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가뭄 끝에 단비가 내렸다. 7월 27일을 기해 400일 넘게 단절되었던 남북간 통신연락선을 복원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기실 남북관계 단절의 시간은 통신망 단절보다 훨씬 길다. 남북한 사이의 공식적인 대화는 2018년 12월이 마지막이었다. 또 2019년 8월 북한이 남한의 첨단무기 도입과 한미연합훈련을 맹비난하면서 남한과 더 이상 상종하지 않겠다고 밝힌 이후 남북관계는 내리막길을 걸어왔다.
이에 따라 통신연락선 복원만으로 남북대화가 재개되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개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는 섣부른 것이다. 물론 가능성의 영역인 정치외교의 세계에선 예상을 뛰어넘은 일이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미래를 스스로 만들어나겠다는 결의와 행동이다.
일단 남북 통신연락선 복원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사이의 친서 교환을 통해 이뤄진 것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악화일로를 걸어온 남북관계를 회복해야 한다는 양측 정상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 양측의 발표문을 통해 통신연락선 복원이 "남북관계 개선과 발전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고 이구동성으로 강조한 것도 희망의 근거가 될 수 있다.
동시에 유념해야 할 점들도 있다. 최대 관건은 김정은이 올 초에 "근본 문제"로 일컬었던 한미연합훈련과 남한의 첨단무기 도입에 대한 남북한의 시각 차이가 좁혀질 것이냐에 있다. 이와 관련해 문재인 정부는 "남북 통신선 복원과 한미연합훈련은 무관하다"며, 8월 중순부터 축소된 형태로 연합훈련을 실시한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다. 정부로서는 연합훈련을 축소해서 실시하는 만큼, 북한이 이를 양해하고 남북관계 개선에 나서주기를 기대하는 셈이다.
문제는 이게 양립할 수 있느냐에 있다. 김정은은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남북관계 회복을 위한 "근본 문제"라고 강조한 바 있고,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3월 연합훈련 실시를 맹비난하면서 축소 여부와 관계없이 연합훈련 실시 자체를 문제 삼은 바 있다. 그 이후 북한의 입장이 변했다는 징후는 아직 확인된 바 없다.
이에 따라 8월 한미연합훈련 강행 시 북한의 대응을 예측하기가 매우 어렵다. 북한의 선택지는 양해에서부터 저강도-중강도-고강도 대응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저강도는 북한이 미사일 시험발사와 같은 군사적 대응은 자제하면서도 연합훈련 실시를 맹비난하고 남북대화나 북미대화를 무한정 미루는 것이다. 중강도는 미사일 시험발사와 같은 군사 행동에 나서는 것이다. 고강도는 김여정이 3월에 경고했던 것처럼 9.19 군사합의 파기를 선언하는 것이다.
문제는 한미연합훈련 강행 시 북한의 선택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렛대 자체가 유실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필자 역시 북한의 자제를 간절히 원하지만, 이는 '우리가 원하는 북한'이지 '있는 그대로의 북한'은 아니다.
이에 따라 문재인 정부는 북한의 선택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방식을 선택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한미 간에 긴밀한 협의를 통해 8월 연합훈련 유예를 발표하는 것이다. 8월 연합훈련을 유예한다고 해서 큰 문제가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 3월과 8월 훈련은 한반도 전면전을 상정한 전구(戰區)급 훈련에 해당한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이용한 지휘소 훈련이라고 하지만, 참가 규모가 수만 명에 달하는 경우도 많다.
이는 연합훈련의 대안을 얼마든지 모색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구급 훈련을 일시적으로 중단하고 소규모 연합훈련을 지속적으로 실시하는 것이 이에 해당된다. 기실 소규모 연합훈련은 한미가 발표하지 않거나 언론이 보도하지 않으면 북한으로서는 알 수 없다. 북한의 정보자산은 '안대'를 쓰고 있는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하나. 주한미군 사령관은 'Fight Tonight'을 강조하면서 언제라도 전투할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고 강조하곤 한다. 그리고 이는 대규모 연합훈련의 핵심 명분으로 작용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이 마취에서 깨어날 때가 되었다. 이 표현은 북한이 언제라도 남침을 강행할 것이라는 뉘앙스를 풍기지만, 이는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얘기가 된 지 오래되었다.
오해 없기를 바란다. 전구급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촉구하는 것이 결코 대북 경계 및 억제 태세를 포기하지는 뜻이 결코 아니다. 이미 한미 정보자산은 북한의 군사적 움직임을 속속들이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해졌다. 대북 억제력도 마찬가지이다. 북한의 국지 도발 가능성에 대해서는 한국군 자체 훈련이나 소규모 연합훈련을 통해 충분히 대비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다. 군사적 합리성만 놓고 보더라도 대규모 연합훈련을 고수해야 할 사유는 크게 줄어든 것이다.
이제 대화와 외교에 다시 기회를 줘야 할 시간이다. 군사적 관성에 빠져 있는 한미 국방부 차원을 넘어 한미 정상 차원의 소통과 선택이 필요한 시기이다. 조속히 문재인 대통령이 조 바이든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갖고 8월 연합훈련 유예를 선언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의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기를 바란다. 북한의 선의에 기대기에는 너무나도 불확실성이 크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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