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과 정의라는 담론이 아주 오래전부터 언제나 항상 뜨거운 화두였고 2021년 오늘 뜨겁고 진지하게 논의가 이루어진다 해서 새삼 놀랄 일도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 선언한 취임 일성이 2017년에 한국 사회를 뜨겁게 사로잡았으나, 지금은 과거와 기억이 되는 듯하며 기의 없는 텅 빈 기표가 된 듯하다. 제20대 대통령선거 7개월 앞둔 오늘, 공정과 정의의 유령이 또다시 한국 사회를 정처 없이 배회하고 오랫동안 배회할 것 같다.
작금의 공정과 정의는 이른바 MZ세대, 이대남으로 일컫는 젊은 청춘들이 말하는 공정과 정의에 대한 감각이 다소 남다르게 읽히고, 독특하게 해석하는 듯한 착각이 넘쳐흐르는 것이 약간 차별이라면 차별화일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키즈 출신 청년 30대 정치인은 기라성 같은 기성 정치인들을 물리치고 단박에 제1야당 대표가 되었고, 그는 공정한 경쟁을 부르짖는 중이고, 더 나아가 통일부와 여성부를 폐지하자고 울부짖음에 가깝게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 의료법 위반, 요양급여 편취로 구속되신 분의 사위이자 문재인 정부 출신 전직 검찰총장은 유력한 대선주자가 됐고, 그는 공정한 법 집행이라는 가치를 주제넘게 강조하고 있다. 이들이 주장하는 공정성의 핵심개념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조건 능력주의다.
능력주의는 부나 권력과 같은 희소한 자원의 분배에 있어서 사람의 재능, 노력 및 성취도를 평가하여 차등적으로 보상하는 것을 긍정하고, 그러한 사회를 추구하는 정치 철학이다. 능력주의는 사실 자유주의의 핵심개념이다, 자유주의는 서구의 계몽주의 시대에 기원을 두고 있지만, 이 용어는 역사적으로 시대와 지역마다 그리고 사용되는 맥락에 따라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자유주의는 개인의 권리를 강조한다. 인권, 법의 지배, 3권분립을 통한 권력통제, 자유로운 경제활동이 보장되는 시장경제 등을 특징으로 한다. 오늘날 자유주의자는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 법에 의한 모든 시민들의 동등한 권리와 기회가 보장되는 부르주아적 대의민주주의를 지지한다. 서구와 비서구의 대부분 국가에서 대의민주주의에 기반한 자유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능력주의의 문제는 자신의 재능과 능력, 자기가 잘나서 얻어낸 마땅한 결과라고 믿기 때문에 승자는 오만에 빠지고, 패자는 굴욕과 분노로 몰아가며 차별을 한다. 이것을 무조건(또는 고삐 풀린) 능력주의라 부르려 한다. 무조건 능력주의는 천민자본주의 뜻과 닿아있다. 천민자본주의는 사전적으로 물질과 이기심에 집착, 과도한 경제력 집중, 불공정한 경제 행위, 반복지의 과소비. 물질이나 인간의 이기심에만 집착하여 공정한 자유경쟁, 개인의 창의성 발휘, 경제적 혁신, 일에 대한 헌신적인 노동윤리를 상실해 버린 타락된 자본주의를 말한다. 그 결과 경제력의 과도한 집중과 불공정한 경제 행위(독점과 투기, 불로소득), 반복지의 과소비 문화가 형성된다.
박근혜 대통령의 키즈 30대 젊은 제 1야당 대표와 문재인 정부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 유력후보는 공정과 정의의 관점을 무조건(고삐 풀린) 능력주의에 가까운 담론으로 한국 사회를 진단하려 한다면, 나는 무조건 기본소득으로 공정과 정의의 담론을 설명하려 한다. 무조건적 능력주의는 공정하다는 착각이라 설명하고 있는 사상가가 있으니 그가 바로 공동체주의자 마이클 샌델이다. 2010년 정의란 무엇인가로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샌델이 쓴 <공정하다는 착각>이라는 책이 다시 한국 사회에 붐을 일으키고 뜨겁게 달궈질 듯하다. 샌델은 우리의 재능이라는 것이 세습의 복권 또는 보험일 수 있다. 개인기라기보다 저마다 타고난 유전 정보의 우수함이라는 행운, 좋은 국가, 좋은 사회, 좋은 시대적 환경, 권력과 부를 가진 부모를 두었다는 행운 등의 귀속적 원인 때문일 수 있다. 그 결과로 빈익빈 부익부와 가난과 부자의 세습과 재생산 구조가 배태되고 심화 되어 사회적 양극화와 불평등의 심화가 바로 무조건적 능력주의 때문이라고 주장하려 한다.
판 파레이스가 쓴 <21세기 기본소득(원어: Basic income)>에서 제시된 내용과도 맞닿아있다. 판 파레이스는 현실의 삶에서 얻게 되는 여러 가지 기회들은 저마다 타고난 역량과 성향뿐만 아니라, 그것들이 무수히 많은 우연적 상황들과 복잡하고도 예측 불가능하게 생겨나는 것들이 훨씬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학창시절에 좋은 선생님을 만났거나 잠깐 공부를 잘했다거나, 직장에 들어가 뛰어난 상사를 만났든가 또는 좋은 부처로 발령되어 근무했다거나, 운이 좋은 세대에 속했다든가 또는 좋은 부모를 두었거나, 세계적으로 수요가 높은 영어가 모국어거나 특별히 영어만 잘하였다든가, 적시에 적절한 일자리가 났다는 정보를 얻었다든가 하는 등의 다양한 사례와 상황일 수 있다.
판 파레이스는 자연, 기술진보, 자본축적, 사회조직, 시민의식의 규칙 등은 우리에게 아무 대가 없이 많은 혜택을 나눠주고 있지만, 그 혜택의 분배는 지극히 불평등하게 축적된다고 주장한다. 온갖 다종다양한 방식으로 불평등하게 구조화되어 나타나지만, 대부분 사람에게 있어서 소득이라는 부분이 가장 절실하게 먼저 다가온다. 오늘날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불로소득과 같은 엄청난 은혜를 받고 있으며, 그것이 우리의 소득에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 배분은 매우 불평등하게 구조화된다는 것이다. 무조건(자산조사 없이) 기본소득이라는 사회문제의 해법은 불로소득과 같은 엄청난 은혜를 모든 이들이 공정하게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천연자원 및 자연환경, 생태환경을 위시한 토지 그 자체와 빅데이터는 공통부다. 공통부란 소유하든 하지 않든 함께 사용하는 공동자원으로서 자연자원에 한정하지 않고 유형·무형의 공동자원을 모두 포괄하는 보다 폭넓은 의미에서 “공동의 것”이다. 우리 모두의 것으로부터 나온 수익은 어떤 한 사람에게 귀속 될 수 없으며 어떤 누구의 기여를 따질 수 없는 몫이기에 모두의 몫이다. 모든 이들에게 주어야 할 뿐만 아니라 지속 가능한 최고의 수준에서 액수를 정한다면, 가장 덜 받은 이들도 가능한 지속적으로 최대한 받을 수 있도록 보장된다는 특징이 있는 것이 기본소득이다. 따라서, 기본소득은 가난한 이들을 대상으로 삼는 세련된 복지정책이나 경제정책 하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들이 자기 발로 독립적으로 굳건히 설 수 있도록 하는 사회경제적 발판이자 모두에게 민주적으로 실질적 자유를 공정하게 누릴 수 있는 튼튼한 사회정책이자 새로운 분배체계의 공정성이다.
끝으로 2016년 1월 청년 배당을 계기로 기본소득정책을 선점하였고, 청년과 농민 등의 범주별 기본소득과 경기도 재난 기본소득을 강력하게 추진하였으며, 더 나아가, 대선 출범선언문에서 기본소득을 핵심정책이라고 주창한 경기도 이재명 지사는 "공정은 역사를 통틀어 언제나 중요한 공동체의 가치"라며 "우리가 겪고 있는 기술 혁명과 경제 대전환의 위기를 기회로 바꾸되 모두가 누릴 수 있는 포용 성장, 나은 성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제창했다. 그는 "성장 잠재력을 확보하는 하나의 축은 공정성 회복이고, 또 하나의 축은 산업과 경제 재편"이라고 선언했다. 무조건 기본소득은 소득 공정성 확보와 지속성장을 가능케 하는 복합정책이라고 강조한 이 지사의 대선 선언문을 재음미하면서, 2023년부터 기본소득의 제도화로 작은 씨앗이 되어 모두에게 사회경제적 발판의 싹을 틔움으로써, 억강부약(어깨동무) 대동세상을 만드는 진정한 민주주의 꽃을 피우고 열매가 되기를 간절히 기대하며 마무리한다.
김상돈 고려대 교육대학원 겸임교수는 기본소득 국민운동 경기본부 상임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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