우리나라를 칭할 때 “귀국의 황제”라고 칭한 것을 볼 때, 고려는 제후국이 아니라 엄연한 황제국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고려시대의 극에서는 “폐하”라고 불러야 한다.

각하(閣下)은 특정한 고급 관료에 대한 경칭이다. 그러므로 대통령에게 각하라고 한 것은 스스로를 낮추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도 지나치게 높은 표현이라고 해서 요즘은 대통령님이라고 하는데, 굳이 ‘대통령’이라는 단어 뒤에는 ‘님’을 붙일 필요가 없다. 대통령이라는 단어 속에 이미 높임의 표현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학교에 흔히 “총장님 말씀이 계시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은 상당히 틀린 문장이다. “총장께서 말씀하시겠습니다.”라고 하면 된다. 합하(閤下)라는 것도 있다. 정일품의 벼슬아치를 높여서 부르는 말인데 흥선대원군에게 사용하던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합하라는 호칭을 쓴 인물은 흥선대원군밖에 없다. 귀하(貴下)는 편지 글에서 상대편을 높여 이름 다음에 쓰기도 하고, 일반적으로 상대를 높여서 부르는 말로 사용하기도 한다. 끝으로 족하(足下)는 같은 또래에서 상대편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흔히 편지를 받아보는 사람의 이름 아래 쓰기도 한다. 지금은 ‘조카’라는 말로 변하여 ‘형제자매의 자식’을 이르는 말인데, 주로 ‘친조카’를 이른다.

언어는 시대에 따라 변하게 마련이지만 사극은 그 시대에 맞는 어휘를 찾아 써야 한다. 과거의 족하(足下)와 지금의 조카는 어원은 같지만 용례는 다르다. 앞으로 몇 백 년 후 조카는 또 다른 의미로 바뀔 수도 있다. 언어는 생장 소멸하는 생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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