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간 '김형찬의 동네 한의학'을 연재한 김형찬 한의사가 고은정 약선음식전문가와 함께 새로운 연재 '그녀들의 맛있는 한의학'으로 돌아옵니다. '그녀들의 맛있는 한의학'은 여성의 한의학적 문제를 짚고, 그에 맞는 음식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그녀들의 맛있는 한의학'은 격주 목요일 연재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1화. 여성은 기적氣的인 존재다
"부인의 병이 남자보다 열배나 치료하기 어렵다. 그 이유는 좋아하고 즐기려는 마음이 남자보다 많고 남자보다 배로 병에 잘 걸리기 때문이다. 또한 질투와 걱정과 분노 그리고 연민과 애증이 깊고 스스로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병의 뿌리가 깊기 때문이기도 하다.
婦人之病 與男子十倍難療 以其嗜慾多於丈夫 成病倍於男子 加以嫉妬憂恚 慈戀愛憎 深着堅牢 情不自抑 所以爲病根深也" - 동의보감 잡병편 권10 부인婦人 중에서 -
여성들이 탐욕스럽고 스스로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서 남자보다 병이 많고 치료하기도 힘들다니! 요즘 누군가 저렇게 말했다면 성인지감수성 제로 인물이라고, 혹은 여성비하 발언을 일삼는 이라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 의서에 저런 이야기가 등장한 것은 왜일까?
동의보감이 편찬된 17세기는 임진왜란 이후 가부장적 사회구조가 강화되는 시기이기도 하지만, 실제 위의 문장은 성혜방이라는 의서에서 인용된 부분이다.
성혜방은 태평성혜방이라도 부르는데 송나라 때(992년) 유행하던 처방과 그 이전의 기록을 모아 펴낸 의서다. 송나라는 중국 역사에서 상당히 개방적이었던 당나라의 문화를 이어 받아 사회적으로 여성의 지위가 꽤 높았던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전족'이라는 폐습이 이 때부터 시작되었던 것을 감안하면, 당시 여성이 처했던 상황은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남녀평등과는 거리가 멀었을 것이다.
의학은 질병이란 문제를 다루는 학문이어서 무척 객관적일 것 같지만, 의학의 발전사를 보면 늘 당시의 사회관이 그대로 반영되었다. 자연과 우주, 그리고 사회를 해석하는 방식이 의학이 질병과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현대 의학이 모든 것을 물질로 환원해서 인간과 질병을 바라보는 것은, 우리가 물질과학의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관점으로 위의 문장을 보면 남성위주의 사회구조가 만들어낸 스트레스로 인해 당시의 여성들에게 병이 많이 생기고 그 뿌리가 깊었을 것임을 유추할 수 있다. 또한 여성을 바라보는 당시 남성(성혜방의 저자를 포함한)들의 생각이 반영되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어쩌면 시대적 상황을 봤을 때 동의보감의 최종 편집장인 허준 또한 그런 생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21세기의 대한민국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남녀차별이 줄어든 사회다. 하지만 진료실에서 바라보는 세상의 차별을 보면,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다. 한의학에서는 '여성은 감정에 의한 병이 많고, 남성은 신체적 과로에 의한 병이 많다.'는 말을 한다. 여성은 감정의 불균형이 기의 소통에 문제가 생겨 병이 잘 생기고, 남성은 일을 많이 해서 생긴 병이 많다는 의미다. 환자와 상담하다 보면 이 말은 아직도 그대로 적용되는 듯 하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우리 사회에서 눈에 보이는 차별은 줄었을지 모르나, 살아가면서 느끼는 보이지 않는 차별은 아직 많이 남아있는 게 아닐까 싶다. 또한 단순히 성별로서 남녀의 문제를 떠나, 우리가 '남자답다'라며 칭송하는 남성위주의 문화가 해결되어야 할 것도 같다. 광고업에 종사하는 지인은 우리 사회의 희망은 2030여성들에게 있다고 말하는데, 공감되는 말이다. 스스로를 들여다봐도 가부장적 사회에서 알게 모르게 스며든 습성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전쟁을 겪은 세대 이후에야 전쟁의 후유증에서 벗어나듯, 가부장적 사회에서 성장한 세대 이후 등장하는 이들이 성인이 될 때에야 우리 사회가 남성위주의 문화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사회를 바꾸는 것은 병이 생기는 환경을 바꾸는 큰 치료다. 하지만 역사를 보면 이것만을 기대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사회를 바꾸는 운동에도 참여해야 하고, 개인의 삶과 건강도 잘 챙기는 작은 움직임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여성의 병은 감정의 부조화가 만들어내는 기氣의 흐름에 문제가 생겨서 잘 생긴다고 했다. 한의학의 치료는 바로 감정의 문제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기의 흐름을 조정함으로써 감정이 일으킨 파문을 바로 잡는 것을 목표로 한다. 기의 흐름이 순조로워지면 감정의 변화는 감당할만한 것이 되고, 더 나아가 감정적 섬세함과 예민함은 변화의 기미를 재빨리 알아챌 수 있는 장점이 될 수 있다. 다치지 않도록 잘 다룰 수만 있다면 날카로운 칼은 훌륭한 무기가 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자신의 건강에 문제가 있다고 여기는 여성이라면 보다 이기理氣적이 될 필요가 있다. 무엇이 기의 소통을 막고 있는지, 그것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
그녀들을 위한 레시피 : 서여향병
마를 입에 넣는 순간 미끈거리면서 씹으면 사각한 식감이 동시에 온다. 그래서 다른 채소나 과일처럼 생으로 먹기 불편한 식재료다. 일본은 주로 갈아서 음식에 활용하고 우리는 쪄서 말린 가루를 건강을 위해 먹거나 고기를 먹을 때 구이 정도로 활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서여향병은 마를 쪄서 꿀에 재운 후 구워 잣가루를 입힌 음식이다. 조리하는 과정이 번거롭고 귀한 재료들로만 만들어지므로 역시 귀한 손님이나 오셔야 미리 준비해두었다가 차와 함께 내는 일종의 다식으로 손님 초대해 상 물리고 내는 후식으로도 좋다.
푹 무르게 찌지 않아 미세한 사각거림은 입안에 남아 좋고, 찹쌀가루 옷을 입고 기름에 지졌으므로 마치 떡 같은데 꿀의 달콤함에 잣이 더하는 향이 어찌나 훌륭한지 이름을 전(煎)이라 하지 않고 서여향병(薯蕷香餠)이라 부른다. 그러니 누구하고도 나누고 싶지 않을만 하다. 옛날 같으면 벽장 속 깊숙이 숨겨두고 혼자만 몰래 하나씩 꺼내 먹고 싶은 음식이다. 먹는 동안 마음도 달달해져 가슴속 응어리 하나씩을 내려놓게 하는 음식이다.
<재료>
마 500g, 찹쌀가루 200g, 잣가루 100g, 식용유, 꿀 적당량
<만드는 법>
1. 마는 직경이 5cm 정도로 일정하고 곧은 것을 준비한다.
2. 마의 껍질을 벗기고 0.5cm 두께로 썬다.
2. 김이 오른 찜통에 썰어놓은 마를 가지런히 넣고 5분간 찐다.
3. 찐 마를 꿀에 재워 30분간 둔다.
4. 잣을 한지에 놓고 종이를 바꿔가며 곱게 다져 가루를 만든다.
5. 꿀에 재운 마를 건져 찹쌀가루에 굴려 골고루 가루를 묻힌다.
6. 프라이팬을 달군 다음 식용유를 두르고 4의 마를 뒤집어가며 중간불에서 앞뒤로 노릇하게 부친다.
7. 기름에 부친 마에 잣가루를 묻혀 그릇에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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