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가해자는 끈질기다. 프로에 있든, 아마추어 학생이든, 어떤 운동부 학교폭력(이하 학폭) 가해자들은 자기를 지키려 사실 왜곡까지 한다. 이는 자기 손에 피 안 묻히는 아주 간편한 폭력, 피해자 2차 가해로 이어진다.
야구방망이로 후배를 때려 강제전학이란 중징계를 받고도 핸드볼 명문 경희대학교에 입학한 김승환(가명. 20세)과 그의 부모는 참 끈질기다.
가해자 김승환은 폭력이 두려워 운동부 숙소를 이탈한 피해자 이규민(가명. 18세)에게 사과 하는 대신 이런 음성메시지를 보냈다.
“꺼져.”
김승환의 아버지는 미성년 학생들에게 거짓 진술서를 받아냈고, 엄마는 학폭 피해자에게 성추행 누명을 씌우려 했다.
이 가족은 ‘김승환의 강제전학 처분은 과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피해자는 운동을 접고, 가해자는 명문대에 입학한 상황. 가해자는 계속 승승장구할까, 아니면 폭력의 대가를 치를까.
법원의 두 번째 판단이 오는 25일 나온다. 기사회생을 노리는 가해자들의 끈질긴 2차 가해, 이번 기사는 그 이야기다.
2020년 청주공고 핸드볼부 3학년 주장이었던 김승환(가명)은 체육관 코치실에서 1, 2학년 후배들을 야구방망이로 때렸다. 1학년 이규민(가명)에겐 의자를 집어 던지고 쇠봉으로 때렸다. 청주교육지원청 학교폭력심의위원회(이하 학폭위)는 그의 폭력이 심각하다며 작년 8월 24일 강제전학 처분을 내렸다.
김승환은 청주교육지원청을 대상으로 법적 싸움을 하고 있다. 강제전학 처분이 부당하니 이를 취소해달라는 소송이다. 그는 1심에서 패소했지만 올해 1월 18일 항소했다. 2심은 대전고등법원에서 진행됐다.
그의 아버지이자 청주공고 핸드볼부 코치였던 김병국(가명) 씨도 야구방망이로 부원들을 때렸다. 이규민은 작년에 이틀에 한 번꼴로 코치에게 맞았다고 증언했다. 청주교육지원청은 작년 7월 17일 김병국 씨의 코치 직무를 정지시켰다. 검찰은 김 씨를 아동학대 혐의로 기소했다.
김병국 전 코치 측은 아들의 2심 재판 승소를 위해 핸드볼부원들에게 진술서를 받았다. 피해자와 동기였던 A 학생은 지난 7월 2일 진술서를 작성했다. 그런데 진술서는 처음부터 이상하다. <셜록>이 지난 7월 22일 입수한 A 학생의 진술서는 이렇게 시작된다.
‘소을 제17호증’
소송 당사자들이 어떤 증명을 위해 재판부에 문서 증거를 낼 때 붙는 명칭과 번호. 학생이 임의로 쓰는 진술서에 과연 이런 게 적혀 있을까. 의문은 잠시 미루고 진술서 내용을 보자.
1. 훈련할 때 못 뛰어다녀서 동영상을 찍어서 부모님께 보내긴 했지만 때린 적은 없었다.
2. 다른 3학년 형을 따라갔다 와서 혼난 건 맞지만 맞은 적은 없었다. 그냥 다음부턴 말 잘 들으라고 말로 혼내기만 하였고 집합해서 다른 형들은 안 혼났다.
3. (충북) 00을 들를 때는 김승환 형은 다른 차를 타고 갔었다. 그리고 00은 뛰어가라고 장난으로 말했던 적은 있지만 욕은 한 적이 없다.
4. 뛰어가라고 장난으로 말했던 적은 있지만 죽여버린다고 폭언을 한 적은 없다.
자, 지금부터 ‘소을 제17호증’ 의문부터 풀어보자. 학폭 피해자 이규민은 자신이 겪은 폭력 내용을 적어서 진술서 형태로 작년 1심 재판부에 냈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1. 훈련 시 못 뛴다고 부모한테 코치가 못 뛰는 거 동영상 찍어보내고, 말귀 못 알아듣는다고 때림
2. 다른 3학년 학생이 A를 불러 A가 따라다녀온 후 김승환은 기숙사 가라했는데 안 갔다고 불려가서 머리를 박음. 겁에 질려 대답 크게 못하자 옷장에 있는 쇠봉을 꺼내 때림. A는 그 일로 다른 방에 가서 울었음
- 당일 같은 방 선배가 문제라며 2학년 전체 구타
3. A가 짐이 많아서 차에 탈 때 좀 느리게 탔다하여 “너네 00은 XXX야 XXX” 등의 폭언을 날림
4. 코로나로 인하여 주말 기숙사 퇴거 시 매주 차량으로 이동 시에 가까운 00을 먼저 내리지 못하고 코치집이 있는 △△을 먼저 들림. 김승환은 먼저 내리고 싶어 00 아이들에게 뛰어가라던가, 죽여버리겠다 등의 폭언을 날림
피해자 이규민이 낸 진술서는 ‘을 제17호증’이란 명칭이 붙었다. 결국 A 학생은 이규민의 진술서를 하나하나 반박하며, 본인의 문서에 ‘소을 제17호증’이란 제목을 단 셈이다. 법조인이 아닌 미성년 학생이 말이다.
김병국 전 코치 측이 학생들에게 진술서, 특히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수상한 문서를 받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물론 소송 당사자가 자신에게 유리한 진술서를 받는 건 지극히 자연스런 일이다. 위력을 통한 사실 조작이나 허위가 없는 한 말이다.
우선 청주공고 핸드볼 부원 8명이 ‘김승환 강제전학 처분 취소’를 다툰 1심 재판부에 낸 진술서를 보자. 이들은 이규민이 평소 “아 XX X같네” “왜 나만 시키고 XX이야”는 식의 욕설을 했다면서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를 부정적으로 묘사했다. 8명의 진술서는 내용, 형식이 놀랍도록 비슷하다.
1심 재판부는 이 진술서는 김병국 코치의 위력으로 작성된 것으로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했다.
“2020년 8월 29일 및 9월 16일 작성된 핸드볼부 부원들의 각 진술서는 피해 학생의 진술에 배치되는 내용이지만, 핸드볼부 내에서 우월적 지위에 있는 원고(김승환) 측이 부원들에게 요구하여 받은 것인 데다가 (중략) 신빙성이 상당히 떨어진다.”
핸드볼 부원들은 작년 9월 16일에도 이규민이 성 관련 부적절한 말을 했다는 진술서를 작성했다. 당시는 학폭 가해자 김승환 엄마가 이규민에게 성추행 가해 누명을 씌우려 시도할 때였다.
청주공고 자체 조사 결과 이규민의 성추행은 없었다고 결론 났다. (참고기사 “학폭 가해 부모가 성폭력 사건으로 반격에 나섰다”)
최근 2심 재판부에 제출된 A 학생의 이상한 진술서까지 따지면, 가해자 가족은 여러 차례 부적절한 시도를 한 셈이다. 그것도 미성년 학생들을 상대로 말이다. 이들은 왜 이토록 포기를 모르는 걸까? 2심 공판에서 김승환 측 변호사가 제출한 준비서면에 이런 내용이 있다.
“징계 결정(강제전학 처분)이 확정되면, 원고(김승환)는 선수자격을 3년간 상실하여 우수한 운동 실력으로 진학한 대학에서 선수 활동을 전혀 할 수 없게 되어, ‘실질적으로 원고의 핸드볼 선수 생명이 마감’ 되는 피해를 입게 됩니다. 따라서 침해되는 사익이 심히 과다하다 할 것입니다.”
김승환은 작년 8월 24일 강제전학 처분을 받았지만, 불이익 없이 올해 21학번으로 경희대학교에 입학했다. 올해 5월 6일, 그는 충북체육회로부터 ‘자격정지 3년’ 징계를 받았다.
즉, 가해자 측은 이런 징계를 취소하거나 축소하기 위해, 궁극적으로는 운동선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사실 조작까지 불사한 셈이다. 문제는 이런 가해자의 진실 왜곡이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피해자 이규민과 그의 어머니 박지희 씨는 가해자들로부터 진심 어린 사과를 받은 기억이 없다. 박 씨는 김승환이 경희대에 합격하고 며칠 뒤, 김병국 코치가 본인을 찾아왔다고 말했다.
“김 코치가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그렇게 진심 같지는 않았어요. 이야기의 맥락은 본인이 다 내려놓겠는데 지금은 아니고 2년 정도만 코치 생활을 할 시간을 더 달라는 거였어요. 그리고 본인한테 걸려있는 모든 소송을 다 풀어달라는 얘기였어요. 그건 사과가 아니잖아요.
제가 울면 안 됐는데 울면서 이야기했어요. ‘내 아들한테 누명을 씌웠는지 안 씌웠는지만 대답해라. 난 그 대답을 듣고 싶다.’ 김 코치는 (이규민 누명 시도 사건이) 본인하고는 상관없는 거라고 얘기했어요. 그래서 저는 알겠다고 하면서 ‘제가 이 자리에서 일어난다고 해서 용서를 하거나 사과를 받은 건 아닙니다’라고 말했어요.”
박지희 씨는 사과하지 않는 가해자들을 용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코치가 시켜서 진술서를 작성했다고 팀에서 진술 번복이 나왔어요. 사실 그 자리에서 코치가 아마 모든 걸 털어놓고 ‘정말 살고 싶어서 그랬다’ ‘아들이 대학에 입학했으니 운동을 할 수 있게 아들만이라도 살려달라’고 빌었으면 저도 애 키우는 부모로서 어떻게 했을지 또 모르겠어요. 그런데 그 마지막 기회마저 (가해자들이) 그렇게 보냈다고 생각해요.”
가해자 가족은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구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학폭위, 학교 자체 조사, 1심 공판, 2심 공판... 박 씨가 말한 대로, 이때 가해자들이 진심 어린 사과와 반성을 했다면 결과를 벌써 달라졌을 수도 있다.
가해자 가족은 용서를 구해야 하는 그 좋은 기회를 끈질긴 사실 왜곡으로 날렸다. 박 씨는 “가해자들이 벌 받을 때까지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사과와 반성 없는 가해자들은 스스로 발목을 잡고 있는 셈이다. 이 모든 건 인과응보인지도 모른다.
이 기사는 프레시안-셜록 제휴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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