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이준석 당 대표 간 갈등의 핵심 소재였던 '대선 경선 사전토론회'에 대해 이 대표가 정견 발표회 방식으로의 전환을 검토하겠다며 한 발 물러설 뜻을 비쳤다.
이 대표는 13일 SNS에 쓴 글에서 "김기현 원내대표가 어제 직접 상주까지 찾아오셔서 여러가지 당무를 논의했다"며 "경선준비위에 토론회 방식의 일부 변경을 검토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지도 논의했고, 발표회 방식으로의 전환 등을 포함해 최고위원들에게 의견을 수렴 중"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발표회 전환은) 현 시점에서는 동의해 주신 최고위원도 있고 반대하는 분도 있다"면서 "일정에 대해서는 한 캠프 빼놓고는 참석 확답이 왔다. 형식은 캠프별로 선호가 다를 수 있으니 최고위에서 주말 간 최대한 의견을 조율해 나가겠다"고 했다.
'한 캠프 빼고'라는 대목에서 윤석열 캠프에 대한 불편함이 여전히 묻어난다. 그러나 지도부 다수가 반대하는 상황인 만큼 일단 의견을 굽힌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이 대표가 전당대회 공약으로 들고 나왔던 '공천 자격시험' 구상도 최고위 논의를 거친 끝에 '공직후보자 역량 강화 TF'를 출범시키는 것으로 조정된 바 있다.
앞서 김 원내대표는 지난 10일 불교방송(BBS) 인터뷰에서 "지금은 후보자들의 시간이기 때문에 후보자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시간도 여건도 배려해 주는 것이 옳다"며 "토론회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 한다면 언제 할 것인지도 좀더 세심하게 후보자들 진영과 소통을 해서 진행했으면 좋겠다"고 했었다.
지도부 중 김재원·조수진 최고위원도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경선 전 토론회 실시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고, 정미경·배현진 최고위원도 반대 입장으로 전해졌다. 이 대표와 가까운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도 전날 <뉴스1> 인터뷰에서 "경선도 하기 전에 경준위가 토론회를 개최하겠다고 하는 건 자기들의 존재 가치를 표시하기 위한 일일 뿐"이라고 등을 돌렸다.
이런 가운데 윤석열 캠프의 신지호 정무실장이 지난 11일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당 대표의 결정이라 할지라도, 아무리 대한민국 대통령이라 해도 헌법과 법률에 근거하지 않은 것은 탄핵도 되고 그런 것"이라고 말한 것이 돌발 변수가 됐었다. 이 대표가 전날 4차례나 SNS에 글을 올리며 '당 대표 탄핵 주장이 나왔다'고 민감한 반응을 보이면서다. 그러나 신 실장의 공개 사과에 이어 윤 전 총장 본인이 직접 이 대표에게 유감 표명 전화를 하면서 이 논란도 가라앉게 됐다.
이 대표는 윤 전 총장과 통화 후 TV조선 방송과 한 전화 인터뷰에서 "정확한 사과 표명을 듣지 못했다", "사과도 아니고 유감 표명도 아니었다"며 "조금이라도 문제 해결의 의지가 있다면 토론회 참석 여부에 대해 오늘 결론을 내달라고 했지만 (윤 전 총장이) 답을 얼버무렸다"고 말했다. 신 실장의 발언을 지렛대로 삼아 토론회 사안을 자기 뜻대로 끌고가려 했지만 잘 안 됐다는 뜻으로 보인다.
결국 이 대표는 전날 저녁 "탄핵 발언에 대해 윤 예비후보께서 직접 전화를 통해 '캠프 내 관계자를 엄중히 문책했고 정치권에서 이런저런 아무 이야기나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이해해 달라'고 말씀하셨다"며 "당 대표 입장에서 그 말을 신뢰하겠다"고 논란을 일단락지었다. '발표회 방식으로의 전환'이라는 손짓이 나온 것은 이 다음이다.
'발표회' 타협안, 최고위·경준위 양측 모두 거부…尹측, 토론회에 비판적 인식 유지
그러나 '발표회 방식'이라는 타협안에 대해서도 반대 의견은 여전히 있다. 김재원 최고위원은 "이제와서 합동토론회를 비전정책보고회로 바꿔 내놓을 모양이나, 이는 잘못된 일"이라고 비판했다. 김 최고위원은 "토론회든 비전정책보고회든 이는 경준위의 월권행위이므로 즉시 중단돼야 한다"며 "그간 반대하던 후보자 측에서 이 정책발표회에 참석하는 것은 더더욱 바보짓이 되고 이런 행사를 벌이는 당은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고 했다.
김 최고위원은 "합동토론회에서 토론을 없애고 정책보고회로 바꾼다면, 틀림없이 일부 인사들은 언론에 대고 '토론을 두려워하는 일부 유력 주자가 당 지도부에 압력을 가해 정책발표회로 둔갑시켰다'고 공격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나아가 "등록도 하지 않은 상황에 후보자를 끌어내어 강제로 정책을 발표하도록 하는 것은 우리 후보자의 경쟁력만 떨어뜨릴 뿐"이라고 지적헀다.
경선준비위 측도 타협안을 거부했다. 서병수 경선준비위원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이 대표와 김 원내대표가 '발표회'를 언급해 경준위에서 논의했으나, 토론회 틀을 그대로 유지하는 게 옳겠다고 결론내렸다"고 했다. 서 위원장은 "옆에서 쑤신다고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면 꼴이 어떻게 되겠나"라며 "토론회를 없앨 경우 또 다른 분란을 만들 수 있고, 발표회로 전환하면 다른 후보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걱정"이라고 했다. 기존 발표안대로 토론회를 강행하겠다는 것이다.
'탄핵' 발언으로 인한 변수가 사라진 이후, 윤석열 캠프는 여전히 사전 토론회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보이고 있다. 윤석열 캠프는 이날 경선준비위가 연 토론회 설명회에도 불참한다고 김병민 대변인을 통해 밝혔다. 불참 사유는 "토론회 개최 여부를 두고 지도부와 경준위 간 이견이 있다. 지도부와 조율되지 않은 설명회에 참석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윤석열 캠프 측에서는 사실상 최고위를 통해 토론회 계획 자체가 무산되기를 기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캠프 총괄실장을 맡고 있는 장제원 의원은 이날 YTN 라디오 인터뷰에서 "최고위에서도 방향을 못 잡았고 우리 당 주요 인사들도 반대하지 않느냐"며 "당에서 컨센서스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했다. "과연 원칙 있는 일이냐, 상식에 부합하는 일이냐"거나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도 했다.
윤석열 캠프 대외협력특보인 김경진 전 의원도 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토론회가 열릴지 자체부터가 사실 불확실한 것 같다"며 "어차피 본경선이 9월 1일부터 시작되면 아무리 늦어도 9월 10일부터는 토론회가 시작된다. 8월 18일에 하나 9월 10일에 하나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다고 경준위에서 이렇게 무리하려 하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윤 전 총장에게 우호적 인사들이 많은 당 재선의원들도 이날 공동 입장문을 내어 지원사격에 나섰다. 곽상도·김성원·김희국·윤한홍·이달곤·임이자·정운천·정점식 의원 등 재선의원 16명은 이날 "중차대한 시점에 이 대표가 내부를 향해 쏟아내는 말과 글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며 "경준위는 대선 경선 준비를 위한 임시 기구인 만큼, 토론 등 대선 관리는 곧 출범할 선거관리위원회에 일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립 또는 타 주자 지지 성향으로 분류됐던 의원들이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것도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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