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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은 '미래세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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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은 '미래세대'가 아니다

[청소년 인권을 말하다] 현재의 문제를 외면하는 비겁한 사회

청소년들에게는 늘 따라붙는 말이 있다. '미래세대'. 교육 영역에서 꾸준히 사용되었고 사회 곳곳에서 쓰였던 말이지만 최근 들어서는 기후위기 등의 문제를 이야기하며 특히 더 많이 들린다. 유사어로는 '꿈나무', '미래의 주역' 등이 있고, 가끔 그냥 '미래'라고 어린이와 청소년을 부르기도 한다. 이런 말, 이런 생각 괜찮은 걸까?

현재를 보지 못하게 하는 착각

이 '미래세대'라는 말은 몇 가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중 가장 일반적인 것이 현재보다 미래가 더 가치 있다는 착각이다. 세월호 사건이나 구의역 사고를 언급할 때도 그런 인식이 많이 나타났다. 피해자들의 죽음은 나이에 관계없이 비극적이고 심각한 사회문제의 결과였는데도 문제적인 현실에 관심을 가지기보다 청소년 피해자들의 '창창한 앞날'과 '펼치지 못한 꿈'을 안타까워하는 반응이 많았다.

죽음의 사례가 아니더라도, 청소년의 현재는 미래보다 중요하지 않게 취급된다. 미래의 성공을 위한 현재의 고통이나 인권 침해는 가볍게 취급되고 가끔은 진짜 현실이 아닌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세계적인 영화감독 팀 버튼은 어린 시절 내내 집단 따돌림을 겪었다. 교사들에게 차별도 받았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듣고도 그 고통에 공감하고 문제의식을 갖기보다는, '어린 시절 따돌림을 당한 경험이 바탕이 되어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지 않겠냐'는 식의 반응이 흔하다. 미래에 도움이 되었다면 고통을 당연히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심지어 고통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청소년의 현재는 지나가는 것, 진짜가 아닌 것으로, 미래를 위한 재료 정도로 치부된다. 그래서 현재의 문제는 문제로 여겨지지 않고 계속 반복되어 또 다른 피해를 발생시킨다.

청소년을 배제시키는 강력한 메시지

'미래세대'라는 말은 청소년을 현재 사회에서 삭제시키는 말이기도 하다. 미래를 준비하는 예비인력이기 때문에 현재와는 관련이 적어 보이는 착각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소년 역시 현재를 살아가고 있기에 온갖 사회 문제는 청소년의 삶에 직간접적 영향을 끼친다. 경제 상황 악화는 청소년의 주거 환경 등 생활 조건을 악화시키고, 청소년으로 하여금 추가 노동에 나서게 한다. '학생 노동자' 또는 '도제 학생', '실습생', '아르바이트' 등의 이름으로 노동 현장에 참여하는 청소년이 매해 수만 명 이상이기에 청소년 역시 중대재해나 산업재해의 당사자이기도 하다. 기후위기나 감염병 상황은 더 말할 나위 없다. 청소년은 사회의 거의 모든 문제에서 당사자다.

하지만 '미래세대'라는 말은 청소년이 현 시대의 구성원이라는 것을 삭제하고 그들이 가진 주권을 박탈하는 논리에 기여한다. '어른 되면 해라'라는 말은 사회 곳곳에서 청소년을 가로막고 당사자로서 정보의 접근과 결정 권한을 부여받지 못하게 한다. 대신 청소년의 모든 활동은 '진로'라는 말로 포장된다. '네 순서가 아니니 나서지 말라'라는 메시지는 사회 전반에서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

그에 대한 대안으로 나는 주로 '후발세대'라는 표현을 사용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부산을 향해 간다고 할 때, 서울에서 출발한 자동차도 대전에서 출발한 자동차도 같은 도로를 달릴 수 있다. 두 자동차가 바로 옆에서 달리고 있다면 아마 서울에서 출발한 자동차가 더 일찍 출발했을 것이다. 하지만 두 자동차는 같은 도로에서 달린다. 즉 선발과 후발은 한 측이 점유하고 있다는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최근 몇몇 번역서에서도 '후발세대'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기성세대가 책임으로부터 회피하는 방법

'미래세대'라는 말은 설혹 청소년들이 현 시대의 구성원임을 인정하더라도, 청소년들이 현재 문제에 개입할 권한을 가지는 것보다 미래의 사회를 책임지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기게 한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현재의 문제를 정말 심각하게 여기고 있다면 누가 됐든 간에 모든 사람의 힘을 모아 그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닌가? 왜 미래까지 여지를 남겨두고 심지어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가. 다른 사람이 만들어 주는 미래를 꿈꾸는 건 책임 회피다. '잘 교육받아 나중에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은 청소년들을 미래라는 틀 안에 격리시켜 둔 채, 현재의 문제를 외면하는 일이다.

특히 우리 사회는 기후위기를 비롯해 대부분의 문제에서 중요한 해결방안으로 교육을 이야기하는 일이 흔하다. 하지만 어린이와 청소년을 잘 교육하는 것이 문제의 해결방안이라는 것은 적어도 세 가지의 커다란 오류를 가지고 있다. 첫째, 교육이 사회 문제를 실제로 해결할 수 있다 또는 해결했다는 구체적 근거는 한 번도 밝혀진 적이 없다. 기본적으로 교육은 그 효과를 확인하기 어려우며, 가치 지향에 가깝다. 세대를 거듭하더라도 우리는 이 가치를 지향하며 살아가겠다는 공공의 의지 말이다.

둘째, 교육을 중요한 문제 해결 방안으로 꼽는 것은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지금은 문제 해결에 치열하게 임하지 않겠다는 의미기도 하다. 교육은 기본적으로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 과정이기에, 교육이 해결 방법이라는 것은 그 긴 시간 동안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의도가 그렇지 않더라도 교육을 해결 방법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기성세대가 현재의 사회에서 문제 해결을 포기한다는, 그래서 '미래세대'에게 맡기겠다는 책임 회피의 전략이다.

마지막으로, 어린이와 청소년을 교육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어린이와 청소년은 변화시키기 쉽다는 기대 혹은 오만함을 전제하는 생각이다. 나이가 적어서 혹은 경험이 적기 때문에 좀 더 쉽게 설득하거나 따르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상대방에게 자신만의 생각이나 가치관이 없거나 혹은 있더라도 연약할 것이라는 생각이 전제된다. 상대적으로 교육 활동을 기획하는 입장의 생각이나 가치관은 훌륭하고 굳건하다는 믿음과 함께. 이 정도의 오만함은 폭력적이기까지 하다.

사람을 사람으로 존중할 수 있기 위해

'미래세대'라는 말이 가지는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누군가, 특정한 집단의 사람들을 미래에 대한 준비로 남겨 놓을 수 있다는 생각이 가지는 해악이 그것이다. 이 문제는 어린이와 청소년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해당된다. 돈이나 자원 혹은 에너지를 미래를 생각해 아껴 두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사람은 자원이 아니다. 적금을 넣듯이 미래세대를 교육해 미래를 대비한다는 발상은 사람을 자원처럼 축적하고 이용할 수 있다는 인식에 바탕하고 있다. 그것이 과연 사람을 존중하는 태도일까.

가야트리 스피박은 교육을 '비강제적인 욕망의 재배치'라고 말했다. 인간은 결국 자신의 욕망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이며 모든 인간은 욕망을 가지고 있다. 세상의 대부분의 문제는 그러한 욕망으로 인한 것이고 그에 대한 대가는 이 세상에 태어나 호흡하고 있는 모든 존재가 치르는 중이다. 그래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사람들의 그 욕망을 비강제적으로, 잘 정렬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보다 우월해지려는 욕망보다, 현재의 문제를 모두가 주체로서 마주하고 해결하기 위해 연대하려는 욕망을 가지는 것, 그 욕망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처럼 욕망을 재배치하는 것은 어린이·청소년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문제를 대신 해결해 줄 사람이나 만능키 같은 것은 없다. 사람을 만들어 내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러니 청소년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이다. 청소년은 미래세대 따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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