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이하 학폭) 피해자는 꿈을 접고, 가해자는 꿈에 그리던 대학에 진학하는 현실. 비정상은 이것만이 아니다. 두 학생의 모교인 고등학교와 가해자가 입학한 대학은 오랫동안 ‘무상거래’를 해왔다.
2020년 청주공고 핸드볼부 주장이었던 김승환(가명. 당시 19세)은 1학년 부원이었던 이규민(가명. 당시 17세)을 야구방망이로 때리고 그에게 의자를 던졌다. 학교폭력심의위원회(이하 학폭위)에서 가해 사실이 인정돼 김승환은 그해 8월 24일 강제전학 처분을 받았다. (참고 기사 1화 : 커피포트로 치고, 쇠봉으로 때리고.. 핸드볼 부자의 학폭 )
당시 고3이었던 김승환은 경희대학교 입학을 희망했다. 경희대는 핸드볼 명문으로 통한다. 그에게 경희대는 친숙했다. 청주공고에 다닌 3년간 경희대 핸드볼부와 함께 동계 훈련을 받았기 때문이다.
경희대에 지원할 때 불이익 받는 게 두려웠을까? 김승환은 전학 처분을 받은 지 열흘 만에 이를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법원에 제기했다. 1심에서 패소했지만, 그는 판결이 나오기 전인 2020년 12월 9일 이미 경희대에 합격했다.
당시 경희대는 김승환이 학폭 가해자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피해자 이규민의 어머니 박지희 씨는 메일, 전화, 등기 등으로 경희대 입학처에 해당 사실을 알렸기 때문이다. (참고 기사 3화) 그때 학폭 피해자 이규민은 이미 운동을 포기한 상태였다.
경희대와 청주공고는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관계를 약 7년간 이어왔다.
경희대 핸드볼 팀은 2013년부터 2020년까지 청주공고에서 동계 훈련을 했다. 이때 경희대 측은 공짜로 청주공고 체육관을 이용했다.
“경희대-청주공고 핸드볼 팀이 체육관에서 합동 훈련을 했습니다. 오전에는 반 코트씩 나누어서 각자 훈련을 하다가 오후에는 경희대랑 같이 경기를 했습니다.”
학폭 피해자 이규민이 지난 6월 18일 기자에게 한 말이다. 2020년 경희대의 ‘공짜 동계 훈련’은 1월 4일부터 같은 해 2월 2일까지 진행됐다.
청주공고는 공립학교다. 원칙대로라면 하루에 4시간 넘게 학교 시설을 이용하면 매일 10만 원을 내야 한다. 이는 충청북도교육비특별회계 소관 공유재산 관리 조례(이하 ‘충북 공유재산 관리 조례’)에 규정되어 있다.
해당 조례를 관리하는 충청북도교육청 담당자는 경희대의 공짜 동계 훈련에 대해 “문제가 있는 사안”이라고 지난 6월 24일 기자에게 전화로 밝혔다.
“더군다나 경희대는 사립(학교)이고…. 사용 비용을 내야죠. (경희대가) 무상으로 사용 가능한 조항은 조례에 없습니다.”
청주공고 행정실장은 규정 사항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는 지난 6월 기자와 여러 차례 통화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본청(충청북도교육청)에 학교 시설이용료에 관한 규정이 있어서 시설이용료를 원래 받습니다. (경희대 핸드볼 팀은) 합동 훈련한 거여서 체육부서에서 이용료를 안 받은 거 같습니다.”
충북 공유재산 관리 조례에는 감면 조항이 없다. 2018년 조례가 개정되기 전엔 ‘지역주민들의 생활체육활동, 기타 공공목적 등 건전한 목적으로 일시 사용하는 경우’가 감면 조항으로 명시되어 있었지만, 경희대 사례는 여기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학폭 피해자 이규민의 엄마 박지희 씨는 지난 4월 국민신문고에 “경희대는 장소 사용 비용을 지불하지 않았다”는 민원을 넣었다. 경희대는 서면 답변을 통해 이 사실을 인정했다.
“상기의 전지훈련을 진행하면서 본교는 청주공업고등학교로부터 장소사용의 협조를 구했으며, 청주공업고등학교에서 장소사용요금을 무료로 제공했기에 거절할 사유도 없었습니다.”
두 학교는 조례와 원칙을 어기고 공유재산을 공짜로 대여하고 이용했다. 운동부 입시라는 민감한 사안을 고려하면 이는 불공정 시비로 번질 수도 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청주공고 핸드볼부 학부모는 경희대 합동 훈련 때 오는 트레이너에게 월급을 줘야 한다는 ‘돈 요구’까지 받았다. 일부 학부모는 돈을 내기도 했다. 청주공고 핸드볼 코치였던 김병국(가명)이 그 돈을 받았다.
“경희대 핸드볼 팀이 동계 훈련 오면서 골키퍼 트레이너랑 같이 와요. 김병국 코치가 저한테 전화를 했어요. ‘아들이 (트레이너한테) 배우는 건데 60만 원을 내야 한다’고요.”
박지희 씨는 동계 훈련 직전인 2019년 12월 김병국 코치에게 직접 60만 원을 입금했다. 이는 학교운영위원회 심의를 거치지 않은 경비이다. 다른 학부모들도 비슷한 요구를 받고 돈을 냈는지는 조사를 통해 밝힐 사안이다.
청주공고 학부모가 낸 돈은 누구에게 어떻게 흘러갔을까?
경희대 핸드볼 팀과 함께 청주공고에 갔던 골키퍼 트레이너 A씨에게 지난 3일 전화를 걸었다.
“대한체육회에서 조사받았으니까 그쪽에 물어보세요.”
그는 이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혹시 김병국 청주공고 코치가 중간에서 돈을 가로챘을까? 김 코치에게 전화와 문자메시지로 관련 내용을 물었지만 그는 아무 답을 하지 않았다.
대한체육회에서 조사한 사건들은 현재 스포츠윤리센터라는 스포츠 비리 전담기구에 이관됐다. 스포츠윤리센터 측은 “사건 관련한 내용은 말할 수 없다”고 기자에게 지난 3일 밝혔다.
“A 씨는 경희대 (핸드볼 팀 골키퍼를) 가르친다면서 동계 훈련 때 저에게도 기법을 가르쳤습니다.”
학폭 피해자 이규민이 기자에게 한 말이다. 경희대 핸드볼 팀과 함께 청주공고에 온 A의 정체는 뭘까? 경희대학교 체육부는 “교직원 중에 그런 분은 없다”고 밝혔다. 대한핸드볼협회 역시 “지도자 중에 A라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결국, 경희대 측은 자격 없는 트레이너를 ‘공짜 동계 훈련’ 때 데려온 셈이다. 입시 등에서 ‘을’일 수밖에 없는 고교 운동부 학부모는 돈을 지급했다. 그 돈이 누구의 지갑에 들어가 어떻게 쓰였는지, 해당 학부모는 모른다.
서울체육고등학교에서 수영 팀을 지도하는 이병호 감독은 경희대-청주공고의 합동훈련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거기(경희대)에 입시를 볼 아이들이고, 스카우트 제도가 금지된 지도 꽤 됐는데 연습 게임 정도가 아니라 같이 훈련을 하는 건 다른 학교 핸드볼부 학생들이 거기(경희대)에 지원했을 때와 비교하면 분명 공정하지 않죠.”
그는 고등학교 핸드볼부 학부모가 경희대 측 트레이너에게 비용까지 지급했다면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어쨌든 일종의 과외를 해주고 합동 훈련을 통해 경기력을 향상해 준 거잖아요. 청주공고가 그걸 통해 대회에 나가서 (실적을 쌓고 그걸로) 입학했으면 분명히 영향을 준 건 맞죠.”
미대 교수가 본인이 속한 대학에 들어오려는 고등학생을 직접 가르친 상황과 다르지 않다는 의미다.
청주공고 핸드볼부에선 2011년부터 매년 1명 이상 경희대에 들어갔다. 최근 5년 경희대 스포츠지도학과 핸드볼(남) 전형 합격자 중 청주공고 출신 합격자 수를 보자.
2016년 경희대 핸드볼부에 입학한 8명 중 3명이 청주공고 출신이다, 2017년엔 8명 중 2명, 2018년엔 8명 중 1명, 2019년엔 4명 중 1명, 2020년엔 6명 중 2명이 청주공고 출신이다.
2011년부터 2020년까지 청주공고 핸드볼부에서 선수로 대학에 진학한 전체 학생 28명 중 21명이 경희대에 입학했다. 작년엔 학폭 가해자 김승환을 포함해 핸드볼로 대학에 진학한 2명 모두 경희대에 진학했다.
앞서 말한 대로, 경희대 핸드볼팀은 2013년부터 7년간 청주공고 체육관을 공짜로 썼다. 청주공고 행정실장은 지난 6월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걸(합동 훈련) 방학 때 했다면 행정실에서 한 게 아니라 체육부서에서 관여했을 거예요. 제가 알기론 자세한 내용은 그분(김병국 코치)이 많이 아십니다.”
경희대 ‘공짜 동계 훈련’에 주로 관여했다는 청주공고 핸드볼 코치 김병국 역시 학폭 가해자다. 그는 야구방망이, 커피포트 등으로 운동부 학생을 때렸다. 김병국은 아동학대 혐의로 최근 기소됐다. 그는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기도 했다. 학폭으로 강제 전학 조치된 김승환은 그의 아들이다.
학폭 피해자 엄마 박지희 씨가 총 일곱 차례 민원을 넣었지만, 경희대는 김승환을 받아줬다.
그나저나, 운동부 학부모가 낸 돈은 최종적으로 누구 주머니에 들어갔을까? 피해자 측의 민원에도 “학폭은 몰랐다”며 김승환을 받아 준 경희대, 7년간 이어진 공짜 동계 훈련은 알고 있었을까?
이 기사는 프레시안-셜록 제휴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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