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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성폭력, 대법원 "손해배상청구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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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성폭력, 대법원 "손해배상청구 할 수 있다"

대법 "성범죄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은 후유증으로 장애 진단 받은 때"

성폭력 범죄 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권 소멸시효는 '마지막 범죄가 발생한 날'이 아닌 '성폭력 후유증으로 장애 진단을 받은 날'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성폭력 민사소송에서 대법원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 시점을 소멸시효의 기산점으로 인정한 건 처음이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19일 '체육계 미투 1호'로 알려진 전 테니스 선수 김은희 씨가 테니스코치 A 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13세 미만 미성년자를 성폭행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A 씨는 지난 2018년 징역 10년이 확정돼 현재 복역 중이다.

초등학교 시절 A 씨에 의해 지속적인 성폭력 피해를 겪은 김 씨는 14년 후인 2016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진단을 받고 A 씨를 상대로 형사 고소와 함께 1억 원의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재판 쟁점은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됐는지 여부였다. 민법은 불법행위의 피해자가 손해를 안 날로부터 3년, 불법행위가 발생한 날로부터 10년이 지나면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한다고 규정한다. 김 씨 측은 PTSD 진단을 받은 날을 성폭행으로 인한 피해가 드러난 때로 봐야 한다고 입장이었다. A 씨는 마지막 성폭행 범행을 한 2002년 8월부터 10년이 지나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됐다고 주장했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김 씨의 손을 들어 "김 씨가 A 씨를 우연히 마주친 뒤 PTSD 진단을 받은 2016년 6월에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가 현실화됐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이날 "김 씨가 전문가로부터 PTSD 발현 진단을 받은 때부터 소멸시효가 진행된다고 봐야 한다"며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손해가 현실화된 시점을 일률적으로 성범죄 당시나 일부 증상의 발생일로 보게 되면 손해 발생 여부가 불확실하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못하거나 장래 손해가 발생한 시점에는 소멸시효가 완성되는 부당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피해자가 피해 당시 아동이었거나 가해자가 친족·선생님·코치 등 피해자를 보호하는 관계에 있는 경우 손해 발생 시점을 일률적으로 단정할 수 없다"면서 "장기소멸시효(10년)의 기산점이 되는 '불법행위를 한 날'은 객관적·구체적으로 손해가 발생한 때, 즉 손해의 발생이 현실적인 것으로 되었다고 할 수 있을 때를 의미한다"고 밝혔다.

김 씨를 지원해 온 한국여성의전화는 대법원 판결 후 입장문을 통해 "성폭력 피해자의 민사소송 손해배상과 관련하여 소멸시효 판단 기준을 현실화한 대법원의 의미 있는 판결이 나왔다"며 환영의 뜻을 전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이제까지 성폭력 사건의 손해배상청구와 관련하여 법원은 '불법행위를 한 날'을 범행이 발생한 날로 좁게 해석해 왔다"며 "대부분 아는 관계에서 발생하고 피해를 바로 드러내기 어려운 성폭력의 특성상 성폭력 피해자가 형사소송을 통해 어렵게 가해자를 처벌하더라도 민사적으로는 소멸시효라는 장벽에 막혀 피해보상을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었다"고 했다.

특히 "피해자가 미성년이거나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경우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했다"며 "실제로 본회에는 아동·청소년기에 성폭력을 당했으나 성년이 된 후에도 짧게는 10여 년부터 길게는 40여 년이 지난 시점에도 분노와 고통을 호소하며 법적 해결 방법을 문의하는 상담이 최근에도 끊이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판결을 통해 성폭력 피해자가 민사소송으로 더욱 실질적이고 적극적으로 손해배상청구 권리를 행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김 씨는 초등학생 시절이던 2001년 4월부터 2002년 10월까지, 강원도 한 초등학교에서 당시 코치였던 A 씨로부터 네 차례 성폭력 피해를 겪다. 성인이 된 후인 2012년 미성년자 성폭행의 공소시효가 폐지되자 김 씨는 A 씨를 고소하려 했으나 법률전문가 등으로부터 증거확보가 어렵다는 말을 듣고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그러던 중 김 씨는 2016년 5월 한 주니어 테니스 대회에서 A 씨와 우연히 마주친 뒤 충격으로 실신해 3일간 기억을 잃었다. 수면장애, 위장장애 등 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른 김 씨는 그해 6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진단을 받았다.

A 씨가 계속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김 씨는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그해 7월 A 씨를 형사 고소했다. 증거를 모으기 위해 초등학교 시절 테니스부 동료들의 진술을 확보하던 중 김 씨 외에도 미성년 시절 A 씨에게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들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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