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피 묻은 핸드볼, 잔인한 학폭 가해자> 두 번째 기사에 이런 댓글이 여러 개 달렸다.
“경희대 뭐하냐. 가해자 퇴학 조치해라.”
“저런 문제아를 합격시키는 대학은 뭐냐?”
학교폭력(이하 학폭) 피해자는 운동을 접고, 가해자는 체육특기생으로 경희대에 입학한 현실에 분노했다. 가해자 김승환(가명)의 폭력을 자세히 알면, 이런 독자의 분노는 일견 이해된다.
청주공고 핸드볼부 주장이었던 김승환은 야구방망이와 쇠봉으로 후배들을 구타했다. 밥상을 늦게 차린다는 이유로 후배에게 의자를 집어던지기도 했다.
청주교육지원청은 학교폭력심의위원회(이하 학폭위)를 열어 김승환을 강제전학 조치했다. 퇴학 다음으로 수위가 높은 결정이다. 학폭위는 그만큼 김승환의 폭력이 심각하다고 봤다.
무엇보다 김승환은 학폭 피해자 이규민(가명. 당시 1학년)에게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았다. 그의 부모는 피해자에게 성폭력 누명을 씌우려 했고, 김승환 본인도 2차 가해를 하기도 했다. 일가족 모두가 학폭에 가담한 셈이다.
공인된 학폭 가해자 김승환, 그는 핸드볼 명문 경희대에 어떻게 입학했을까. 경희대는 그의 학폭 이력을 몰랐을까, 아니면 알면서도 문제 삼지 않은 걸까?
경희대학교는 체육특기자 수시전형 원서접수를 작년 9월 24일부터 시작했다. 트라이애슬론 최숙현 선수 사망으로 운동부 내 폭력 문화가 사회적 이슈가 된 즈음이었다. 김승환은 경희대에 입학지원서를 냈다.
그에게 맞은 이규민은 일반고로 전학을 가는 등 사실상 운동을 접었는데, 가해자는 별일 없다는 듯 명문대 입시를 준비하다니. 피해자 엄마 박지희 씨는 김승환이 계속 운동하는 걸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 사과와 반성을 했다면 모를까, 김승환은 그 당연한 걸 하지 않았다.
박 씨는 경희대 입학처에 전화를 걸어 김승환의 학폭 사실을 알렸다. 경희대 입학처는 “면접 등의 절차로 학생을 판단하겠다”고 원론적으로 답했다. 박 씨는 멈추지 않고 경희대 입학처와 체육부장에게 작년 10월 7일 메일을 보냈다. 김승환 강제전학 통지서와 경찰에 신고된 사건송치자료도 메일에 첨부했다.
“저는 청주공고 핸드볼부 1학년 이규민(가명) 학생 엄마 박지희입니다. 수개월 동안 아이는 코치와 그의 아들(김승환)로부터 구타와 욕설 등 갖은 가혹행위를 받아왔고 올해 7월, 6명의 동료의 진술로 시작되어 학교폭력신고 및 경찰 조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미가 세상에 알린 죄로 아들은 2차 보복 고소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런 코치 아들이 경희대 스포츠지도학과 핸드볼에 특기생지원을 하였다고 하여 억울한 마음 누를 길이 없어 신고합니다. (중략) 저 또한 힘없는 학부모이지만 아들이 꿈을 접어야 했던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걸 해보려 글을 씁니다. 국내 최고의 (핸드볼) 명문사학 경희대가 누구든 납득할 수 있는 선택을 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이어 박 씨는 “학폭 가해자가 ‘체육특기자 선발·연구위원회’의 심의에서 통과할 수 없어야 하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해당 위원회는 체육특기자의 지원자격, 전형방법, 평가 기준 등을 정하고 선발기간 전 특기자를 미리 심의한다. 박 씨는 “입학요강이란 정량적 요소를 떠나 위원회에서 이 일(김승환의 학폭)을 살펴봐 달라”고 부탁했다.
경희대 입학처는 박 씨가 메일을 보낸 지 5분 만에 확인했다. 이런 피해자 엄마의 호소에도 김승환은 그해 10월 31일 경희대 입시 면접을 봤다.
박지희 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탄원서가 담긴 이메일을 12월 1일 경희대 입학처로 보냈다. 이번엔 김승환이 가해자로 참석했던 학폭위 회의록 전문을 제출했다. 여기에는 앞뒤가 다른 말로 학폭을 부인하는 김승환의 모습이 담겨 있다. 입학처는 12월 2일 박 씨의 메일을 확인했다.
합격자 발표까지 일주일도 남지 않은 12월 4일. 박지희 씨는 입학처와 체육부장에게 세 번째 메일을 보냈다. 이번엔 가해자에 대한 경찰 수사 과정 등을 보도한 기사 주소를 링크해서 보냈다.
“방망이로 맞았다" "추행당했다”...충북 모 고교 핸드볼팀, 경찰 수사 (조선일보, 20.9.15)
청주고교 핸드볼팀 폭력신고접수, 조사착수 (KBS.2020.7.16)
메일 전송 세 번, 전화 통화 세 번, 여기에 한 차례 등기우편 발송까지. 피해자 엄마는 김승환의 학폭 사실을 총 일곱 차례 경희대에 알리며 그를 선발하지 말라고 호소했다.
경희대는 김승환을 핸드볼부 체육특기생으로 12월 9일 최종 합격시켰다. 학폭 피해자 엄마 박지희 씨에게 이런 경희대의 결정은 “비상식적이고 비윤리적”이었다. 박 씨는 경희대 측에 다시 한 번 메일을 보냈다.
“저는 폭행 사실과 사법 및 관계기관들의 징계 사실을 수차례 경희대에 알려왔고 경희대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한 선수를 뽑았습니다. 이에 대해 저는 비상식적이고 비윤리적인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때린 사람의 앞날을 생각하셨다면 맞은 아이의 앞날은 생각해보셨습니까?
더 나아가 저런 행동을 하고도 당당히 명문대에 충분히 합격할 수 있다는 사실을 핸드볼 꿈나무들, 청소년들에게 증명한 경희대는 이제 학문의 전당으로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보이셔야 할 때라고 생각이 듭니다. (중략) 경희대가 스스로 다시 문제에 대해 인식해주시고 당해 학생의 합격을 재고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박 씨 지적대로 강제전학 조치까지 받은 학폭 가해자를 받아준 경희대의 선택은 사회 흐름과 반대였다. 앞서 말한 대로 경희대 체육특기생 입시는 최숙현 선수 사망으로 운동부 내 폭력 척결 목소리가 높아진 상황에서 치러졌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한국체대는 후배들에게 라면 국물을 붓는 등 폭력을 행사한 3학년 핸드볼부 학생을 작년 7월 27일 제적시켰다. 같은 날, 프로야구 NC다이노스는 학폭 가해 전력이 있는 김유성 선수를 지명 철회했다.
경희대는 왜 사회 흐름과 반대로 갔을까?
경희대는 체육특기자 전형에서 경기실적(70%), 면접(20%), 학교생활기록부(10%. 이하 학생부) 평가를 진행했다. 학폭 이력은 학생부에 적시되긴 하지만, 평가 항목이 아니었다. 경희대는 내신 및 출결·봉사만 점수로 변환해 정량 평가만 진행했다.
경희대 입학처는 지난 1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입시) 절차에서 학폭 사실을 알 수 있는 전형 요소가 없었다”라고 주장했다. 전형 요소에는 반영이 안되더라도 박지희 씨가 신고한 경우를 고려하면 학교는 인지하고 있었다
경희대 관계자는 지난 3월 23일 jtbc 보도에 나와 “'학교폭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을 (면접에) 넣었습니다. (학폭 등을 검증하는데) 한계는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즉 면접에서 학폭 문제를 확인하고, 이를 결과에도 반영할 수 있었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경희대는 학폭 가해자를 입학시켰다.
그동안 김승환 같은 학폭 가해자들이 체육특기자로 대학에 들어가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경희대 외에 다른 대학도 운동부 입시에서 학폭 이력을 확인하지 않는다. 작년 체육특기자 전형에서 학생부를 종합적으로 평가한 대학은 전국 4년제 대학을 기준으로 4개뿐이다. 나머지 대학에는 학폭 이력에 불이익을 주는 전형 요소가 없단 뜻이다.
이에 교육부와 문화체육관광부는 올해 2월 24일 학교운동부 폭력을 근절시킬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보도자료에는 ‘권고’ 사항으로 이런 내용이 나온다.
“대학에서 선수를 선발할 때 학교폭력 관련 이력을 확인해 선발을 제한하는 등 참고하도록 한다. 체육특기자 전형에 학교폭력 이력을 입학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반영하는 대학에 대해 보조금 지원 시 가점을 부여하는 등 유인 체계도 도입한다.”
해당 사업을 진행하는 한국대학스포츠협의회는 “올해 보조금 지원 사업엔 반영이 안 되고 내년부터 반영된다”라고 지난 27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말했다.
22학번 신입생을 뽑는 대학 수시 모집이 약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여전히 대학은 학교폭력 이력을 확인해야 하는 의무가 없다. 메워지지 않은 정책 공백, 올해에도 학폭 가해자들이 승승장구하는 풍경이 펼쳐질 수 있다.
자녀 학폭 피해와 2차 가해까지 겪은 박지희 씨에겐 이런 현실 자체가 고통이다.
"김승환 합격 소식을 듣고 너무 억울하고 분했습니다. 김승환이 입학하는 것만은 막아달라고 입학처에 말하고 또 말했는데.... 경희대는 시간이 지나면 학폭 가해자가 입학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잊을 거라 생각한 거 같습니다. 최숙현 선수가 사망한 이후에도 시간이 지나면 (스포츠 폭력 사건들이) 잊힐 거라 여기는 듯합니다."
이 기사는 프레시안-셜록 제휴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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