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대규모 한미연합훈련 중단이나 유예를 주장해왔다. 적어도 3월과 8월에 실시하는 전구급 훈련을 유예함으로써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북한이 요구하기에 앞서 한미 간의 긴밀한 협의를 거쳐 선제적인 결단을 내려야한다고도 촉구해왔다.
하지만 또다시 연합훈련을 실시키로 한 한미동맹의 결정과 이에 대한 도를 넘어선 북한의 반발을 보면서 착잡함을 지울 수 없다. 남북한은 7월 27일을 기해 통신연락선을 복원하면서 "남북관계 개선과 발전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밝힌 바 있다. 남북 정상 간의 친서 교환을 통해 이뤄낸 성과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을 끌었다.
그러나 정상 간의 소통을 통한 관계 회복 다짐이 한미연합훈련을 둘러싼 이견과 갈등 앞에서 초라해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대선이 다가오면서 한미연합훈련이 급격히 '정치화'되고 있다. 여당 내에선 연합훈련 연기 시 대선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정무적 판단이 고개를 들고 있다.
보수 야당과 언론은 "김여정 하명" 운운하면서 문재인 정부에 맹폭을 가하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연합훈련 축소가 불가피하다는 판단은 5월부터 나왔는데, 마치 문재인 정부가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의 담화가 나오자 연합훈련 축소 결정을 내린 것처럼 여론을 호도한다.
그런데 이는 내년 2~3월에 벌어질 정쟁의 예고편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이번 대선은 2022년 3월 9일에 치러진다. 시기적으로 3월 한미연합훈련과 겹치거나 바로 직전이다. 한미연합훈련에 대한 대선 후보들의 입장이 핵심 쟁점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다.
북한의 자가당착과 아전인수
한미연합훈련 강행과 비생산적인 정치화도 유감이지만, 북한의 반응도 매우 실망스럽다. 오늘(10일) 나온 김여정의 담화는 "위임에 따라" 발표한 것인 만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뜻이 반영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짚고 넘어갈 부분들이 있다. 우선 북한 스스로 핵무력에 기반을 둔 국가방위력에 힘입어 "어느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전략 국가"가 되었다고 자랑해왔다. 반면 한미연합훈련은 대폭 축소되었다. 이번 훈련뿐만 아니라 2019년 이후 훈련에도 미국의 전략 자산 투입이 없었고 또 야외 기동훈련도 제외되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 방식으로 치러지는 이번 훈련의 규모는 더더욱 축소되었다.
그런데도 북한은 "전쟁시연회, 핵전쟁 예비연습"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마치 한미동맹이 "북침"이라도 준비하고 있는 것처럼 과장된 인식을 내비치고 있다. 이러한 과도한 위협 인식은 북한이 주장하는 "전략 국가"와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북한이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기 전에 한미연합훈련의 강도와 규모는 훨씬 강했다. 반면 북한이 전략 국가를 선언한 이후 한미연합훈련은 크게 누그러졌다. 북한의 국가 방위력은 강해졌고 한미연합훈련은 약해졌는데 북한이 과거보다 더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을 두고 '자가당착'이라고 지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 김여정은 이번 담화에서 "남조선 당국자들의 배신적인 처사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이 역시 아전인수다. 문재인 정부가 한미연합훈련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적이 없기에 "배신"이라는 말 자체가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오해는 없길 바란다. 위의 지적이 한미연합훈련이 불가피하다거나 북한의 "전략 국가" 주장을 옹호하기 위함은 결코 아니다. 한미동맹과 북한의 경직된 태도가 선순환을 차단하고 악순환만 부채질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함이다.
구실을 찾지 말고 길을 찾아라
나는 북한이 자신감을 찾길 바란다. 돌이켜보면 2018년의 봄날은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한미연합훈련을 '연기'하기로 한 문재인 대통령의 결단과 연기를 양해한 김정은 위원장의 용단이 맞물리면서 찾아왔었다. 만약 당시 김정은이 연합훈련 '연기'가 아니라 '중단'을 요구했다면 봄날은 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봄이 온 데에는 김정은의 통 큰 결단이 주효했던 것이다.
하지만 2019년 이후 북한은 한미연합훈련에 대해 더욱 예민하고 거친 반응을 보여왔다. 물론 북한의 입장을 전혀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남북 정상 간에는 4.27 판문점 선언도 있었고 9.19 평양공동선언도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연합훈련 중단을 거듭 약속했었다.
그러나 이를 근거로 북한이 꼭 한미연합훈련 실시에 과민 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다. 문제를 키우려면 구실을 찾고 문제를 해결하려면 길을 찾기 마련이다. 실망스럽게도 북한의 행태는 문제를 키우는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연합훈련은 축소되었는데 북한의 반발은 확대되고 있기에 그렇다.
이러한 악순환이 반복되면, 북한으로서도 '혹 떼려다 혹 하나를 더 붙이는 격'이 될 수 있다. 이미 한미 양국 내에선 연합훈련을 예전 수준으로 회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여정이 담화에서 밝힌 것처럼 북한이 "국가 방위력과 강력한 선제타격 능력을 보다 강화해나가는데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되면, 한미연합훈련의 규모와 강도도 강화될 수 있다.
문제 해결의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북한은 이번 연합훈련에 대한 반발을 비난 담화를 낸 수준에서 멈춰야 한다. 코로나19 방역과 경제 및 홍수 피해 회복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북한에게도 불필요한 군사적 긴장 고조는 결코 이롭지 않다. 오히려 북한은 냉각기를 거쳐 남북대화와 북미대화에 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화를 통해 풀어야 할 숙제를 대화의 조건으로 삼는 것은 악순환만 반복할 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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