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 작가의 <있지만 없는 아이들>(창비 펴냄)은 눈 앞에 '있지만' 서류에 '없는' '투명인간'의 삶을 사는 미등록 이주아동 이야기를 우리에게 소상히 들려준다. 국내에 있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20~30만 명, 미등록 이주아동은 2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고 한다. 체류자격을 갖지 못한 부모와 사는 아이들은 유엔아동권리협약에 의거해 고등학교까지 다닐 수 있는 학습권이 주어지지만, 만 18세가 되면 상황에 따라 언제든 추방될 수 있다. 이들에게 붙여진 '불법체류자'라는 단어는 사회적 차별을 언어적으로 선명하게 가시화한다. 미등록 이주노동자 가족에게 국가는 "닿지 않는 행성"(23면)이며, 그들은 그 행성을 맴도는 '유령 같은' 존재다. 25년째 미등록 상태로 아들과 한국에서 살고 있는 몽골 여성 인화의 말에 따르면 이것은 "사는 것도 아니고 안 사는 것도 아니"(196면)게 된 삶이다.
참담한 현실을 묵묵히 기록하는 가운데 이 책이 주는 깊은 감동은 차별과 소외를 겪은 당사자의 체험이 동료 시민들의 힘과 합쳐져 어떻게 사회 속에서 발화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데 있다. 가르치는 학생이 어느 날 이유 없이 학교에 나오지 않자 그를 찾아 나서는 선생님이 있고, 친구가 왜 학교를 떠나야 하는지 의문을 품으며 마음을 합하는 친구들의 움직임이 있을 때 차별과 고통을 벗어나려는 아이들의 목소리 역시 널리 퍼질 수 있다. 부모의 체류자격이 상실된 상태에서 적발되었으나 1650명의 탄원서 제출로 체류자격을 얻은 페버와, 친구들의 지지와 피켓 시위, 국민청원의 과정을 통해 3년 만에 난민 인정을 받은 민혁의 이야기는 불합리한 제도를 바꾸어나가는 연대와 노력의 과정을 여실히 보여준다.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은 국가 차원에서 미등록 장기체류 이주아동에 대한 자격 부여 제도가 마련되기를 바라는 절실한 마음을 호소한다.
이주아동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 고통의 상황은 다급한데 그것을 바꿀 법과 제도는 하염없이 느릿느릿 움직인다. 올해 법무부는 15년 이상 한국에 체류한 미등록 이주아동들이 체류자격을 심사 받을 수 있는 시행 방안을 발표했지만 정작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아동은 극소수이다. 아이들만 일시적으로 체류하게 한다고 해서 문제의 근본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생계를 꾸리고 세금을 내고 소비를 하며 살아가는 나라에서 부모 역시 아이들과 함께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을 보장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차별을 겪는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운동성을 지니고 제도를 바꾸어나갈 수 있도록 연대하는 실천적 행동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이들의 목소리를 우리의 삶 속에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하고 보편적인 과제로 사유하는 일이다. 차별받는 소수자의 삶에는 한 사회가 당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가 잠복해 있다. 여러 사람들이 지적한 대로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착취는 내국인이 기피하는 일자리에 이주 인력을 도입해 노동력을 수급하는 자본주의체제의 수탈적 구조에서 기인한다. "이주노동자가 늘어나는 건 한국 경제가 그만큼 그들을 필요로 하기 때문"(150~51면) 아니냐는 물음에 제대로 응답하기 위해서라도 개별자들의 소외된 상황이 사회 공동의 문제로서 사유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최근 공론장에서 꾸준히 논의되며 입법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는 차별금지법이나 중대재해처벌법의 시행령 수정 문제는 소수자를 위한 예외적 법령이 아니라 더이상 미룰 수 없는 공동의 현안이다. 차별금지법만 하더라도 2007년 법무부 발의를 시작으로 긴 시간 계류 및 폐기를 반복해오다가 최근 국회 입법청원을 통해 10만 명 시민의 동의를 얻었다. 산업재해 사망사고의 30퍼센트가 5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을 외면하는 중대재해처벌법도 수정이 시급하다.
그동안 촛불시민이 열어놓은 변혁의 상상력은 차별 받고 소외된 타자의 목소리를 하나하나 드러내는 데서 나아가 이 목소리가 우리의 보편적 삶의 욕구와 긴밀하게 연결됨을 확인하는 자리에 이르렀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쏟아져나오기 시작하는 후보들의 여러 공약들을 보며 우리가 새삼 환기해야 할 것은 행복하고 안전한 삶을 제대로 꾸릴 수 있는 나라의 모습을 생산적으로 토론해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눈 앞에 펼쳐진 정치적 상황들이 쉽지만은 않다. 각종 세대론, 여가부 폐지론, 성별 갈등이라는 프레임으로 선정적 정치 이슈를 재생산하는 현실의 반동적 정치 흐름은 이러한 실질적 개혁 과제들에 의도적으로 눈감는다. '정의로움'을 빌미 삼아 손쉬운 정체성 정치의 프레임에 안주하는 구태의연한 정치 문법 역시 도움이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냉소와 불신을 넘어서 우리가 살아갈 세계를 제대로 만들겠다는 주인 의식을 지니고 꼼꼼하게 나라 만들기의 공약을 점검하고 헤아려갈 때 더 나은 제도와 세상을 만드는 길 역시 열릴 수 있다.
직장에서 안전하게 일하며 노동한 만큼 대가를 받고, 아프면 병원에 가고 지치면 쉴 수 있으며,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사는 삶은 특정한 사람들만이 아닌, 우리 모두가 바라고 원하는 삶이기도 하다.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원하는 대로 친구를 사귀고 학교를 다니고, 내가 나임을 인정받으며 미래에 대한 꿈을 꿀 수 있는 나라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다. 아이들이 잘 자랄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것은 우리가 더이상 느긋하게 생각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이다.
*이 글은 <창작과비평> 2021년 가을호 '책머리에'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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