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위험은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이 정말로 뭔가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행동하는 것"
최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의결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안'(☞ 바로 가기 : 국회 환노위,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법안' 제정)을 보면, 그레타 툰베리가 마치 우리를 보고 말하는 듯하다. 2030년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역대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했던 2018년 기준으로 35% 이상 감축하겠다고 명시했지만,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의 '지구온난화 1.5℃' 특별보고서에서 탄소중립을 위해 2030년까지 2010년 대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45% 이상 감축해야 한다는 요구와는 거리가 멀다. 영국 78%, 중국 최소 60%, 미국 최소 50%, 일본 최소 40% 이상 등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한참 못 미친다.(☞ 관련 기사 : <경향신문> 4월 22일 자 '다들 온실가스 감축목표 내놨는데…한국은 또 "연내 상향"만')
이 법안이 뭔가 하는 척하면서 근본적인 변화를 저지하는 법안이라는 것은 끝내 '성장'을 내려놓지 못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기후위기 대응조차 경제성장의 기회로 삼겠다는 의지가 가득하고, 결국 기존에 하던 대로 시장과 기업에 맡기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정부가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라면서 실제로는 탄소중립에 실패하는 시나리오를 3개 중 2개나 내놓으면서까지, 산업부문 탄소배출 시나리오는 건드리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관련 기사 : <KBS 뉴스> 8월 10일 자 '[취재후]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바라보는 '내부 시선'…"들러리 선 느낌이네요"')
근본적인 체제의 변화 없이는 이미 가속도가 붙은 기후변화를 막기 어렵다. 이윤을 위해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소비하기를 부추기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탄소배출이 증가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기존 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한 시장중심, 기술중심적 대응 역시 기후위기를 막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만든 탄소거래시장이 돈벌이 수단으로 역할을 하는 동안, 고소득 국가들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계속 늘어난 것이 하나의 예다.
체제 전환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한국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갈 길이 멀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나라들이 '오십보 백보'라고 하면 곤란하다. 적극적인 감축 목표를 세우고 부분적으로나마 체제 전환의 실마리를 찾아가고 있다. 예를 들어, 에너지 민영화 기조를 유지하는 한국과 반대로, 유럽에서는 민영화되었던 에너지 부문을 2010년대 들어 재공영화 하고 있다.(☞ 관련 기사 : <한겨레> 2015년 10월 27일 자 '"유럽, 에너지부문 다시 공영화로 회귀"') 에너지의 공공적 소유는 에너지 부문의 탈탄소화를 촉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에너지를 탈상품화하고, 민주적 통제의 기회를 높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무엇을 하고 있나. 2021년에 여전히 석탄 발전소를 건설하면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기후위기 대응에 책임을 다하겠다고 말만 그럴듯하게 하고 있다.(☞ 관련 기사 : <연합뉴스> 8월 15일 자 '[전문] 문대통령, 제76주년 광복절 경축사') 과감한 감축 목표를 제시하고 사회경제 구조를 바꾸기 위해 뭐라도 해야 할 때에 너무 한가롭다. 이대로는 전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한국이 기후 악당으로서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기후위기 대응은 우리의 '자구책'이기도 하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폭염, 산불, 가뭄, 홍수는 남의 일이 아니다. 한국에서도 언제든지 대형 재해가 일어날 수 있고, 이미 2017년 강릉 산불, 2018년의 폭염, 2019년의 고성, 속초 산불 등이 기후위기 추세 속에서 발생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국제 연대에 동참하지 않으면 자연재해는 더 잦고 강해질 것이다(그런 점에서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재'다).
우리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경제 또한 큰 타격을 받을 것이 틀림없다.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의 특성상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국제 규범을 맞추지 못하면 교역 장벽 등 엄청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바로 보기 : 한국무역협회 <무역뉴스> 4월 26일 자 '모두의 숙제 된 '기후변화' 대응…韓 수출기업도 어깨 무겁다') 한국의 기후위기 대응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먹고 사는' 문제이기도 하다.
기후위기 대응은 방법이나 규모 때문에도 주로 집단, 제도, 정책에 의존해야 하고, 따라서 국가와 정부의 역할이 어느 영역보다 더 중요하다. 미래의 문제, 진행형의 과제, 지식에 의존하는 대응에 누가 일차 책임을 질 수 있을까. 국가와 정부가 먼저 나서서 향도 노릇을 해야 한다.
국가와 정부를 움직일 다른 대안이 없으므로 다시 정치의 역할이 중요하다. 먼저, 정부는 '탄소 중립 시나리오'를 다시 짜고 우리 사회의 새로운 규범을 만드는 일에 나서야 한다. 기후위기에 제대로 대응할 의지와 능력을 갖추어야 '정당한 국가'라는 인식 그 자체가 지금 필요한 정치적 실천일 터, 거듭 말하고 촉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음은 선거 정치. 다음 대통령 선거도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으나 지금 이대로면 희망이 없다.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모든 사람이 기후위기를 알고 대응에 관해 말하게 하는 것, 그들이 아니라 우리의 정치적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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