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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해부대 집단감염 사태, 자화자찬 말고 제대로 사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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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해부대 집단감염 사태, 자화자찬 말고 제대로 사과해야 한다

[안종주의 안전사회]

20일 귀국한 청해부대원 301명을 대상으로 국내에서 다시 유전자증폭(PCR)검사를 한 결과 아프리카 현지에서 1차로 확인된 247명보다 23명 더 늘어나 전체의 90%에 해당하는 270명이 코로나 확진자로 21일 드러났다. 사실상 전체 부대원들이 감염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감염률이 엄청나게 높다.

감염이 확산하고 있을 당시의 상황 일부가 부대원의 가족들을 통해 알려졌다. 또 이해하지 못할 황당한 일들, 예를 들면 40도 고열 환자들이 속출하고 있음에도 이를 코로나로 의심하지 않고 해열제 두 알로 버티라고 한 것, 신속항원진단도구가 아닌 신속항체진단도구를 배에 싣고 가 의심환자들을 대상으로 엉터리 검사한 것, 청해부대가 합참과 국방부 등에 긴급 상황과 관련해 제대로 보고하지 않은 것, 군수품 적재 때 감염 예방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는 방호복을 입었던 점을 강조하는 것 등을 통해 코로나에 대한 우리 군의 총체적 무지와 무능, 허술한 위기관리와 위기소통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청해부대 후송 임무 자화자찬은 승조원 상처에 소금 뿌리는 격

청해부대 집단감염 사태는 우리 군이 코로나 예방에 철저하게 실패한 상징적 사건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본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에 대한 가족들과 국민 분노가 가라앉지 않은 상황에서 이들을 신속하게 국내로 데려온 것과 관련해 “신속하게 군 수송기를 보내 전원 귀국 조치하는 등 우리 군이 나름대로 대응했다.”(문재인 대통령), “우리 군사 외교력이 빛을 발휘한 사례” “최초의 해외 긴급 의무 후송 합동 작전” “민관군이 총력을 펼쳐 최단 기간 임무 달성”(합참·국방부의 청해부대 34진 긴급 복귀 경과 및 향후 대책’ 문건) 등에서 보듯이 자화자찬을 늘어놓는 것은 청해부대 장병들이 입은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일이 이나 다를 바 없다.

물론 수송기로 단시간에 국내로 부대원들을 전원 후송해 치료를 받게 한 것, 그 자체는 박수 받을 만한 일이다. 하지만 그보다 몇 배, 몇십 배 더 질타 받을 일이 먼저 생겼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일이라면 결코 자화자찬해서는 안 된다. ‘최초의 해외 긴급 의무 후송 합동 작전’은 결코 자랑할 일이 아니다. 여기서의 최초는 정말 부끄러운 것이다.

이런 긴급 후송에 대한 긍정 평가 내지 자화자찬은 비난의 화살이 연일 우리 군과 정부, 청와대를 향해 쏟아지자 떨어진 군 사기와 위신을 조금이라도 만회해보기 위한 조금함이 불러온 자살골이 아닌가싶다. 이는 대통령이나 군이 긍정 평가 또는 자화자찬할 성격이 아니라 시간이 상당히 흐른 뒤 나중에 군사평론가, 언론 등이 말할 성격이다.

‘소를 잃었을 때’는 무조건 사과하고 반성해야

‘소를 잃었을 때’는 무조건 진솔하게 사과하고, 성찰하고, 반성해야 한다. 청해부대장과 합참의장, 국방부장관, 총리뿐만 아니라 대통령도 예외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와 관련해 생긴 나쁜 일들에 대통령이 죄다 사과할 필요는 물론 없다. 하지만 청해부대원 집단감염 사태와 사상 초유의 해외파병부대 긴급 후송 사건은 반드시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장병과 그 가족, 그리고 국민에게 하루빨리 사과해야 하는 성격이다. 야권의 공세에 밀리면 안 된다고 판단해 이를 뒤로 미루는 것은 못난 사람들이 하는 행태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20일 “신속하게 군 수송기를 보내 전원 귀국 조치하는 등 우리 군이 나름대로 대응했지만, 국민 눈에는 부족하고 안이하게 대처했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고 밝혀 야당은 물론이고 여러 언론, 그리고 여당 내부에서도 부적절했다고 비판했다. 이런 말을 하기 전에 먼저 국민에게 송구하다거나 죄송하다는 말을 했어야 한다.

청해부대 코로나 집단감염과 같은 사건과 관련해서는 대통령의 사과가 이르면 이를수록 좋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그렇게 할 것 같지가 않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21일 한 라디오방송에 나와 “우선 장병들을 잘 치료하고, 이후 필요하다면 대통령의 시간은 따로 있는 것 아니겠냐”며 당장 사과를 검토하고 있지는 않다는 뜻을 내비쳤기 때문이다.

박 수석은 또 서욱 국방부 장관이 20일 청해부대 사태와 관련해 사과했기 때문에 같은 날 대통령이 또 사과하는 것은 형식상 적절치 않다는 식으로 말했다. 형식을 따질 때가 아니다. 그는 이어 문재인 대통령이 청해부대 코로나 집단 발병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하지 않는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이미 대통령은 국민께 사과드리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는 정말 애매하고 유체이탈 식 답변을 했다.

문 대통령, 박수현 수석은 위기소통의 원칙과 실패·성공 사례에서 배워야

이는 박 수석이든, 문 대통령이든 위기소통의 원칙과 그 역사, 그리고 실제 위기소통 실패·성공 사례에서 전혀 교훈을 얻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하다. 위기소통의 원칙을 보면 실수를 하거나 잘못을 했을 때는 즉각 이를 인정해 사과하고 앞으로 잘 하겠다고 밝힌 뒤 이를 철저히 실천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위기소통의 교과서에는 대표적 성공 사례와 실패 사례가 등장한다. 성공 사례는 1982년 미국 존슨앤드존슨의 타이레놀 독극물 사건이다. 당시 미국 시카고에서 어린이를 포함해 7명이 약국에서 구입한 타이레놀을 먹고 숨졌다. 누군가(범죄자)가 해열진통제 타이레놀에 청산가리를 넣었던 것이다. 제약회사는 직접적인 책임이 없었지만 최고경영책임자는 발 벗고 나서 첫날부터 사건의 전모를 세세하게 공개하고 유족과 시민들에게 직접 사과했다. 그리고 미국 언론과 국민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대표적 사례가 됐다.

1989년 석유업체인 액손 모빌사의 유조선 액손 발데즈호가 알래스카 부근 프린스 윌리엄만 앞바다에서 좌초돼 4200만리터에 달하는 기름이 바다에 유출됐던 사건은 위기소통 최악의 사례로 꼽힌다. 최고 경영자는 사고 현장을 제때 찾지도 않았다. 사고 피해에 대해 사과하는 것도 늑장을 부려 빈축을 샀다. 사고 발생 3주가 지난 뒤 그는 알래스카를 방문했다. 뒤늦은 사과를 사과로 받아들인 미국 시민은 많지 않았다.

메르스 때 실패 사과 늑장 부린 박근혜 정부 닮지 말아야 위기탈출

외국 사례를 들먹일 것도 없이 박근혜 정부 때 터진 중동호흡기증후군, 즉 메르스 국내 유행 때도 당시 박 대통령은 이 신종 감염병 유행이 별 것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중동 감기’ ‘낙타 감기’ 정도라고 국민에게 말했다가 거센 비판을 받았다. 메르스 초동 대처 실패에 이은 후속 대응 실패 등 총체적 실패와 병원과 감염 경로 미공개 등 비밀주의는 국민의 불신과 불안을 분노의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국민에게 실패를 자인하고 사과하는데 너무나 인색했다. 필자는 당시 박근혜 정부 때 국민을 불안에 떨게 만들었던 메르스 유행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감염병에 대해 조금만 공부했더라도 능히 피할 수 있는 실수들이었다. 사실상 방역 당국의 직무유기 때문에 메르스가 확산됐다고 지적해도 달리 변명하기 어려울 것이다. 메르스 사태로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급락을 거듭하자 청와대 대변인은 8일(2015년 6월) "박근혜 대통령은 병원 명단 공개 나흘 전(6월 3일)에 이미 모든 병원 명단을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한 바 있다"며 실무적인 보완책을 마련하느라 나흘 뒤에 공개하게 됐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대다수 언론과 국민은 이를 곧이곧대로 믿으려 하지 않고 있다. 국민의 안전이나 생명보다 정권의 안전이나 대통령의 위신을 먼저 생각하는 나라는 쇠하게 마련이다.” (<프레시안> 2015.06.09. “박근혜는 '불통 바이러스' 슈퍼 전파자”-대한민국, 대수술이 필요하다.)

‘지금은 대통령이 청해부대 사태와 관련해 국민에게 사과할 때가 아니다.’라는 최측근 참모의 발언과 발상이 과연 박근혜 정부 때 박 대통령 호위에 열중하던 측근들의 행태와 전혀 다르다고 할 수 있는가. 정말 다르다면 하루라도 일찍 대통령이 국민에게 사과하도록 조언하라. 그것이 진정으로 대통령을 위기에서 구하는 길이다. 좌고우면하고 시간을 놓치면 사과의 진정성과 효과는 사라진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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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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