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도네시아 미국대사 겸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맡고 있는 성김 대사의 8월 23일 자 <한겨레> 기고문을 잘 읽었다. 그는 '비 온 뒤 땅이 굳는다'는 한국 속담을 인용해, 북미관계에 여러 가지 난관이 이어져 왔지만, '고요와 평화'를 모색할 수 있는 기회는 있다고 강조했다.
나 역시 그러기를 바라지만, 성김 대사의 글에 담긴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 방향으론 난관을 해소하는 데에 역부족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지금까지 미국의 대북정책이 실패한 원인에 대한 성찰부터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는 우선 "미국은 북한을 적대시하려는 의도가 없다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기실 이 말은 미국의 지난 4개 행정부들이 줄곧 했던 말이다. 심지어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했던 조지 W. 부시 행정부조차도 이렇게 표현했었다. 한미연합훈련을 두고 "연례적이고 방어적"이라는 말했던 것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왜 바이든 행정부조차도 지난 4개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평가할까? 더욱 중요하게는 바이든 행정부가 지난 행정부들과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극히 회의적이다.
이와 관련해 나는 성김 대사를 비롯한 미국 외교관에게 그들의 선배인 도널드 그레그 전 대사의 회고를 들려주고 싶다. 그는 1990년대 초반 주한미국 대사로 근무하면서 한국과의 긴밀한 협의를 거쳐 한미연합훈련인 '팀 스피릿' 중단 결정을 이끌어냈다. 1992년 1월 노태우 대통령과 조지 H.W 부시 대통령이 이 훈련의 중단을 발표한 것이다.
이를 사전에 통보받은 북한은 남북기본합의서 및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합의와 국제원자력기구(IAEA) 안전조치협정 가입으로 화답했었다. 그러나 그해 10월 한미 국방장관이 팀 스피릿 재개를 발표하고 이듬해 실제로 재개하면서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로 보복했다.
이를 지켜본 그레그는 팀 스피릿 훈련의 재개야말로 한반도 정책의 "가장 큰 실수"라고 탄식했다. 이 탄식 속에는 '한미동맹이 약속을 지켰다면'이라는 강한 아쉬움이 담겨 있었다.
미국 대통령이 연합훈련 중단을 약속한 것은 이로부터 20여 년 후에 또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가 2018년 싱가포르와 2019년 판문점에서 거듭 약속한 것이다. 하지만 이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으려면 일단 비가 멈춰야 한다. 그런데 연합훈련을 계속하는 것은 비가 계속 내리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미국 대통령이 약속한 바였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바이든 행정부는 비를 내리게 하면서 비가 멈췄으니 대화를 하자고 한다.
나 역시 북한이 대화에 나오기를 바라지만, 이는 '우리가 원하는 북한'이다. '있는 그대로의 북한'은 한미연합훈련을 대표적인 적대시 정책이라고 간주하면서 대화를 거부하고 핵 능력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다. 최근 영변 핵시설 재가동 징후가 포착된 것도 이러한 우려를 더해주고 있다.
성김 대사는 또 유엔 안보리 결의, 즉 대북 제재 이행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북한 주민의 인권 옹호 활동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나는 이게 어울리는 짝이냐고 묻고 싶다.
강력한 경제제재는 북핵 문제 해결에는 기여하지 못하면서 북한 주민들의 고초는 가중시키고 있다. 하여 미국이 진정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 주민들의 인권 향상에 관심을 갖고 있다면 제재에 대한 생각부터 달리 해야 한다. 제재를 풀면서 비핵화와 인권 향상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북대화는 2018년 12월 이후, 북미대화는 2019년 10월 이후 중단되었다. 남북·북미정상회담마저도 황망한 결과가 나왔다고 판다한 북한은 '북한식 전략적 인내'로 돌아섰다.
이런 북한을 상대로 대화를 재개하려면 하나하나 '공감'을 쌓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내년 3월로 예정된 한미연합훈련 유예를 조속히 결정해 북한에 통보하는 게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 이 글은 <한겨레> 8월 30일 자에 게재한 칼럼을 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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