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공고 교무실에 성폭력 신고 전화가 걸려온 건 작년 9월 16일이다.
“이규민(가명) 학생이 핸드볼부 1, 2학년 학생 3~4명을 성폭행했습니다.”
성폭행도 큰 사건인데, 피해자도 여럿이라니. 게다가 가해자로 지목된 이규민은 학교폭력 피해자 아닌가. 그의 폭로로 학교 핸드볼부 주장 김승환은 강제전학 조치를 받은 상태였다.
그 문제로 학교에 이미 한차례 폭풍이 몰아쳤는데, 이번엔 학교폭력 피해자가 성폭력 가해자로 신고됐다. 같은 날, 핸드볼부 8명은 이규민의 성폭력을 뒷받침하는 듯한 진술서를 작성했다.
<셜록>은 이들의 진술서를 지난 6월 확보했다. B 학생의 진술서를 읽어봤다.
“동계 훈련 때 규민이가 막 밖에서 OO(성관계 지칭)하고 싶다고 소리 지르고 기숙사에서도 막 OO(성관계 지칭)하고 싶다고도 하고, A 위에 올라가 OO대는 행동을 한다. 씻을 때도 OO대는 행동을 할 때도 있다. 가끔 그러는 게 아니라 자주 그런 행동을 많이 해서 불쾌하다.”
C 학생의 진술서도 봤다.
“평소에 이규민은 길에서나 기숙사에서나 OO(성관계 지칭) 하고 싶다고 하고 방에 있을 때 A가 엎드려 있을 때 위에 올라가서 허리를 엄청 흔들었다.”
곧바로 D 학생의 글을 읽었다.
“규민이는 평상시에 OO(성관계 지칭)라는 단어를 쉽게 꺼냈다. 그리고 평상시에는 애들한테 가서 뒤에서 불쾌한 짓을 할 때가 많다.”
8장 모두 읽었는데 내용이 거의 같았다. 학생들은 같을 걸 목격해서 이렇게 적은 걸까, 아니면 누군가 불러준 걸 받아 적은 걸까.
진술서에 언급된 유일한 피해자는 A 학생. 가만 보니, 정작 피해자로 지목된 A의 진술서가 없다. 지난 7월 7일 A 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무튼 그런 일이 있었어요. 기분이 안 좋았어요. 성추행은 아닌데.. 수치심도 들지 않았습니다."
핸드볼부 8명이 피해자로 지목했는데, 정작 A 학생은 아니라니. 도대체 무슨 상황일까. 핸드볼부 학생들이 진술서를 쓴 작년 9월 16일, 얼마 뒤 학생들은 청주공고 교사와 개별 면담을 했다. 그때 A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전 (성추행) 당한 적이 없는데 왜 다른 학생들이 자꾸 (제가 성추행을 당했다는)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짜증이 납니다. 이규민과 장난친 적은 있지만, 성적 수치심을 느끼거나 학교폭력으로 피해를 받은 적이 전혀 없습니다.”
A 학생은 교사와 상담하면서 중요한 사실도 말했다.
“‘다른 학생과 이규민이랑 장난을 쳤다’라고 말했는데, 나중에 코치님께서 ‘그럼 이건 성적 수치심과 관련된 부분이 아니냐’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청주공고 핸드볼 전 코치 김병국(가명)이 뭔가를 지시한 정황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거의 동일한 진술서를 쓴 핸드볼부원 여덟 명, 이들도 혹시 김 코치에게 영향을 받은 걸까?
청주공고 핸드볼부에서 학교폭력이 크게 문제가 된 작년 여름으로 가보자.
이규민 학생은 주장 김승환과 김병국 코치의 폭력 탓에 작년 7월 1일 운동부 기숙사를 몰래 탈출했다. 청주교육지원청은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이하 학폭위)를 열어 김승환의 강제전학 처분을 8월 24일 결정했다.
김승환 학생 측은 이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9월 3일 제기했다. 김승환은 당시 고3이었고, 체육특기생으로 대학 입시를 앞두고 있었다. 강제전학은 대입과 향후 선수 생활에 큰 영향을 주니 그에겐 중요한 소송이다. 핸드볼부원들이 진술서를 쓰고 김병국 코치에게 제출한 날은 그로부터 약 2주 뒤인 9월 16일이다.
중요한 정보를 하나 빠트렸다. 청주공고 교무실에 “이규민 성폭행을 했다”라고 신고 전화를 한 사람, 김승환의 엄마 이은미(가명)이다. 핸드볼부원에게 거의 동일한 내용의 진술서를 받은 김병국 코치는 김승환의 아버지다. 주장의 엄마인 이은미는 핸드볼부 학부모회장이었다.
학교폭력 가해자 아버지가 학생들에게 진술서를 받은 날, 엄마는 학교에 신고 전화를 한 것이다. 부부가 약속이라도 한 듯이 같이 움직였다. 공격 대상은 하나, 아들의 학교폭력을 폭로한 이규민이다.
결과적으로 성폭력 신고는 학교에서 오인 신고로 처리됐다. 학교에서 핸드볼부원들을 전수조사했으나 피해 학생이 안 나왔기 때문이다. 이은미는 왜 학교에 성폭력 신고 전화를 했을까. 이유를 묻기 위해 기자는 지난 7월 20일 이은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제 번호 어떻게 알았어요? 경찰서에 개인정보 유출로 신고하겠습니다.”라는 말만 남긴 채 전화를 끊었다.
수상한 진술서는 하나가 아니다. 작년 8월 29일, 핸드볼부원들은 이미 다른 내용으로 진술서를 작성했다. 이 진술서 역시 이규민을 비난하는 내용이다.
“이규민이 OOO 형이 뒤돌아 있을 때 손가락 욕을 했습니다. 그리고 저번에 OO형 없을 때 ‘또 지랄이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운동할 때 이규민이 힘들어해서 형들이 파이팅하라고 했는데 ‘아 O발’이라고 말했습니다. 잘못을 해서 형들이 뭐라고 하면 뒤돌아서 욕을 했습니다. ‘아 O같네’라고 했습니다.” - E 학생
다른 학생이 쓴 걸 보자.
“이규민이 운동시간이나 일상생활을 할 때 선배들이나 동기들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을 많이 한다. 운동시간에는 공이 안 좋은 쪽으로 가거나 골키퍼 훈련이 힘들어지면 욕을 하고 일상생활에는 선배가 뒤를 돌면 가운데 손가락을 올리거나 선배들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 O발 O같네’라는 말을 하고 ‘아 나한테만 지랄이야’라는 말을 한다.” - F 학생
이번에도 내용과 형식이 비슷하다. 어떻게 된 일인지 A 학생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물었다.
“그냥 애들끼리 써서 냈는데, 처음에 이게 알려지는지 몰라서 그냥 거짓말로 썼는데….”
학생들은 왜 거짓 진술서를 써야 했을까. 궁금했지만 A는 더는 기자에게 말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법원 판결문에서 관련 사실이 드러났다.
청주지방법원 제1행정부는 올해 1월 7일 “김승환의 강제전학 조치는 합당하다”는 취지의 판결문에 이렇게 적었다.
“2020년 8월 29일 및 9월 16일 작성된 핸드볼부 부원들의 각 진술서 내지 탄원서는 피해 학생의 진술에 배치되는 내용이지만, 핸드볼부 내에서 우월적 지위에 있는 원고(김승환) 측이 부원들에게 요구하여 받은 것인 데다가 앞서 본 바와 같이 일부 부원들은 이후 진술서 내용을 번복하기도 하였으므로 신빙성이 상당히 떨어진다.”
재판부는 학생들의 진술서는 김병국 코치의 위력에 의해 작성된 것으로 봤다. 결국 김 코치는 자기 아들 살리기 위해 학생들에게 거짓을 요구한 셈이다.
학교폭력 피해자를 향한 김 코치의 음해와 공격은 위 사례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작년 8월 24일 열린 학폭위에서 이규민의 인성을 0.5퍼센트로 평가했다.
한 학폭위원은 “왜 이규민의 인성을 0.5퍼센트로 평가했느냐”는 물음에 김 코치는 이렇게 말했다.
“운동이라는 게 자기의 능력을 뛰어넘어야 발전이 있는 거겠죠. 그래서 하다 보면 힘들고 인내력도 필요한 과정에서 뒤로 돌아서 욕을 해요. 혼잣말로 욕을 하는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목소리가 다 들릴 정도로 합니다. (중략)”
그의 말이 길어지자 한 학폭위원은 “간략하게 마무리를 지어달라”고 요청했다. 김 코치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욕설을 너무 많이 하니까 저한테도 제가 들릴 정도로 할 정도면 아이들한테도 많이 했다는 사실이고,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운동선수로서 운동도 중요하지만 이 아이들이 대학을 갈지 안 갈지 모르고, 죽을 때까지 운동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운동 실력보다도 인성 그쪽으로 점수를 좀 많이 매기는 편입니다.”
자신이 지도한 학생을 길게 비난한 김병국 코치. 사실 그도 핸드볼부 내 폭력으로 직무 정지 조치를 받았다. 그는 아동학대 혐의로 현재 기소된 상태다.
김병국 코치는 청주공고 체육관 코치실에서 야구방망이, 커피포트 등으로 학생을 때렸다. 이규민은 이틀에 한 번꼴로 맞았다고 주장했다. 등 뒤에서 학생의 뺨을 때려 코피를 흘리게도 했다.
그의 아들 김승환은 핸드볼부 주장을 맡아 아버지처럼 행동했다. 그 역시 야구방망이로 학생을 때리고 이규민에게 의자를 집어 던졌다. 옷장에 설치된 쇠봉으로 학생들을 구타하기도 했다. (참고 기사 <커피포트로 치고, 쇠봉으로 때리고.. 핸드볼 부자의 학폭>)
이규민이 운동부를 탈출한 건 이런 아버지와 아들 때문이다.
이규민의 인성을 0.5퍼센트로 평가한 김병국 코치. 학교폭력에서 멈추지 않고 아내 이은미와 함께 피해자를 성폭력 가해자로 몰아간 그의 인성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김병국은 현재 충북학생체육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학폭 가해로 강제전학 조치를 당한 김승환은 핸드볼 명문 경희대학교에 무사히 입학했다. 대한체육회는 지난 5월 6일 김승환에게 자격정지 3년을 결정했다. 학폭은 물론 스포츠계 폭력 문화에 비판 여론이 높은 요즘, 김승환 이 결정이 너무 과하다며 재심을 요청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강제전학 조치는 합당하다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학폭 피해자 이규민은 운동을 접고 인문계 고교로 전학을 갔다. 가해자 부모에게 2차 피해를 겪은 이규민, 그의 어머니 박지희 씨는 김승환의 영구제명을 요구했다.
"맞은 사람은 운동을 못 하는데, 때린 사람은 사과도 없이 어떻게 운동을 할까, 그런 마음이 있습니다. 이미 용서할 수 없는 강을 건너왔습니다. 사과도 없으니 (가해자가) 운동하지 않게끔 하고 싶어요. 악한 마음인 줄 알면서도 한 사람이 제대로 벌을 받아야 다른 종목에서도 피해자가 안 생긴다고 생각해요."
이 기사는 프레시안-셜록 제휴 기사입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